수익률 제고 목표하지만
직장인 불안 적지 않아

정부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기금형’으로 전환해 국민연금 수준의 전문 운용체계를 구축하는 방침을 검토 중이다. 자산배분 다변화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수익률 제고가 가능하다는 구상이지만 근로자 사이에서는 ‘투자한다’는 인식에 대한 불안감이 감지된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431조원을 넘어섰다. 자금의 80% 이상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은 연 2%대에 머물러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퇴직연금 기금형 자산운영방식 도입과 복수 기금 간 경쟁체제, 가입자의 기금 갈아타기 허용에 동의한다”며 “(기재부가) 제도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기금형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함께 규약을 만들고 별도 기금운용위원회와 수탁법인을 통해 자금을 통합 운용하는 구조다. 주식 채권은 물론 부동산 인프라 등 대체투자에까지 영역을 넓혀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미국과 호주 등 영미권에서 일반화된 방식으로 전문 자산운용기관이 대신 투자를 집행하고 수익을 가입자에게 배분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운용 효율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자본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리스크다. 기금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가 손실이 발생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30대 직장인 정 모씨는 여성경제신문에 "국민연금도 낸 만큼 받을지 말지 모르겠는데 퇴직금도 잘못하다가 깎이는 거 아닌가"라며 "정부가 민생회복소비쿠폰 뿌릴 때 어쩐지 찜찜하더니 이럴려고 슬그머니 큰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운용 책임 구조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모든 손실을 수탁자의 책임으로 규정할 경우 운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일정 기준 이하의 운용 실패만 제재하는 ‘가이드라인형 책임제’를 도입해 시장 자율성과 안정성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영국의 최근 5년 평균 수익률은 계약형이 5.3~10.7% 기금형이 5.1~10.0%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일본 역시 10년 평균 수익률이 계약형 3.77% 기금형 3.63%로 비슷하다. 제도 형태보다 운용 체계와 책임 구조가 성과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명확한 모범 기준과 판례 축적이 필요하다. 영국도 판례를 통해 충실의무 개념이 정착됐다”며 “한국도 노후자산의 장기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선 시행 초기부터 운용지침과 평가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권의 반발은 현실적 변수로 남아 있다. 기금형이 도입되면 기존 퇴직연금 사업자의 역할이 줄어들고 운용 수익 구조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금형 전환을 통해 ‘안정과 수익’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향후 퇴직연금 시장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