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시서 올해만 6000만 주 매각
2조원 이상 현금화 AI로 투자 전환
기관투자자 늘어 주주 환원 이중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지난 20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쿠팡 주식 2000만 주를 주당 28달러에 매각했다. /AP=연합뉴스

소프트뱅크가 뉴욕 증시에서 쿠팡 지분을 대규모로 매각하며 사실상 ‘엑시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분야로 투자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성장 정체 조짐을 보이는 쿠팡에서 차익을 실현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6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지난 20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쿠팡 주식 2000만 주를 주당 28달러에 매각했다. 올해 들어서만 세 차례에 걸쳐 6000만 주, 약 16억1600만 달러(약 2조2100억원)를 처분한 것으로 이는 2023~2024년 매각 물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기업공개(IPO) 직후 37%였던 지분율은 불과 4년 만에 17%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번 매각은 소프트뱅크의 AI·반도체 투자 전략 전환과 맞물린다. 손정의 회장은 지난 2월 오픈AI와 함께 최대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오픈AI에 400억 달러 추가 출자를 약속했다. 최근에는 인텔 지분 2%를 확보하며 반도체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내 정책 리스크도 매각 배경으로 꼽힌다.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확대해 물류 인력이 많은 쿠팡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 공정거래법 제정 논의 역시 쿠팡의 사업 환경을 제약할 가능성이 크다. 주가가 지난달 52주 최고가인 31.65달러를 기록하며 30% 넘게 상승한 상황에서, 소프트뱅크가 매각 시점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쿠팡의 성장 한계도 지적한다. 단순한 이커머스 모델에 기반한 쿠팡의 매출 구조로는 AI 시대의 추가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평가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검색·클라우드·AI 서비스로 이익원을 다각화하는 것과 달리, 쿠팡은 물류 중심 구조에 묶여 있어 기술 전환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분석이다.

빅테크업계 한 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에 “AI가 서비스 플랫폼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을 바꾸고 있지만, 쿠팡은 여전히 인건비와 물류비 구조에 좌우된다”며 “소프트뱅크가 쿠팡 지분을 줄이고 AI·반도체로 투자 축을 옮긴 것은 차익 실현이 아니라 구조적 한계를 직시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자가 떠나가는 마당에 국내에서는 여전히 쿠팡의 지배력 안정 여부와 배당·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가 강하다. 미국에서 김범석 의장은 차등의결권을 통해 소수 지분만으로도 70% 이상의 의결권을 유지하고 있다. 헤지펀드 거물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는 최근 지분율을 5.16%에서 6.67%로 확대했고, 찰스 슈왑도 114만 주를 확보했다. 

이런 과거식 해석은 산업 전략의 큰 흐름과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관투자자 비중이 커질수록 배당 압박과 주가 관리 요구가 더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쿠팡은 지난 5월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대자본은 이미 AI·반도체라는 차세대 성장축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월가를  비롯한 국내 금융권은 여전히 ‘지배구조’와 ‘주주환원’ 논의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뒤처진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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