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커머스 확산으로 주 7일 배송 경쟁 심화
폭염 속 열악한 노동환경 기사 사망 발생
제도 미비·환경·지역상권 침해 문제 대두

낮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어느 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날씨였지만 택배기사는 쉴 틈 없이 상자를 나른다. 택배기사의 옷은 땀이 마를 시간이 없어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또 다른 배달원도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연신 옷깃으로 닦아냈다.
그들의 땀 덕분에 우리는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면 새벽에 받기도, 혹은 당일, 혹은 당장 몇 시간 안에도 받을 수 있다. 이 놀라운 속도와 편리함 덕분에 ‘퀵커머스(즉시·당일 배송)’는 도시 생활의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주 7일’ 배송까지 시행되며 배송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속도를 무기로 한 이 산업의 뒤편에는 묵직한 사회적 비용이 숨어 있다. 초단위 속도 경쟁의 이면에는 과로에 시달리는 배달원, 넘쳐나는 포장 쓰레기, 무너져가는 동네 상권 등 불편한 진실이 겹겹이 누적되어 간다.
퀵커머스 시장은 2014년부터 시작된 쿠팡의 ‘로켓배송’을 필두로 경쟁에 불이 붙었다. 로켓배송은 평일과 주말을 불문하고 주 7일 배송을 시행한 제도다. 당시 쿠팡은 적자를 내고서라도 투자를 지속해 로켓배송을 자리 잡게 했다. 지금은 “로켓배송 없인 못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른 배송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가 됐다. 이에 질세라 택배업계도 주 7일 배송을 도입했다. CJ대한통운이 올해 1월 가장 먼저 해당 제도를 시행했고, 한진택배는 4월부터 수도권과 주요 광역시를 중심으로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롯데택배 역시 도입을 목표로 내부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택배를 주문하면 기본 2~3일을 기다리거나, 당장 필요하면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구매하곤 했다. 지금과 같은 퀵커머스 배송이 당연시 된 건 몇 년이 채 안됐다. 이처럼 퀵커머스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를 위한 사회적 기반 마련은 아직 미흡하다.
체감온도 40도 가까운 폭염이 있던 지난달 4일부터 8일 사이, 택배업계 종사자 세 명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폭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퀵커머스 수요는 빠르게 늘었지만 미흡한 노동환경이 결국 이와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
사망 소식이 잇따르자 정부와 기업은 서둘러 대책을 내놨다. 지난달 11일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2시간마다 20분 이상 쉬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기준 개정안이 세 번째 심사 끝에 통과됐다. 같은 날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에게 폭염 시 자율적으로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배송 지연에 따른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제도와 현실의 간극이다. ‘20분 휴식 규정’은 여전히 택배기사, 배달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CJ대한통운이 혹서기 전 현장에서 50분 일하면 10분, 100분 일하면 20분을 쉬게 하겠다고 의무 적용을 약속했지만 이는 한 기업의 정책일 뿐 법적 의무가 아니다.
초단위로 쪼개진 작업 속도에 맞춰 일하는 배달원과 물류센터 직원들에게 고용보험·산재보험 적용 문제는 여전히 공회전을 반복한다. 이들은 주로 하청과 재하청을 거친 업체 소속이거나 계약직, 프리랜서 등의 고용형태가 많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기도 힘들다. 스페인·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이미 배달 플랫폼 노동자를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법적 보호하는 데 반해, 한국은 제도화 속도가 더디다.
쿠팡의 ‘로켓배송’에 맞서겠다며 택배사들이 잇달아 휴일 없는 배송 체제를 도입하면서 주 1일 휴식을 누리던 기사들은 더욱 더 과로에 내몰리고 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한진 소속 택배기사 196명 중 77%가 협의 없이 주 7일 근무를 강요받았고, 이 과정에서 60%는 구역 축소, 수입 감소, 계약 해지 등 압박을 경험했다고 한다.
비단 노동환경 문제만 야기되는 것도 아니다. 환경 문제도 대두된다. 소량 주문을 위해 포장재를 여러 겹 씌우고, 아이스팩과 드라이아이스를 아낌없이 넣는다. 배달 차량은 하루에도 수십 번 도심을 누비며 탄소를 배출한다. ‘친환경 포장’이라는 홍보 문구는 있지만 회수·재사용 체계는 걸음마 수준이다.
지역 상권의 위축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플랫폼은 ‘집 앞 당일 배송’으로 소비자를 붙잡지만 그만큼 동네 슈퍼·전통시장·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빼앗는다. 일부 지자체가 대형 물류거점 허가를 제한하려는 이유다.
일부 소비자들은 “우리가 이렇게 빨리 받을 필요가 있을까?” 반문한다. 즉시배송이라는 이유로 불필요한 소비가 늘어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또한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배송 노동자들을 지킬 법망이 촘촘해지지 않는 이상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죄책감도 커져만 갈 것이다.
퀵커머스는 분명 시대가 요구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속도의 경쟁이 사람과 환경을 소모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클릭 한 번에 도착하는 물건에 기뻐하면서도 그 뒤에서 누군가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와 무풍의 지하공간에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서도 안 된다. ‘몇 분 안에’ 도착하는 편리함은 폭염에 쓰러진 심장들처럼 우리 사회에 경고장이 되어 돌아온다. 속도 경쟁은 ‘몇 년 후’ 우리 사회에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