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 유연한 근무제
남성의 육아 참여 유도

엄마 손 잡고 가는 등굣길 /연합뉴스
엄마 손 잡고 가는 등굣길 /연합뉴스

저출생이 한국 사회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결혼·출산 이후 여성의 경력이 끊기는 ‘M자형 곡선’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육아 부담은 대부분 여성 몫이다. 여성 경제활동은 정체되고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반면 독일은 일·가정 양립 문화를 제도적으로 뿌리내리며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독일의 여성 고용률(15~64세)은 1993년 54.9%에서 2022년 73.1%로 20%p 가까이 상승했다. 출산율은 2005년 1.34명 저점에서 2021년 1.58명으로 반등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2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독일의 성공 사례는 유연한 근무제도와 보육 지원 정책의 결합 덕분으로 한국의 저출생 대응에 시사점을 준다.

정책의 기조는 ‘가족 친화’다. 독일은 2007년 부모수당(Elterngeld)을 도입, 출산휴가 급여를 평균 임금의 67%(최대 월 1800유로)로 인상했다. 과거 동독의 여성 지원 제도(탁아소·유치원 확충, 짧은 근로시간 지원 등)를 확대하며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촉진했다. 특히 남성 육아휴가 활성화와 육아휴직 기간 단축(2007년 주 30시간 이하 시간제 근무 허용)이 핵심이었다.

부부가 모두 육아에 참여하면 2개월을 추가 지급하는 ‘파트너 보너스’로 남성 육아 참여를 적극 유도했다. 또 자녀 양육을 위해 주 15~32시간 근무로 단축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최대 2년까지 보장했다. 만 3세 미만 영아 보육시설을 대폭 늘리고 방과 후 돌봄도 강화했다.

또한 주목할 점은 '정규시간제(regular part-time)' 근무 형태의 보편화다. 2022년 25~54세 여성 취업자 중 43.8%, 유자녀 여성 중 51.5%가 이 제도를 활용했다. 이는 한국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과 유사하지만 전일제와 시간당 임금 차이가 거의 없고, 희망 근로시간과 맞아 안정적이다. 출산 후 여성들은 육아휴직(0~2세 자녀 시기)을 거쳐 정규시간제로 전환하며 노동시장에 복귀한다. 

25~54세 6~8세 막내 자녀 있는 여성의 취업형태 분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저출생 시대의 여성노동시장 특징 및 정책과제'
25~54세 6~8세 막내 자녀 있는 여성의 취업형태 분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저출생 시대의 여성노동시장 특징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 1년 후 육아휴직에서 정규시간제로 이동하는 비율이 증가하며 비취업률이 27.3%(2000년)에서 10.6%(2022년)로 급감했다. 이 같은 정책은 여성들이 출산으로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하지 않도록 했다. 특히 남성의 육아 참여를 ‘돕는 역할’이 아니라 ‘당연한 책임’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반면 한국은 제도는 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육아휴직·유연근무제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어도 기업 분위기에 따라 활용 여부가 갈린다. 

한국은 코로나19 이후 여성 고용률(15~64세)이 62.1%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지만 저출생(2022년 0.78명)이 동반됐다. 30대 여성 고용 증가가 주된 요인이지만 자녀 유무에 따른 경력단절이 여전하다. 중소기업 중심의 제도 활용률이 낮아 보육·유연근무 지원이 부족한 탓이다. 

전문가는 독일처럼 남성 육아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확대, 보육 공공성 강화, 돌봄 공백 해소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출산 장려금 등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여성의 경력을 지키고 남녀가 함께 육아를 책임지는 문화·제도를 만드는 길이 교훈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성미 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한국의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바꾸자는 의도는 아니고 어떤 식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며 "유럽이라고 근로시간과 장소, 유연성을 권리로 보장하고 있진 않고 사용자와 협의를 통해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우리도 근로시간의 유연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시차출퇴근제, 탄력근무제 같은 유연근무제가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즉 출산 이후 (짧은)육아 휴직을 하고 자녀가 어린 시기에는 (긴)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돌봄을 유지하며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는 결합된 형태의 일·생활균형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독일의 경험은 ‘여성 고용 확대’와 ‘저출생 완화’가 상충하는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이 이 모델을 현실에 맞게 적용한다면 저출생 위기 극복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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