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강국’ 중국 기자재 국산화율은 54%
친환경 규제 발맞춰 차별화 전략 속도전
LNG 넘어 수소·암모니아·SMR도 초격차

중국이 조선 강국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지만 정작 대세가 되고 있는 친환경 선박 기자재 분야는 여전히 기술 공백이 크다. 한국 조선기자재 업체로서는 중국의 틈을 파고들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22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4월 11일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 조치(Mid-Term Measure)’를 승인했다. 2027년부터 국제 항해에 투입되는 5000t 이상 선박은 선박 연료유의 온실가스 집약도에 적용되는 강화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강화된 기준 시행이 다가오는 가운데 중국의 선박 기자재 분야와 미래 유망한 친환경 분야의 기술력은 예상외로 저조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코트라에 따르면 중국 조선기자재의 국산화율은 2024년 기준 평균 54%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한국은 90%, 일본은 95% 수준이고 독일, 노르웨이 등 유럽의 전통 조선 강국은 자국 내 100%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중국의 지난해 조선기자재 수입액(37억6200만 달러) 중 선박용 디젤 엔진(12억1200만 달러), 선박 엔진 전용 부품(10억6700만 달러) 등 핵심 장비 비중은 크지만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건조에서 필수적인 액체 화물창, 재액화 시스템 등은 국산화가 미진하다. 중국 711연구소도 일부 기자재는 실증 완료 단계이나 상업화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조선 산업이 고속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서도 고부가가치 기자재와 친환경 핵심 부품 분야에선 외국산에 대한 의존은 여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장 구조 속에서 HD현대그룹,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사들은 해상에서도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선박 건조 분야에서 이미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LNG 이중연료 추진 시스템, 암모니아·수소 추진선 기술 등에서도 선도적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대규모 선박 계약에 연이어 성공하며 수주 물량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6월 초에는 아시아 소재 모 선사로부터 1만5900TEU급 친환경 컨테이너 운반선 8척을 수주했다. LNG 이중 연료 추진 엔진을 탑재한 컨테이너선으로 계약금액만 2조4000억원에 달한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올해 수주한 총 44척의 컨테이너선 중 약 60%인 26척이 LNG 이중 연료 추진 사양”이라며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바탕으로 관련 수주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HD현대는 LNG 추진선을 넘어 암모니아나 수소를 연료로 하는 차세대 선박 엔진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해운업계가 주목하는 선박은 암모니아 추진선이다. 암모니아는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무탄소 연료다.
HD현대중공업은 작년 6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조선해양 전시회 ‘포시도니아 2024’에서 암모니아 연료전지 기반 무탄소 전기 추진 시스템과 발전용 엔진 대체 기술을 적용한 암모니아운반선(VLAC)에 대해 영국 로이드선급(LR)과 미국선급(ABS)으로부터 기본인증(AIP)을 획득했다.
HD현대중공업은 암모니아 연료의 독성가스 배출량을 제로 수준으로 줄여 위험 요인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기술도 개발하면서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HD현대미포는 작년 12월 세계 최초로 수주한 중형 암모니아 추진선 4척의 건조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7월에는 국내 최초로 액화이산화탄소운반선 4척을 수주해 지난 2월부터 건조에 들어갔다.
HD현대는 강화된 탈탄소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 개조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HD현대의 해양산업 분야 종합 솔루션 기업인 HD현대마린솔루션을 앞세우고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노후 LNG 운반선을 활용한 부유식 LNG 생산설비(FLNG) 개조 사업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HD현대는 작년 12월 테라파워로부터 소듐냉각고속로(SFR)용 원자로 용기 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해상 원자력 사업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2월에는 SMR 기술을 적용한 원자력 추진 컨테이너선 모델을 공개하며 차세대 원자력 선박 개발을 본격했고 3월에는 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의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다.
HD현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와 만나 양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며 “HD현대는 협약을 바탕으로 테라파워의 첨단 SMR 기술과 HD현대의 생산 기술력을 결합해 나트륨 원자로 공급 능력을 늘리고 상업화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한화그룹에 편입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도 무탄소 선박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 2월 미국 베이커휴즈(Baker Hughes)·한화파워시스템과 함께 무탄소 선박 추진 체계 개발에 착수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한화가 그룹 차원에서 개발 중인 암모니아 가스터빈은 100% 암모니아만으로 연소가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암모니아와 천연가스를 자유롭게 혼합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며 “완전한 무탄소 운항을 실현하는 만큼 해운업계의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할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돛단배에서 착안한 ‘윙 세일(Wing Sail)’ 기술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윙 세일은 ‘돛’ 형태의 선박 구조물로 날개 상·하단부 압력 차에 의해 양력이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친환경 보조 추진 장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한국선급과 라이베리아 기국(旗國)으로부터 인정받은 LNG 운반선은 윙 세일을 설치해 풍력으로 추진 효율을 높였다. 조타실을 선수에 배치해 풍력 보조 추진 장치 설치 선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운항 가시성 문제도 해결했다.
또 삼성중공업은 선종과 운항 조건을 고려한 맞춤형 ‘에너지 절감장치(ESD) 패키지’ 제품을 개발해 건조하는 선박에 일부 적용하고 있다. 선박 선수에 설치해 공기 흐름을 제어해 연료 사용을 저감할 수 있는 공기저감장치 ‘세이버 윈드’가 대표적이다. 세이버 윈드는 국내 최초로 선급 인증을 획득하는 한편, 대형 컨테이너선에 실제 설치되기도 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암모니아 해상 생산부터 활용까지 전체 밸류체인 솔루션 제공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해 다가올 포스트 LNG 시대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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