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복지부 노인복지주택 설계 연구 책임
분양형 도입 시 정보공개 강화 제안
한국형 UBRC 활성화, 법 개정 필수
명확한 노인주택 법적 정의 마련해야

"'일찍 갈수록 이득이다.' 누군가 실버타운에 왜 들어가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합니다. 국내 기대수명은 83~84세인데 건강수명은 72~73세예요. 평균 10년 이상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보내게 되죠. 이 간극을 줄이는 대안이 바로 실버타운입니다."
20년 넘게 고령자 주거를 연구해 온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실버타운의 실효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비싸서 못 들어간다고들 하지만 실제론 매달 생활비와 돌봄비로 비슷한 비용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죠. 어차피 쓸 돈이라면 미리 좋은 시설을 선점해 들어가는 게 훨씬 합리적입니다."
최근 보건복지부 노인복지주택 제도 설계 연구를 맡아 분양형 도입 논의에도 참여한 유 교수는 "제도 개선 없는 분양형 재도입은 무의미하다"며 정부 책임을 먼저 짚었다. 과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분양형에 찬성했던 그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2013년 '우선 금지 후 제도 보완' 방향에 합의했다. 하지만 2015년 분양형 폐지 이후 10년 가까이 정부는 제도 개선 없이 현 상태를 유지해 왔다는 지적이다.
21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유 교수는 "이제는 시장이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 운영 책임 등을 명확히 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일률적 규제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거 모델로 주목받는 대학 연계형 은퇴자 공동체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에 대해선 "은퇴자들이 대학 내에서 함께 배우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실제 활동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예컨대 여행 관련 강의를 12~13주간 듣고 함께 출국하는 식의 커리큘럼도 가능하다"며 "대학생과의 세대 간 교류도 장점이며 익숙한 대학 캠퍼스에서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는 것은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학 캠퍼스 내에 주거용 부동산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 법령이 개정돼야 UBRC가 제도권 안에서 가능해진다"고 제언했다.

ㅡ고령자 주거 정책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주요 이력 및 활동을 포함해 자기소개 부탁한다.
"고령자 주거를 20년 넘게 연구해 왔다. 건국대 졸업 후 일본 니혼대학에서 주택연금을 주제로 석·박사를 마쳤다. 노인들이 연금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현실을 보며 '노인주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국내 건설사와 일본 현장을 함께 둘러보며 실무적 이해를 쌓았고 2002~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고령자 주거를 연구해 왔다. 2007년과 2017년에는 일본 전역을 직접 돌며 다양한 노인 주거모델을 조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실버스테이, 노인복지주택에 대해 정부나 업계에 정책 방향을 조언하고 있다."
ㅡ최근 복지부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재도입을 위한 연구용역 책임을 맡았다고 들었다. 2015년 폐지된 이유와 현재 논의 방향이 어떤지 궁금하다.
"소유권 기반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복지시설임에도 개인에게 소유권을 부여한 것이 구조적 오류였다고 생각한다. 1997년 도입된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운영 혼선, 제도 취지 훼손, 시설 관리 불가 등 구조적 문제로 2015년 폐지됐다. 특히 개인 소유권으로 인해 리모델링, 일시 퇴거, 상속·처분 등에서 운영이 불안정해지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후 10년간 제도 개선 없이 금지 상태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도입 언급 이후 논의가 재개됐다. 복지부 TF와 함께 재도입 연구용역을 수행했고 결과는 복지부에 제출됐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으로 정권 교체 이후 정책 방향을 지켜보는 상황이다."
ㅡ분양형 실버타운 제도 개선 방안은 어떻게 담았는가.
"핵심은 정보공개를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 사례를 참고해 '중요사항 설명서'를 매년 공시하고 지자체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제안했다. 운영자, 직원 자격·근속연수, 입주자 건강 상태 및 장기요양등급 여부, 퇴소 사유, 프로그램 등 운영 전반을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한국은 이를 고급 마케팅 정보처럼 여겨 비공개하지만 이는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하고 분양·임대 사기로 이어질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정보공개가 제도화되면 운영 실태가 투명해지고 수익 구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로드맵을 통해 단계적 도입이 가능하다."

ㅡ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주거 모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 대안은 무엇일까.
"중산층을 위한 대표적 모델이 '실버스테이'다. 국토부가 설계한 실버스테이는 기본적으로 임대주택이며 일부 분양도 가능하다. 민간사업자가 LH에서 공공택지를 공급받고 HUG·HF 기금 지원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는 구조다. 인허가 상 혜택도 주어진다.
연구용역 과정에서 업계는 △공공택지 활용 △수도권 분양형 허용 △기금 지원 등을 요구했고 이를 반영해 만든 모델이다. 현재 구리 갈매지구에서 1호 사업이 추진 중이며 하반기에도 공모가 예정돼 있다."
ㅡ요양원에 들어가기엔 이르고 실버타운에선 부족한 경증 돌봄 수요를 위한 '어시스트 리빙(Assist Living)'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경증 돌봄을 위한 중간 단계 주거 모델이다. 노인 주거는 건강 수준에 따라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어시스트 리빙(Assist Living)→너싱홈(Nursing Home)으로 이어진다. 국내 노인복지법 체계상으로는 각각 노인복지주택, 유료양로시설, 요양원에 해당한다. 다만 실제 운영에서는 구분이 모호해 건강한 노인이 유료양로시설에 거주하기도 한다.
입주자의 건강 상태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초기에는 자립형 비중이 크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시스트 리빙과 너싱홈의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 최종적으로 어시스트 리빙의 비중이 더 높아지면 너싱홈으로 넘어가게 된다.
어시스트 리빙은 대체로 단기 체류를 전제로 하며 비용은 인디펜던트 리빙 대비 1.5~2배 수준이다. 수익성 측면에서는 어시스트 리빙이 더 유리한 구조다."

ㅡ'케어형 실버타운' 등 중간 단계 돌봄에 대해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장기요양보험 수가 연계 같은 방식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어시스트 리빙이 필요한 시기는 건강이 예전보다 악화했지만 요양 등급까지는 받지 못한 상태다. 현행 제도로는 장기요양보험 적용이 어렵다.
현재 제도는 노인복지주택(인디펜던트 리빙)·유료양로시설(어시스트 리빙)·요양원(너싱홈)으로 구분되며 보험 적용은 요양원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건강 상태에 따라 입주 유형이 혼재되고 있으며 특히 주거복지시설에는 요양 등급 판정을 위한 방문조차 이뤄지지 않아 제도적 단절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시설 유형과 무관하게 입소 후 건강 상태에 따라 요양 등급 판정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한국도 주거·의료 복지시설의 이분법적 구조의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ㅡ고령자 주거 단지 개념으로 '연속보호체계형 은퇴주거단지(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가 있다. CCRC는 여가 중심형, 교육 중심형, 의료서비스 중심형 등으로 구분되며 이중 교육 중심형 CCRC가 UBRC(대학연계형 은퇴자 공동체)로 알고 있다. 국내에 이 모델이 등장한 배경과 기존 실버타운과는 어떤 구조적 차별성을 가지는가.
"UBRC는 지방 소멸과 대학 구조조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모델로 유휴 대학 시설을 노인 주거 공간으로 전환(컨버전)하는 방식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유휴시설이 늘어나는 지방 대학 현실에서 해당 공간을 주거복지 공간으로 활용하고 교육과 세대 간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노인은 캠퍼스에서 수업 참여, 멘토·멘티 역할 등으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의료 접근성도 높은 편이다. 기존 실버타운과 달리 대학이라는 공공 인프라를 활용하고 교육과 공동체 활동이 결합해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차별성이 있다."
ㅡ한국형 UBRC를 제도화하는 데 필요한 정책적 과제는 무엇인가.
"법률 개정이 필수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대학 캠퍼스 내에 주거용 부동산을 둘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건축법 등 개정을 통해 캠퍼스 내 교사 시설(강의동 등)의 용도 변경 허용과 더불어 캠퍼스 내에 노인 주거용 시설을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추진되는 '기숙형 UBRC'는 현행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기숙사로 인허가를 시도하는 사례다. 노인을 '학생' 신분으로 등록해 기숙사 입주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도 형식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 다만 UBRC는 기숙사가 아닌 독립된 주거시설로 정의돼야 한다.
미국의 UBRC 유형에 따르면 대학이 보유한 캠퍼스 부지나 인근에 보유한 토지, 혹은 인근 땅을 사서 활용하는 모델이 있다. 하지만 국내 재정이 열악한 지방대는 신규 부지 매입이 어려운 만큼 기존 유휴 교사 시설의 용도를 변경해 UBRC로 전환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해법이다."
ㅡ정부에 제안하는 국내 UBRC 제도화 방향도 궁금하다.
"복수 부처 기금을 연계한 공모 사업 형태로 추진해야 한다. UBRC는 재정이 부족한 지방대가 살아남기 위해 설계한 모델이다. 국토부 지역활력타운, 행안부 지방소멸대응, 고용부 인재지원 , 교육부 시설개선 등의 기금을 묶어 지방대에 공모 형태로 수백억 원을 지원하는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다. 이는 과거 정부의 RISE 사업처럼 대학에 대규모 예산을 지급한 전례와 유사하다.
현행법상 사립대는 폐교 시 모든 자산이 국고로 환수되는 구조다. 경영진으로서는 부도 직전까지 학교를 유지해야 급여를 받을 수 있어 매각 동기가 없다. 결국 자산을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퇴로, 즉 '출구 전략(exit strategy)'이 필요하다. 새 정부는 사립대가 남는 시설을 UBRC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초중고와 대학 모두 슬림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유 자산의 효율적 활용 대안이 UBRC라고 볼 수 있다."
ㅡ고령자 주거정책 설계 시 정부가 시급히 정비해야 할 우선 과제가 있다면.
"'노인주택'에 대한 법적 정의 마련이 시급하다. 범주, 대상, 제공 서비스 등을 명확히 해야 정책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예컨대 '노인복지주택'은 노인복지법상 주거복지시설의 한 유형이고 '고령자복지주택'은 공공주택특별법상 저소득층 대상 임대주택이다. 단어 하나 다른 두 유형을 일반 국민은 구분하기 어렵다.
복지부는 현재 수십억 원대 보증금의 고가 실버타운도 노인복지주택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마곡 MICE 단지, 르웨스트 등 고급형 공급이 늘면서 정책 논의도 이 방향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국토부가 실버스테이 등 중산층 모델을 별도로 추진하면서 복지부의 역할과 지향점을 다시 모색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양 부처가 함께 정책을 조정하고 법 개정을 통해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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