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100% 공급 외치더니
집권하자마자 SMR 개발법 발의
전문가 “‘원전+RE’ CF100 최적합” 

전남 신안군 안좌면 태양광발전소 전경 /전라남도
전남 신안군 안좌면 태양광발전소 전경 /전라남도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전략으로 ‘RE100’에 대한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혀온 이재명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소형모듈원전(SMR) 육성 특별법을 발의한 행보를 두고 ‘자기모순’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에너지 정책을 정쟁에 희생시키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조언이 따른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적절하게 가져가는 CF100(Carbon Free 100%)을 토대화하여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방안이라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17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RE100을 국가 전략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단순한 친환경 구호를 넘어 산업 생존과 국가 경쟁력을 위한 필수 전략화하여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RE100(Renewable Energy 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구매하거나 자가 생산으로 조달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제적인 비영리 단체 클라이밋 그룹이 2014년 출범한 자율적인 동참 캠페인이다.   

그런데 집권 2주 만에 당정은 원전에 러브콜을 보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MR 기술 및 상용화 모델 개발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담은 ‘SMR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SMR 기술 연구 촉진 및 지원 관련 조항과 기업 참여 확대를 위한 법률적 토대 구축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두고 이재명 정부가 줄곧 RE100을 외쳤지만 현실성을 따졌을 때 재생에너지 100%가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따른다.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 연료, 지열 등 연료의 재생이 가능하고 발전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는 이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미래 최적화된 에너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를 다른 에너지원 없이 단독으로 사용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전력 공급이 들쑥날쑥한 간헐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태양광은 밤엔 발전 자체를 할 수가 없는 데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의 기복이 심하다. 풍력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량에 발전량이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은 주파수와 전압의 변동성 심화로 전력 계통에 악영향을 미친다. 전력 수요·공급 균형이 깨지면 주파수와 전압이 떨어진다. 최악의 경우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여건이 가장 좋지 않은 나라 중 하나라는 점도 치명적이다. 북위 33~39도라는 애매한 곳에 위치해 태양광의 효율도 나오지 않고 풍속과 풍량도 받쳐주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풍향이 바뀌는 계절풍이 불어 풍력을 하기에 매우 좋지 않은 조건이다. 지열, 수력 등 비교적 간헐성이 적은 재생에너지 자원도 적다.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북해 연안의 북유럽 국가들은 풍향이 일정하고 풍질이 좋다”며 “영국의 한 해상풍력은 이용률이 50~60%까지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한국은 해상풍력을 해도 이용률이 30% 나오기도 힘들다”며 “이는 경제성과도 직결되는데 한국의 해상풍력 균등화발전비용(LCOE)에 비해 영국이 절반 수준이었던 점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증가에 발맞춰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도입하겠다고 나섰지만 이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장밋빛 전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SS 개발은 오랜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업계에 따르면 2036년까지 국내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발전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ESS 관련 비용만 4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정부는 ESS 투자 비용을 정책적 지원이 아닌 민간 투자에 맡겨둘 확률이 높다”며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SS 없이는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발전 사업자들이 출력 제한을 당하고 발전사업 자체에 불안정성이 급격하게 증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SS를 도입한다 해도 재생에너지 전기의 품질이 떨어지는 점은 기업 입장에서 치명적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간헐성으로 인해 전력 계통의 주파수 안정(일정한 전력량을 흘려보내는 것)이 매우 어려워져 전기 품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특히 ESS를 통해 전기를 보내고 받는 과정에서 전기의 품질은 더 훼손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요 에너지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기업들의 RE100 실행 현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 RE100 회원사 6곳 중 1곳은 해외에선 목표량 100%에 달성하거나 근접했지만 국내에서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사업장에서 RE100 목표 이행률 50%를 넘긴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50%)과 LG이노텍(61%) 단 두 곳뿐이다. /LG에너지솔루션
이재명 대통령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요 에너지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기업들의 RE100 실행 현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 RE100 회원사 6곳 중 1곳은 해외에선 목표량 100%에 달성하거나 근접했지만 국내에서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사업장에서 RE100 목표 이행률 50%를 넘긴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50%)과 LG이노텍(61%) 단 두 곳뿐이다. /LG에너지솔루션

반도체·화학·바이오 등 완벽히 통제된 환경에서 고도의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는 기업들은 질 좋은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나노미터 단위 차이 하나에 제품의 품질과 효율이 좌우되는 초정밀 산업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외부에서 공급받는 전원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 세계 최고 수준의 비상디젤발전기(Emergency Diesel Generator)를 구축하고 있다.

이같이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결정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전기만을 써야 하는 RE100 가입을 강요받고 있다. 현대자동차·SK·롯데·LG·삼성 등 대기업은 물론 중소·하청기업들도 발주기업들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압박을 받고 있어 고충이 크다.  

RE100 옹호론자들이 가입 예시로 드는 글로벌 기업인 애플, 구글 등은 비교적 전력 품질에 자유로운 소프트웨어 회사에 가깝다. 반도체, 석유, 섬유, 바이오 등 질 높은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국내 기업과 비교하는 건 무리수다. 우리 산업의 깊은 곳을 헤아리지 못한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며 “신재생에너지를 고도화하는 건 디지털이나 데이터, 바이오 융합 기술이 있어야 고도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과감하게 RE100을 폐지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2050 탄소중립 계획을 합리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따른다. 원전 50~60%에 재생에너지 30~40% 비중을 가져가는 CF100(Carbon Free 100%)이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주문하고 있다.  

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RE100은 기만적이고 반세계적이다. 재생에너지로 100%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극히 소수밖에 없으며 한국에서는 현실성이 없다”며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는 원자력과 신재생을 조합한 개념의 CF100(Carbon Free)으로 가야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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