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권위자 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
“경직된 한국 원전산업 현재 잠들어 있어” 
“4세대 내팽개치고 경수로 개발할 때 아냐”
“납냉각원자로, 안정성 측면에서 가장 탁월”

6·3 대선이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각 후보들은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원자력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적극 활용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원전의 위험성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로 현재 가동 중인 원전까지만 사용하자는 입장을 나타냈다. 

여성경제신문은 한국 원자력계 최고 권위자인 황일순 서울대 명예교수(前 UNIST 석좌교수)의 작심 인터뷰를 녹여내어 차기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제언한다. 핵무기화, 사용후핵연료, 안전 사고, 우라늄 고갈 등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서의 원자력 발전의 역할을 풀어내는 코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황일순 교수가 한국의 SMR(소형모듈원전) 개발 상황에서 개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눴다. /황일순 교수
황일순 교수가 한국의 SMR(소형모듈원전) 개발 상황에서 개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눴다. /황일순 교수

“선진국들이 4세대 원자로 개발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한국 원자력 업계는 3.5세대 경수로에 눈이 멀어 잠들어 있다. 코닥은 디지털 기술이 나올 때 아날로그에 눈이 멀어 도태됐고 모토로라는 스마트폰이 나올 때 폴더폰에 매몰돼 도태됐다. 지금 한국 원자력 산업이 딱 그런 처지다.”

황일순 교수는 한국의 SMR(소형모듈원전) 개발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 한국 정부가 개발에 전념중인 i-SMR은 3세대 경수로 원전이다. 경수로(light-water reactor, LWR)란 냉각재로 경수(보통의 물)를 이용하는 원자로다. 현재 세계에서 가동중인 발전용 대형 원자로의 80%가 경수로 모델이다.  

하지만 휴대폰, 자동차 등 모든 기술 분야가 혁신을 거듭하는 것처럼 원자력 발전소도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전 세계 SMR 개발 경쟁은 최근 3.5세대 기술을 넘어 4세대 고속로 기술 개발로 훌쩍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앞서 [원전 강국 제언] ① “원자력, 징검다리 에너지 아니라 미래 인류 이롭게 할 우주 에너지” 편에서 원자력 발전에 적용할 5가지 PEACE 원리를 강조했다. 안전한가(Accident), 청정한가(Environment), 경제적인가(Economy), 지속 가능한가(Continuity), 핵확산을 막는가(Proliferation)다. 이를 최고의 4세대 고속로 모델을 찾는데도 채점 기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4세대 고속로는 비수냉식 기반으로 안전성, 효율성, 경제성, 다목적성(고온의 공정열 및 수소 생산, 해양·선박용으로 사용 등), 사용후핵연료 축소 및 재사용 등을 강화시킨 원자로다. 냉각재를 무엇으로 사용할지에 따라 초고온가스냉각로(헬륨, VHTR), 용융염원자로(용융염, MSR) 소듐냉각고속로(나트륨, SFR), 납냉각고속로(납, LFR) 등으로 종류가 나눠진다. 

황 교수는 3세대 경수로보다 4세대 고속로 원전이 안전한 이유에 대해 “발생하는 열이 적어 사고가 났을 때 멜트다운 위험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멜트다운(Meltdown)은 온도가 상승해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리는 현상을 말한다.

3세대 또는 3.5세대 경수로의 냉각재로 사용되는 물이 1배 열을 가해야 멜트다운이 발생한다면 용융염은 120배 열을 가해야 멜트다운이 일어난다. 가스냉각은 350배, 납은 820배, 나트륨은 930배까지 멜트다운을 견딜 수 있다. 4세대 원자로는 끓는 점이 높고 열 전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또한 물을 냉각재로 쓰는 경수로는 연비가 낮아 핵연료를 자주 교체해야 하고 그만큼 사용후핵연료도 많이 나와 위험성이 높다. 황 교수는 “구소련의 수냉식 원자로는 바다 위에서 핵연료를 자주 교체하다가 5번이나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며 “미국은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며 핵확산 위험성을 감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냉각제로 가스, 납, 용융염, 나트륨 등을 사용하는 4세대 고속로는 연비가 높아 20% 이하 저농축 우라늄의 1회 장전으로 수십 년간 교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핵연료 무교체 사용으로 안전성, 경제성, 핵안보성, 친환경성(사용후핵연료) 등 4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냉각재로 액체 납을 사용하는 납냉각고속로(LFR)가 안전성에서 가장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황 교수는 설명했다. LFR는 선박이 바다에 침몰하면 납이 바로 굳어 핵연료를 밀봉해버리기 때문에 안정성이 다른 고속로에 비할 바 없이 높고 해양 오염도 막을 수 있다. 

납-비스무스 원자로를 장착했던 소련 알파급 잠수함은 서방세계를 떨게 만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
납-비스무스 원자로를 장착했던 소련 알파급 잠수함은 서방세계를 떨게 만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

황 교수는 “구소련의 납 냉각 방식의 핵잠수함 8기는 10km 밖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도 끄떡 없이 만들어놨다”며 “구소련에서는 이 8기의 핵잠수함을 80년간 실전에서 사용해 기술 검증을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냉각재로 나트륨을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나 용융염을 사용하는 용융염원자로(MSR)는 멜트다운 안전성은 높지만 물이 닿으면 폭발하는 위험성이 있다. 냉각재로 헬륨을 사용하는 초고온가스냉각로(VHTR)도 물에 닿으면 불이 난다. 

황 교수는 “옛날 미국 핵잠수함 ‘시울프(Sea Wolf)’에 나트륨 원자로를 넣었는데 화재가 발생하면서 해당 원자로를 꺼내고 경수로로 교체했던 사례가 있다”며 “즉 소듐, 용융염, 헬륨은 열 전달 특성에 있어서는 안전마진이 탁월하게 높지만 아직 화학적으로 불안전한 요소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납냉각고속로(LFR)는 납의 금속 부식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이 또한 해결됐다고 황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금속 부식 문제는 부식 저항성이 탁월한 합금 개발로 해결했고 납을 고온 액체로 유지하는 운용상의 문제도 인덕션 가열장치 설치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SMR은 전세계 100가지 모델이 있다. 최고 기술은 언제나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 최고 기술을 찾지 못하고 사분오열 돼있다”며 “원래 기술이란 것은 원리를 알아야 하는데 기준으로 삼을 만한 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수원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3.5세대 경수로 i-SMR(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은 그대로 진행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는 4세대 원전 중에서도 안전성이 담보되는 납냉각고속로(LFR) 투자에 전 세계 퍼스트무버가 돼야 미래 에너지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황 교수의 주장이다. 

혁신을 위해 깨뜨려야 할 벽도 있다. 바로 정부 부처간, 산업계-연구계간 이기주의다. 한국은 원자력 정책을 추진하는 머리가 2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다. 원자력 분야 초기 연구개발은 과기정통부가 담당하고 사업화와 상용화는 산업부가 맡고 있다. 

머리가 2개이다 보니 정책 추진에 있어 부처간 이해관계가 얽히고 이견이 발생하면서 정책 추진이 지연되는 점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로 한국은 SMART라는 경수로 SMR을 일찍이 개발했음에도 상용화 시기를 놓친 사례가 있다.  

황 교수는 “부처-이해관계 집단과의 결탁 문제는 정부가 정말 필요한 분야에 투자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결정적 요소”라며 “과기정통부는 연구단지, 산업부는 산업계에 끈끈히 연결되어 있어 아무리 창조적이고 좋은 정책 방향이라도 이해관계 집단의 이익에 반하면 추진을 하기가 어렵다”고 꼬집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이번 SMR 개발을 마지막으로 [원전 강국 제언] 시리즈를 여섯 편에 걸쳐 다뤄보았다. 대외적으론 비핵화를 전제로 KAUKUS 동맹과 다국적 재처리 시설을 통해 ‘안보’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고, 대내적으론 ‘우라늄 공급’과 PEACE를 만족하는 완성형 SMR인 ‘납냉각고속로(LFR)’ 기술 개발에 전념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차기 정부는 ‘원자력 혁명’을 통해 95%를 수입하는 국가 에너지 구조를 체질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 우리 원자력 산업, 조선해양 산업, 제조산업의 강점을 더 강하게 만들어 국내 자립은 물론 1경5000조원 규모 세계 친환경 시장에서 탄소중립을 선도함으로서 거대한 기회를 만들자.”

황일순 교수가 인터뷰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황일순 박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 학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 석사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 석사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핵재료공학 박사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재료공학과 연구 교수
△기초전력연구원 원전성능관리연구센터 설립
△미국 에너지성 유카산 고준위처분장기술개발 국제전문위원
△원자력정상회의(SHAPE-2010) 공동조직위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원자핵공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
△한국핵정책학회 부설 핵안보연구소 소장
△울산과학기술원 석좌교수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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