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부암동 스코프(SCOFF)
화려한 외관, 예쁜 인테리어보다
빵 맛에 충실한 빵집
가장 좋아하는 삼대장은?
밥, 빵, 떡, 면. 좋아하는 순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면, 밥, 빵, 떡의 순으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정도를 100퍼센트의 원형 그래프에 나타낸다면, 면이 50% 밥이 30% 빵이 15% 떡이 5%이지 않을까 싶다. 정도를 빈도로 환산해 보면 하루에 세 끼씩 한 달에 90끼의 기회가 있다면 그중 나는 한 달에 빵을 13번가량 먹는 셈이다. 이 정도면 나는 빵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까.
마치 버드나무 가지 잎을 하나씩 떼며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를 가늠하듯 빵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좋아함과 좋아하지 않는 경계의 어느 지점에 애매하게 머물러 있었다. 소위 ‘빵지순례’라고 불리는, 전국에 유명한 줄 서는 빵집들(대전에 어디, 군산에 어디, 경주에 어디, 전주에 어디, 서울에 어디 등)을 돌아다니는 경험을 나도 해보았지만 “음~맛있네” 하는 그 이상의 감회가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은 빵집이 있으니 바로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본점을 두고 있는 스코프(Scoff)라는 빵집이다. 빵에 시큰둥했던 내가 어쩌다 스코프의 매력에 빠지게 됐을까.

스코프를 알게 된 건 열렬한 빵지순례자(?)인 아내 때문이었다. 빵에 시큰둥했던 나와는 달리 맛있는 빵을 찾아 먹으러 다니는 데 열정적이었던 아내는 어느 날 나를 부암동 스코프로 인도했다. 스코프는 영국식 베이커리 하우스이다. 스콘이 유명하다. 커피를 비롯해 각종 영국식 디저트류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위치는 종로구에 집중 분포되어 있는데 부암동 스코프가 본점이고 서촌에 두 개의 점포가 있다. 찾아보니 롯데백화점 잠실점/명동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스타필드 수원점 등에 직영 지점이 더 있어서 근처에 있다면 한번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스코프는 예상치 못한 매력을 선사했다. 빵에 대한 인식이 그리 특별하지 않았던 내게 일단 스코프는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바로 빵이다’라는 무언의 외침 같았다. 스물몇 평 남짓 작은 매장에 고소한 빵 냄새가 가득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부암동 스코프의 매력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빵의 근본’을 지키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서 파는 빵들은 그 외관에 무리하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반짝이는 장식이나 과장된 디자인 없이 그저 맛에 집중한 빵들이 그 자리를 지킨다.
맛도 맛이지만 어떻게 하면 힙해 보일까, 어떻게 하면 SNS에 인기가 있을까를 더 고민하는 ‘요즘 카페 시대’에 오히려 (어찌 보면 투박한) 인테리어에 신경 쓰기보다는 오로지 베이커리에만 집중하는 듯한 온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기류를 느끼고 나니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스코프에 눈길과 애정이 가는 걸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스코프에서 자주 찾는 삼대장은 버터스콘, 영국식 고기파이, 빅토리아 치즈 케이크다. 화려한 외관을 중시하는 세상처럼 빵도 디저트도 그 외모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스코프의 빵은 외관보다는 맛과 질감에 집중한다. 겉모습이 화려하지 않아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누구라도 ‘보통 내공이 아닌데?’라고 느낄 맛이다. 포장은 눈길을 낚아채지만 근본은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다.

빅토리아 치즈 케이크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즐겨 먹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케이크다. 스코프의 빅토리아 치즈 케이크는 부드럽고 크리미한 치즈와 섬세한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케이크 위에 눈처럼 내려앉은 파우더가 풍미를 더한다.
빅토리아 치즈 케이크를 먹을 때면 언제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그냥 먹어도 너무 달지 않은 케이크지만 쌉싸름한 커피와 함께 입안에 담기는 느낌은 조화로움을 넘어 ‘공생’처럼 느껴진다.

영국식 고기파이는 페이스트리 안에 다진 돼지고기를 넣은 파이다. 김밥의 단면을 닮아서 디저트 치고는 다소 투박한 외관을 가졌지만, 식감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맛은 ‘단짠단짠(단맛과 짠맛의 조화)’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스코프에서 영국식 고기파이를 먹었을 때의 맛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스코프 스콘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는 버터 스콘을 가장 선호한다. 스콘 하면 보통 딱딱한 질감과 뻑뻑한 식감 때문에 목이 메는 경우가 많은데, 스코프의 스콘은 튀김처럼 바삭한 겉면과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속이 어우러져 재밌고 폭신한 맛을 전해준다. 이 모든 빵은 화려한 장식 없이 본질적으로 맛있는 빵의 모습을 고수한다.
스코프의 빵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나는 빵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빵을 고를 때 그 빵이 얼마나 근본적인 맛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외관이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맛에 집중하는 빵이야말로 진정한 빵이라는 것을. 스코프의 빵은 바로 그런 ‘근본’을 지키는 빵이다.
스코프의 빵을 먹으러 가는 그 작은 여정이 나에게 큰 기쁨이 된다. 그곳에서 맛보는 한 입의 빵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혹은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맛있는 빵을 먹는 순간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빵에 시큰둥했던 내가 유일하게 먼저 찾아가는 빵집. 결국 내 마음이 동했던 건 화려한 수사가 아닌 묵묵한 근본이었음을 되새기며 오늘도 부암동 스코프를 가본다.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thebo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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