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캡슐 커피 머신
우연히 만난 '신학기 짝꿍'
나랑 잘 맞는 '베스트프렌드'가 될 줄이야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인 작년 12월. 네스카페(Nescafe) 돌체구스토(Dolce-gusto) 캡슐 커피 머신을 판매하는 라이브 방송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내가 방송에서 판매했던 제품, 내가 샀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을 경계하는 편이다. 쇼호스트로서 주어진 ‘제품’을 이리저리 만지고 분석하다 보면 저만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비로소 '상품'이 되는 건데 내가 상품화한 제품에 내가 매료되어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평소 크게 관심 없었던 물건이었음에도 방송이라는 우연한 기회에 매료되어 지갑을 열게 되는 황당한 즐거움이 가끔 일어나는데,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캡슐 커피 머신이 그러했다.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캡슐 커피 머신을 산 이유, 우선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 그날 내가 방송하고 내가 샀던 제품의 정확한 명칭은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지니오S 터치’라는 최상위 모델이었는데 당시 네스카페 공식 홈페이지에서 13만원 정도에 판매하는 제품이었다.
연말 특집이었던 그날 방송에서는 동일 제품을 9만원 대의 할인가로 판매했다. 괜찮지 않은가? 게다가 얹어 주는 사은품이 많았다. 스타벅스 머그잔과 보온병, 네스카페 캡슐 커피 세트 여러 개 등. 10만원 내고 20만원어치를 챙기는 격이었다. 어떤가? 이 정도면 누구라도 혹할,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친구(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지니오S 터치)와 함께 지낸 지 두 달여가 지난 이 시점에서 우리의 관계(?)를 중간 평가하자면 ‘아주 좋음’이다. 우연히 만난 신학기 짝꿍과 베스트프렌드가 된 기분이다.

아니, 이렇게 좋아할 것을 왜 그동안 마음에 품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니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캡슐 커피 머신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과거 연애의 아픔 마냥, 캡슐 커피 머신을 썼던 전력들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처가살이 하던) 7년 전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캡슐 커피 머신’을 써 봤고, 4년 전에는 개인 작업실에서 선물 받은 ‘이디야 캡슐 커피 머신’을 써 본 적이 있다. 둘 다 시큰둥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조망권 답답한 아파트에 살던 7년 전의 나는 벌컥벌컥 들이붓는 찬 커피를 좋아했다. 조금씩 천천히 즐기는 따뜻한 캡슐 커피는 시간 낭비였다. 강남 한복판 4년 전 개인 작업실에서의 캡슐 커피도 다르지 않았다. 무채색 빌딩을 바라보며 작업실에서 마시는 커피는 풍미보다 쓴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인근 카페를 찾아가 사 마셨다.
두 번째는 디자인 때문이었다. 내 취향의 디자인이 아니었다. 둥근 헤드 때문인지 본체가 ‘맹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공상과학영화의 우주선이나 UFO를 연상케 하는 자태는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오히려 디자인을 고려해 캡슐 커피 머신을 사야 한다면 ‘네스카페 돌체구스토’의 경쟁 제품인 ‘네스프레소 버츄오 캡슐커피머신’ 쪽이 내 취향이었다.

이 정도면 상극인 것 같은데, 도대체 최근에 산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지니오S 터치’는 왜 잘 쓰게 된 걸까. 써보니 ‘머신의 편의성’, 아메리카노뿐만 아니라 카페라떼 · 플랫화이트 · 카라멜 마끼야또 등 다양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캡슐의 호환성’, 여기에 캡슐 커피 특유의 ‘크레마’라고 하는 부드러운 거품이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좋았다고 말하면, 마치 '스마트폰 좋더라구요. 전화/문자도 할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영상도 볼 수 있어서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내가 처한 공간이 바뀌었다. 커피를 마시는 환경이 7년 전, 4년 전과 달라졌다. 바로 ‘집’ 때문이다.
지금 사는 집의 뷰가 좋다. 한마디로 커피 마실 맛이 난다. 막간을 이용해 우리 집을 소개하자면, 서울 한복판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아파트가 주위에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산동네에 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다다를 수 있는 우리 집이지만 언덕의 고통은 뷰의 기쁨과 정비례한다.
탁 트인 시야, 인왕산 바위의 웅장한 산세, 통창으로 내리쬐는 햇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흑백이지만 우리 집에서 보는 인왕산의 자태는 제철 풀-컬러(full color)다. 시간 내어 굳이 찾아가는 전망 좋은 카페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홈 카페(home cafe)에서 카페(cafe)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홈(home)이 중요한 거였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처럼 물건에도 타이밍이 있는 걸까? 같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물건에 마음이 깃드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이 ‘때’라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지수를 1점 올릴 수 있다. 지금은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캡슐 커피 머신과 나의 호흡이 잘 맞는 때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이 호흡이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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