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7년간 손목에 찼던 티쏘 시계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소중한 물건
시간의 가치와 일상을 실감케 하는
의미 있는 ‘필요’
손목시계를 고를 때 저마다의 기준이 있다. 일상의 편의를 생각해 스마트워치를 찾는 이도 있고 뽐내거나 드러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명품 브랜드의 고가 시계를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건강과 일상의 밸런스를 챙겨주는 '친구'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상징하는 '명함'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패션 감각을 드러내는 '액세서리'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손목 위의 이 작은 물건이 단순히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를 넘어, 각자의 삶과 태도를 반영하는 일종의 '오브제(objet)'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목시계는 '필수'가 아닌 '필요'다. 손목시계 하나 없다 한들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특히나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의미 있는) 손목시계 하나쯤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왜일까? 심지어 나처럼 시계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아마도 손목 위 작은 물건에 지나지 않지만, 투영하고 싶은 나만의 욕망과 삶의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손목시계는 '필요'하다.

내가 애용하는 시계는 티쏘(TISSOT)라는 스위스 브랜드의 Chemin des Tourelles Powermatic 80이라는 모델이다. 시간을 표시하는 본체는 글라스 소재로, 손목에 장착할 수 있는 밴드는 메탈 소재로 되어 있다. 광택감이 도는 소재에 흰색, 은색, 금색이 조화된 색채감이 더해져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준다. 또한 단정한 로마 숫자로 새겨진 인덱스와 태엽을 감아 시계를 돌리는 오토매틱 방식의 아날로그적 요소가 특징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감도를 넘나드는 매력이 돋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손목시계를 언제 어떤 옷에도 거리낌 없이 착용한다. 정장과 셔츠 차림에도, 편안한 캐주얼 룩에도, 팔이 훤히 드러난 반팔에도 말이다. 시계를 고를 때 단순히 ‘멋’만 생각하지 않았지만 몸에 착용하는 건데 '멋'을 외면하지 않았다. 내 손목 위에 이 티쏘 시계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 시계는 내 스타일과 태도를 조용히 완성해 주는 물건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사적인 상념으로 시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이 시계를 언제부터 썼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내가 선물로 사 주었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려면 괜찮은 시계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그때 아내가 내게 추천한 브랜드가 티쏘(TISSOT)였다. 그 당시 시계에 문외한이었던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내게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아내의 추천이니까 의심 없이 '좋은 거겠지'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만나보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과 묵직하지만 과하지 않은 존재감이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는 티쏘라는 브랜드가 내뿜는 에너지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욕망과 일치했다. 알아보니, 스위스 시계 특유의 정직한 완성도와 1853년부터 이어 온 헤리티지를 담은 브랜드였다. 이토록 의미 있는 시계라니! 아내의 큐레이션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나를 위해 아내가 건넨 작지만 든든한 응원으로 느껴졌다.
그 후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시계를 차느냐는 단지 시간을 확인하는 수단을 넘어서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브랜드의 역사, 디자인의 결, 기계의 호흡은 결국 그 시계를 고른 이의 취향과 태도를 드러낸다. 시계는 때로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겉으로 과시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 된다. 혹은 추억의 징표일 수도. 나에게 티쏘는 그사이 어디쯤 있다. 과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럴듯한,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물건. 무엇보다 누군가의 진심이 깃든 물건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삶의 일부가 된다.
7년 동안 나는 나의 손목을 자주 바라보았다. 여전히 새것처럼 쌩쌩한 시계와 흠집 없이 깨끗한 자태를 보며 '내가 이런 시계를 차는 사람이라니'라는 소심한 오만을 느낄 때가 많지만, 어느 날은 부드럽게 흐르는 초침의 리듬을 강물처럼 지켜본 적이 있다. 하루의 속도를 감각하고, 매일 내 손목 위에서 시간이라는 생명을 조용히 살아내는 작고 정직한 동반자. 문득 이 시계의 감각이 고마워졌다.
어찌 보면 나의 이 티쏘 시계가, 지난 7년의 나의 모든 행위와 감정을 지켜본 '블랙박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손목 위의 시간을 보듯, 손목 위의 시계도 언제나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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