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반도체 등 상호관세 중복 적용 피해
품목별 관세 여파에 기업 실적 타격 불가피
K푸드 수출 감소 우려···패션·뷰티도 촉각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들고 있는 트럼프 /연합뉴스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들고 있는 트럼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시간으로 3일 오전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폐지됐다는 평가와 함께 대미 수출이 압도적인 우리나라 경제가 ‘퍼펙트 스톰’ 수준의 복합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자동차, 반도체부터 식품, 패션, 뷰티까지 주요 수출 품목을 생산하는 각 업계에서 향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25% 관세(10% 기본관세+15% 상호관세)를 비롯해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상호 관세를 발표했다. 관세조치의 발효시점은 10% 기본관세는 4월 5일, 국가별 상호관세는 4월 9일이다.

백악관은 기존에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대상으로 발표한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구리, 의약품, 반도체, 목재 등에 대해선 상호관세가 추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대미흑자가 큰 한국에 고율의 관세율을 부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전년도보다 10.4%가 증가한 1278억 달러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미 무역 수지는 557억 달러 흑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 품목은 △자동차 △반도체 △석유제품 △배터리 등이 꼽힌다. 해당 품목을 생산해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한국 자동차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는 미국이기 때문에 완성차 업계의 부담도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 생산 대수는 413만대였다. 그 중 수출 대수는 278만대(67%)로 대미 수출 대수는 143만대(현대차·기아 101만대, 한국지엠 41만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생산의 35%, 전체 수출의 51%에 달하는 수치다. 또한 미국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4400만 달러(약 50조원)에 달했다. 

완성차 업계는 상호관세 추가 적용은 피했지만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은 지난달 26일 발표된 내용에 따라 이날 자정부터 별도의 25% 관세가 부과된다. 자동차 부품인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별 25% 관세도 이미 부과된 상황이라 현대차·기아·한국GM 등의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한국 수입차 81%가 한국에서 생산된다”고 언급해 당장 상호관세가 면제됐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 반도체는 대미 수출 비중이 7.5%로 중국(32.8%), 홍콩(18.4%), 대만(15.2%)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만 여러 국가를 경유해 제조되는 만큼 상호관세 적용 범위와 기준에 따라 관세 부담이 클 수 있다. 다행히 반도체 제품은 이번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돼 단기적으로 부담을 덜었지만 여전히 대미 수출에 25% 이상의 고율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다른 국가의 반도체에 대해 최소 25% 이상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백악관은 별도의 산업별 관세를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식 입장은 없지만 트럼프의 발표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향후 품목별 관세 부과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 중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불닭볶음면 등 삼양식품 제품 /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불닭볶음면 등 삼양식품 제품 /연합뉴스

대미수출 시장에서 급격히 성장 중인 식품, 패션, 뷰티 기업들도 미국발 관세 전쟁에 수출 타격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가공식품과 신선식품 대미 수출액은 15억9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8.9%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도 대미 식품 수출액은 3억5000만 달러로 25.1% 늘었다. 라면과 과자 수출액이 가장 많으며 쌀가공식품, 음료, 김치, 인삼류도 주요 수출 품목이다.

이처럼 대미 수출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상호관세가 부과된다면 소비자 가격이 상승해 미국 소비 둔화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특히 삼양식품, 대상 등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비중이 큰 식품기업들은 상호관세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해외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해외 매출 비중이 전년 대비 8%p 오른 28%을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 공장이 없어 관세 대책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삼양식품은 관세 부과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며 매출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마진을 줄이는 방안도 고민해 왔다. 삼양식품의 대표 제품인 불닭볶음면의 미국 판매 가격은 봉지 당 1.5달러 정도로 책정된다. 

김치 수출 1위인 대상의 경우 미국 LA 현지에 김치 물량 중 일부를 생산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비중이 2배 더 높다. 대상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2000억원에 달한다. 대상 측은 정부 방침에 따라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미국 현지 공장을 두고 있는 CJ제일제당, 농심, 풀무원 등은 상대적으로 관세 부담이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상호관세 46%가 부과되는 베트남에 제조 시설을 두고 있어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갭 등의 의류 브랜드를 제조하는 한세실업은 베트남에 공장과 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엘살바도르나 과테말라 등 중미 지역 생산기지를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세아상역도 호찌민과 하노이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어 대처가 필요할 경우 세아상역이 진출해 있는 생산 국가에서 운영 중인 공장을 활용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제품을 수출해온 뷰티업계도 이번 관세 부과로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대미 화장품 수출액은 17억100만 달러(약 2조5000억원)로 프랑스(12억6300만 달러·약 1조8000억원)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다만 미국에서는 한국 화장품이 가성비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데다 미국 시장에 화장품을 수출하는 대부분의 국가에도 관세가 적용되는 만큼 가격 경쟁력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아모레퍼시픽 등 뷰티 기업들은 필요하다면 가격 인상이나 프로모션 비용 관리를 통한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국내 경제와 산업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충격 완화를 위해선 내수 진작을 위한 금리 인하와 추경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관세 정책은 우리 수출을 줄여 성장률을 둔화시키고 무역 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며 “대응하는 방법은 앞으로 품목별 상호 관세가 있을 수 있으니까 우리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라든지 철강, 반도체 이런 부분에서 관세를 낮게 받기 위해서 작은 부분들은 양보하고 큰 부분에서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협상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장률이 둔화되니 기업 부실이나 금융 부실이 늘어날 수 있어 내수를 진작시키는 정책을 써서 충격을 완화해야 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나 추경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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