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성 교육 수준 상위권이지만
노동시장 진입·경력 유지 힘든 현실
유교적 가치관 맞물려 성별 권력 有
여성, 국가 성장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세계여성의날을 나흘 앞둔 2023년 3월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노동연대회의가 주최한 2023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 차별의 상징인 유리천장을 깨고 나가자는 의미로 투명한 천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여성의날을 나흘 앞둔 2023년 3월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노동연대회의가 주최한 2023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 차별의 상징인 유리천장을 깨고 나가자는 의미로 투명한 천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여성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지만 일하는 여성의 현실은 여전히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고학력 여성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고 경력을 지속하는 데 있어 노동시장 구조와 사회적 인식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과 역량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구조적 변화가 시급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25~64세 인구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54.5%로 OECD 평균(41.0%)보다 13.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성별로는 남성 56.1%, 여성 52.8%로 성별 차이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은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OECD 주요국 중에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에서도 여성들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2023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2021년 국내 STEM 학사 졸업자 중 여성 비율은 23.7%로 OECD 평균(21%)을 웃돌았다.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이었던 분야에서도 여성들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교육적 성취가 곧바로 노동시장 진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국 여성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졌지만 노동시장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여성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졌지만 노동시장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여성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졌지만 노동시장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2024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약 63%로 OECD 평균(64%)보다 낮다. 반면 스웨덴(80.1%), 덴마크(77.5%) 등 여성 교육 수준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은 노동시장 참여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연구·전문직에서도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3년 연구직 노동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직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38.4%로 남성(17.5%)의 두 배 이상이었다. STEM 전공 여성 비율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 취업 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게시판 한쪽에 마감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여성 취업 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게시판 한쪽에 마감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경력을 지속하기 어렵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0.9%로 20대(72.5%)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결혼·출산 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비율이 높은 점이 이러한 통계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500대 기업 여성 임원 비율도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임원 비율은 7.3%로 프랑스(44%), 영국(39.1%), 미국(31.3%) 등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반면 여성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들은 이를 경제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1년 기업이사회 성별 균형 법을 도입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여성 임원을 40% 이상 유지하도록 했다. 이 정책 시행 이후 프랑스 내 여성 임원 비율이 빠르게 증가했다.

스웨덴은 유연한 노동환경과 육아휴직 할당제(부모 공동 사용)를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 유지율을 높이고 있다. 캐나다는 STEM 분야에서 여성들의 경력 지속을 지원하기 위해 여성 창업 지원 및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동시장 진입부터 승진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장벽을 제거하고 특히 출산·육아 이후에도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력 단절 방지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노동시장 진입부터 승진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장벽을 제거하고 특히 출산·육아 이후에도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력 단절 방지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이 단순히 여성의 교육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배운 만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동시장 진입부터 승진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장벽을 제거하고 특히 출산·육아 이후에도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력 단절 방지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성수의 한 중견기업 상무인 김은정 씨(가명·여·58)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근본적으로 여성이 사회 진출을 하기 위해선 가정을 이룬 여성들도 똑같은 기회를 받게끔 해야 한다”며 “그게 혜택이 아니라 당연한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 손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한국 여성의 교육 수준이 세계적으로 높은데도 노동시장 진입과 경력 지속이 어려운 주요 원인으로 구조적 차별과 사회적 인식을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역차별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노동시장에서는 여전히 성별에 따른 이중 구조가 존재한다”며 “여성들은 고학력에도 불구하고 질 낮은 일자리에 배치되거나 출산·육아 이후 고용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기업이 여성 인재 활용을 단순한 성평등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정부와 기업이 여성 인재 활용을 단순한 성평등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허 조사관은 이러한 차별이 단순한 시장 논리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성별 역할 인식과 맞물려 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남성이 생계 부양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남아 있고 이는 노동시장에서 남성이 더 많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연결된다”며 “블라인드 채용 등이 원칙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실제로는 점수를 조작해 남성을 합격시키고 여성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례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성별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정부와 기업이 여성 인재 활용을 단순한 성평등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 조사관은 “국가가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남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기존의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차별 없는 환경에서 모든 인재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문화적 가치에 따라 특정 성별에 더 많은 크레딧을 부여하는 방식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경제 성장과 노동시장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조적 변화를 추진할 것인지 정부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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