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MRO 사업 입찰 예정
국내 조선사 적극적 참여 의지
한화 필리조선소 등 현지화 전략도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 '필리 조선소'를 방문한 마크 켈리 상원 의원이 조선소 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켈리 의원 홈페이지 캡처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 '필리 조선소'를 방문한 마크 켈리 상원 의원이 조선소 책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켈리 의원 홈페이지 캡처

국내 조선업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력 요청에 부응하여 미국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진출 기반을 다지고 있다. 함정 MRO를 통해 미국과의 신뢰를 구축해 향후 10년간 약 108조원까지 커질 함정 신조 시장에 수월하게 진입하겠다는 복안이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 해군은 이달 중 해상수송사령부(MSC) 7함대 MRO 사업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7함대는 한반도 주변 해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는 함대다. 그간 7함대 MRO는 일본이 주로 도맡아 왔는데 지난해부터 국내 조선사들이 MRO 사업을 본격화함에 따라 글로벌 수주전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함정 MRO는 신조보다 선가는 낮지만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중장기적 수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조선업계의 새로운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떠오르는 사업이다. 전략적인 중요성도 크다. 함정 MRO를 통해 미국의 신뢰를 구축하고 향후 함정 신조 시장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HD현대중공업은 MSC 7함대 MRO 사업에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지난해에는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에 입찰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지만 독(선박 건조 공간) 부족 문제 등으로 불참했다. 이후 울산 조선소 내 일부 독을 배정한 HD현대중공업은 이번 수주전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2~3척의 사업을 따낸다는 목표다. 

지난해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와 급유함 ‘유콘’ 등 2건의 MRO 사업을 수주한 한화오션도 입찰 참여가 유력하다. 한화오션은 올해 5~6척의 추가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 해군은 2054년까지 함정 390척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선 전투함 293척, 군수지원함 71척 등 총 364척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 내 생산능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자국 조선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존스법’ 등이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동맹국인 외국 조선소에서도 해군 함정 건조를 가능하게 한 법안이 발의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동맹국 중 함정 건조 이력이 있고 낮은 비용으로 빠른 납기를 맞출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안보와 기술 유출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초기 단계에선 대형 전투함보다는 소형 전투함, 군수지원함 등 전투 능력이 비교적 낮은 함정 수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미 해군의 함정 조달 계획 기준으로 향후 10년간 국내 조선업체들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은 소형 수상전투함 21척, 군수지원함 32척, 전투보급함 24척 등 총 77척, 약 108조원 규모로 전망된다.

호주, 일본 등 기존 동맹국과 일본 조선사가 주요 일감을 수주하고 그다음으로 한국 조선사가 배분받을 확률이 80% 이상이라는 게 조선업계의 전망이다. 한국의 조선 역량이 뛰어나지만 호주, 일본 등의 동맹 레벨이 더 높고 우선순위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은 더 크다. 이 경우 국내 조선업계의 예상 수주 규모는 21조원 수준에 달한다.

현지화 전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지난해 12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를 1억 달러에 인수하고, 필리조선소의 시설인증보안(FCL)을 획득하는 내용 등이 담긴 중장기 전략 수립에 나섰다.  

필리조선소는 미국 본토 연안에서 운항하는 상선을 전문적으로 건조하는 조선소로, FCL을 획득해야만 미 해군 MRO 사업을 수주할 수 있다. 향후 미 함정 건조 사업 참여를 위해서도 해당 자격은 필수적이다.  

필리조선소 데이비드 김(David Kim) 사장은 “현재 미국 조선업은 공급망 불안정과 숙련된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며 “필리조선소가 이를 해결하고 미국 조선업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조선소는 미국에서 건조된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컨테이너선 등 상선 50%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 대형 선박 위주로 수주하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필리조선소는 중형급 유조선 및 컨테이너선 등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혀 갈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필리조선소가 미 해군 함정 MRO 사업과 향후 길이 열릴 가능성이 있는 함정 건조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FCL 획득이 필요하다”며 “현재 한화그룹에서 주재원을 보내 필리조선소를 조사하고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데, FCL 획득과 더불어 상선 경쟁력 확대 관련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래 시장의 점유를 위해서 고부가 저탄소 선박 주력 선종 분야 산업으로의 전환이 굉장히 절실하다”며 “이를 위해 실증 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미국의 예를 보다시피 숙련노동공의 확보가 정말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우리 노동시장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며 “관세 전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우리 조선 산업이 대한민국의 전략적 산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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