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S "韓日 동맹국과 선박 건조 역량 강화해야"
中 견제 위해 美, 조선업 재건 행정명령 준비 중
국내 조선업체 빅3, 각기 다른 전략으로 대응
"방위비·관세 완화 등 유리한 협상 카드 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이 본격화되면서 철강·알루미늄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 반면 미국이 중국의 해양권 확대 견제를 조선업 재건을 추진하면서 한미 협력에 대한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4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발표한 '선박 전쟁' 보고서에서 미국의 군함 확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을 핵심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투자 공조와 정책적 인센티브를 통해 일본, 한국, 유럽 등의 선박 건조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조선업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행정명령은 미국 조선 산업을 재건하고 글로벌 해운 산업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관련 기사 : 美 MRO 잡으러 나온 K조선···‘108조’ 시장 천재일우 기회
현재 미국 조선업은 정부 보호 아래 경쟁력을 상실하며 군함 건조·수리 역량이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조선업에서 중국에 뒤처졌다"며 신속한 대응을 강조했다. 이에 미 의회에서는 동맹국 조선소에서 군함 건조를 허용하는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해외 조선소에서 군함 건조를 금지하는 이유는 기술 유출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군함 건조 역량에서 중국을 견제하기는커녕 따라잡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미 정부 차원에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국 해군은 현재 295척의 군함을 2054년까지 390척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이에 따른 구매 비용만 1조750억 달러(약 156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러한 대규모 발주가 예상되면서 국내 조선업체들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13일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 쉬라'호 정비를 완료하며 MRO(유지·보수·정비)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미 해군 보급체계 사령부와 협약을 체결한 이후 '유콘'호 정기 수리 사업도 수주하며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올해 목표는 5~6척 수주로 미국과의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패트릭 무어 미 해군 해상수송 사령부 한국 파견 대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한미 양국 간 긴밀한 협력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도 협력을 강화할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도 미국을 방문해 정·재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대표와 만나 AI 기반 조선소 프로젝트와 방산 협력을 논의했다. 팔란티어는 미 국방부와 해군을 주요 고객으로 둔 신흥 방산 기업으로 창업자인 피터 틸이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인사라는 점에서 협력 가능성이 주목된다.
이후 정 수석부회장은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찾아 이벳 데이비스 교장(해군 중장) 등 관계자들과 만났다. 그는 "한국은 미국의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으로 조선·해양 혁신을 함께 이끌어갈 것"이라며 한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중공업은 차별화된 전략을 택했다. 2011년 세계 최초로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 설비(FLNG)를 수주했으며 상선 발주 감소를 대응해 해양 플랜트 사업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잦은 시행착오와 납기 지연이 이어졌고 저유가로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발주까지 끊기면서 조 단위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이유로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은 FLNG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지만 삼성중공업은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갔다.

그 결과 최근 2조 원 규모의 FLNG 4기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지난해 삼성중공업 매출(9조9031억원)의 8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탈리아 ENI △미국 델핀 △캐나다 웨스턴LNG △노르웨이 골라LNG 등 4개사가 발주한 FLNG 계약이 진행 중이며 모잠비크 FLNG는 이미 건조 작업이 시작됐다. 델핀은 기존 위슨 조선소에 발주하려던 2기를 삼성중공업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추가 발주 가능성도 거론된다.
FLNG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생산·액화해 직접 LNG 운반선에 공급하는 복합 설비로 기술 난도가 높고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전 세계에 삼성중공업과 중국 위슨조선소 두 곳뿐이다. 이에 따라 일반 컨테이너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어 삼성중공업의 추가 수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는 트럼프의 조선업 재건 협력 요청에 대해 한국이 적극적인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장원준 전북대 글로벌융합대학 방위산업 융합과정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 의회에서도 조선업 관련 법 개정이 논의되는 만큼 이를 연계해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한 MRO사업을 넘어 신규 건조, 블록 생산, 현지 조선소 인수 및 합작 투자 등 다양한 방식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조선업이 경쟁력을 잃어 리빌딩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조선산업 재건에 기여할 경우 방위비 분담금 문제나 관세 완화 등에서 유리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며 "정부가 협의체를 주도하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