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등 신사업 R&D 자금 마련도
주주 보호 제약 받을 가능성 커져
단기적인 이익추구만 의식하다간
결국 몇 년이면 中에 추월당할 것

HD한국조선해양이 600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하며 선제적인 자금 조달에 나섰다. 이번 EB는 이자율 0%, 10% 할증 발행이라는 이례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자본 조달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 이후에도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현행 상법에서는 기업이 이사회 결의를 통해 EB나 CB 같은 사채 발행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기존의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되면서 자금 조달 방식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이번 EB 발행을 통해 지분 희석을 최소화하면서도 대규모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현재 HD한국조선해양은 HD현대중공업 지분 75% 이상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EB 인수자들이 교환권을 행사해 지분 1.95%를 확보하더라도 HD한국조선해양의 지분율은 70% 이상 유지된다.
다만 일부에서는 2019년 HD현대중공업이 현대중공업에서 물적분할된 후 상장한 '모자 동시 상장' 논란을 다시 꺼내 들며 자금 조달 행보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업과 같은 고자본·고기술 집약적 산업에서 자본 조달과 지배구조 개편은 필연적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이번 EB 발행으로 확보한 6000억원을 수소연료전지, 소형모듈원자로(SMR), 해상풍력 등 신사업 연구개발(R&D) 및 해외법인 운영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재무적 조달이 아니라 장기적인 미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것.
특히 글로벌 조선업계가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금마저 끊긴 상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선제적인 연구개발 투자 없이는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EB 발행은 장기적인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재계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자금 조달 방식이 주주들의 단기적인 이해관계를 우선 고려해야 하는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HD한국조선해양의 자금 조달을 단순히 '기업의 꼼수'로 해석하는 것은 자칫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처럼 대규모 투자와 장기적인 기술 개발이 필수적인 산업에서는 유연한 자본 조달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이런 기업이 단기 투자자를 포함한 주주의 이익을 지나치게 의식하도록 강제된다면 몇 년이면 결국 중국에 추월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