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한 성격에 영어 모국어 수준
해외 외교관 미발령 차별 겪기도
남존여비 강한 북한서 실세 군림

2023년 10월 북한을 찾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환영 연회에서 연설을 하는 최선희 외무상 모습 /연합뉴스
2023년 10월 북한을 찾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환영 연회에서 연설을 하는 최선희 외무상 모습 /연합뉴스

"우리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조미(북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으셨나."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이후인 2019년 3월 최선희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은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하노이 결렬 6년이 흐른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미북대화 재개 가능성이 떠올랐다. 동북아 질서가 새로 재편될지 관심이 쏠린다. 

5일 외교가에 따르면 김정은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축하 메시지는 일절 언급 없이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 연구소 현지 지도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다시 대화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지 6일 만이다. 

김정은의 기싸움 행보는 당분간 대화에 응하기보다는 핵무력 강화 노선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핵 능력이 예전보다 향상됐기 때문에 향후 미북 협상이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협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최선희 외무상의 역할이 주목된다. 최선희는 2022년 6월 북한 최초의 여성 외무상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말엔 러·북 관계 격상 작업을 진두지휘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실상 북한의 최고 권력기구라는 평가를 받는 중앙위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됐다.

최선희는 외무성에서 통역으로 일을 시작해 한 우물을 판 입지전적 인물이다. 1964년 고아로 태어났지만 내각총리를 지냈던 최영림의 수양딸로 자라 중국과 오스트리아, 몰타 등에서 유학을 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수준급이라고 전해진다. 

최선희는 터프한 성격에 언변이 거침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3차 6자회담 때 한국 측 수석대표가 자신의 상관인 김계관에게 "인상이 참 좋으시다"고 덕담하자 최선희는 갑자기 인상을 쓰면서 "인상만 좋으면 뭐하냐"고 항의해 한국 측 대표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2024년 10월 악수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최선희 /연합뉴스
2024년 10월 악수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최선희 /연합뉴스

한때는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 외교통임에도 해외 외교관 생활을 해본 경력이 없다는 점은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미혼이고 워커홀릭인데 상관인 김계관과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는 이유로 불륜관계가 아니냐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김정은 정권 들어 대미 외교라인의 핵심으로 떠오른 에피소드도 있다. 2023년 탈북한 리일규 참사의 증언에 따르면 2018년 2월 연회에서 김정은이 최선희를 보고 "미국 담당 부상이 수고가 많다"고 치하하자 최선희가 자신은 아직 '국장'이라고 정정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내가 여자를 등용하라고 지시했는데 아직도 최선희가 국장이냐"고 간부 부위원장 김평해에게 벌컥 화를 내면서 그 자리에서 부상으로 임명해줬다고 한다.

최선희는 2018년 6·12 미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진이었는데 그해 5월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을 겨냥한 담화를 발표해 정상회담을 재고려할 것이라고 미국 측을 위협한 일이 있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커다란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감"이 있다고 문제 삼아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내용을 북한에 통지했고 북한이 다시 유화 제스처를 취해 수습됐다.

올해 1월 1일 김정은과 신년경축공연을 관람한 최선희는 여전히 두터운 신임 속에 실세로 군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북한에서 여성이 정치국 위원 자리에 오른 것은 비 백두혈통으로 한정하면 1970년 박정애가 해임된 이후 54년 만이다. 미국통에 대미 외교 흥망성쇠의 산증인으로서 재 트럼프 2기 정부와의 달라진 외교 판세를 주도할 전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여성경제신문에 "북미정상외교가 재개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한국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핵무기는 그대로 두고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북한 ICBM의 사거리 제한 같은 문제만 가지고 김정은과 논의하려 할 수 있다"며 "김정은은 이에 협조하는 대신 한미연합훈련의 완전 중단과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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