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북한 간의 적대관계를 끊고, 동북아 정세도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됐던 미북정상회담이 목전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다음달 12일로 예정됐던 싱가포르의 미북정상회담은 실무협상 도중 북한이 날린 잽 공세에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맞대응한 어퍼커트 강타를 맞고 무산, 또는 연기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거부 서한은 언뜻 최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일 부상과 최선희 부상의 거친 언어에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신에서 “당신들의 끔직한 분노와 공개적인 악의의 표출로 정상회담이 지금은 부적절하다”고 공세적으로 회담 불참의 이유를 밝혔다. 김계관 부상은 미국의 리비아 식 핵폐기 압박을 불평하면서 “정상회담 무산과 핵과 핵의 대결”을 위협했고, 최선희 부상은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고 원색적으로 공격한 바 있다.
그러나 회담 불발의 본질은 미국의 일괄적인 핵폐기와 북한의 단계적 폐기 주장의 충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도있는 단계적 폐기까지 양해하는 언급이 있었는데도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주석을 끌어드리면서 단계적 폐기를 고집했다. 그것은 미국의 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미북정상회담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과 북한 양측이 모두 경색된 상황의 돌파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체재위협과 경제적 곤궁 때문에, 미국은 안보우려와 여론 때문에 매듭을 풀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트럼프 태통령은 통첩서신에서 건전한 대화를 기다리겠다고 언급하므로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했다.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서신 발표 8시간 만에 김계관 부상의 온건한 성명을 통해 회담을 애걸하는 듯한 모양을 보였다.
김계관 부상은 “열린 마음으로 미국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겠으며,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대화를 희망한다”고 구애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따듯하고 생산적인 성명이며, 아주 좋은 뉴스”라는 호평도 받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취소서신을 띄운 하루 만에 “북한과 협의하고 있고,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 그들은 회담을 무척 원하고 있고 우리도 하고 싶다”고도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담판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미국을 공격하다가 트럼프라는 협상의 명수를 만나 오히려 강타를 당한 격이다. 회담을 회복시키려면 북한은 더 많은 양보를 제시해야 할 판이다. 북한의 상황은 미북 담판에서 체제를 보장받고,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수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후 바로 뒤인 같은 날에 이뤄졌다. 또 중간자를 자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 하루 뒤에 취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힘의 협상력은 북한을 더욱 곤경에 빠트린 것이다. 북한의 후견인 격인 중국과 중간자 한국, 핵폐기 수순에 들어선 북한을 모두 무시해버린 묘수가 되었다. CVID에 입각한 비핵화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도 분명히 한 셈이다. 핵을 포기하면 체재를 보장하고, 번영을 도와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강력한 압박이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재확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두번 씩이나 달려가 원군을 요청한 행보는 일을 오히려 복잡하게 얽히게 했다. 단계적인 핵폐기를 관철시키려는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좋은 카드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미 본토까지 사정권에 들어가는 핵개발을 미국은 어떤 세력이나 변수의 영향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김정은의 밀착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이 개입한다고 해서 미국의 입장이 바뀔 수 없고, 오히려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데 악재로 작용했다. 핵문제는 쿠바 사태에서 소련을 끝까지 압박해서 손들게 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이 중국의 개입을 의식해서 양보할 성질의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한 것은 전문가의 참관을 허용하지 않은 점과 숨김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내보이는 선제적인 조치였다. 일단 핵개발의 현재진행형은 중단된 것이다. 미래에도 실험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보인 것이다.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의 언행 대로 비핵화를 실천하고 경제건설에 몰입하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비핵화의 과정에 관해 담대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에서 윈윈하는 담판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빠른 시일 내의 단계적 비핵화에 합의할 여지이다. 한 발 씩 양보해서 일괄폐기와 단계적 폐기의 방법을 서로 보완하는 타협점을 찾는 일이다. 문제는 이미 개발해 놓은 원자탄과 수소탄, ICBM 장거리 유도탄의 처리 문제다.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NPT(핵확산방위조약)의 정밀한 사찰에 합의해야 된다. 또 핵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인력의 격리방법도 엄격히 규정해야 된다.
실무접촉에서 이러한 논의에 합의점을 찾는다면 당연히 싱가포르의 미북정상회담은 복원될 것이며, 북핵문제 해결에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