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죽음은 다른 곳으로의 이동
죽음의 비밀을 알려고 애쓸 필요 없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니까 한 친구가 ‘왜 그렇게 재수 없는 얘기를 하냐?’며 미간을 찌푸린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죽음은 두려움 때문에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단어다.

그러나 현인들은 우리가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 실체를 알고 나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과연 죽음 이후의 생은 어떤 모습일까? 성경에는 사람이 죽으면 몸은 자기가 생겨난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느님께 돌아간다고 했다. 그가 한 행위로 심판을 받은 후 선한 사람은 천당으로 가고 악한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게티이미지뱅크

불교에선 49일 동안 구천을 떠돌다가 다른 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현생에서 좋은 일을 한 사람은 극락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에 걸맞은 곳에 태어난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망상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부처님은 일찍이 생사 이변을 다 ‘고(苦)’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다시 이 세상에 환생하지 않고 피안의 언덕을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다.

장자는 죽음을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여희는 애라는 나라의 땅을 지키는 사람의 딸이었는데, 진왕의 눈에 띄어 출가할 때 부모의 곁을 떠나는 게 싫어 몹시 울었다. 그러나 왕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는 처음 시집가서 울던 것을 후회했다. 이처럼 죽음을 두려워하던 사람이 죽은 뒤에 비로소 살던 때를 후회한다며 죽음이 사는 것보다 좋다고 한 것이 장자다.

장자여, 그대는 죽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게티이미지뱅크
장자여, 그대는 죽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장자가 초나라를 가다가 길에 있는 해골을 발견하고 베개 삼아 잠들었다. 꿈에 해골이 나타나서 '장자여 그대는 죽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하고 물었다. 장자가 그렇다고 했더니 “죽음의 세상에는 위로 임금도 없고 아래로 신하도 없으며 사시의 변화도 없네. 그래서 조용히 하늘과 땅과 함께 목숨을 같이하는 것일세. 그래서 거기에는 임금의 즐거움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장자가 미덥지 못해 “내가 신에게 부탁해 자네의 형상을 다시 만들어 그대의 가족과 친구에게 되돌려 보내고자 하는데 그렇게 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해골이 오랫동안 생각하더니 “내 무엇 때문에 임금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의 괴로움을 가지려 할 것인가” 하고 거절했다.

죽음이란 이전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게티이미지뱅크
죽음이란 이전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게티이미지뱅크

월터 페이터는 그의 산문에서 죽음을 이렇게 서술했다. ‘배를 타고 항해를 마친 후에는 뭍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죽음이란 이처럼 이전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는 신의 바람은 어디에도 불고 있으며 그가 도착한 곳에도 신이 있을 것으로 예언했다.

일찍이 죽음의 5단계 설을 발표해 타임지가 20세기 100대 사상가로 선정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음을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로 환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도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미지의 세계로 가는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큰 위로가 됐다.

죽음은 애벌레가 나비로 환생하는 것과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죽음은 애벌레가 나비로 환생하는 것과 같다. /게티이미지뱅크

먼저 살았던 현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죽음을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죽음의 비밀을 알려고 너무 애쓸 필요도 없겠다. 죽음의 신비를 아는데 시간을 투자하다가 자칫하면 삶 자체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하는 심오한 문제는 불가사의한 그대로 놔두고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이 유일무이한 순간을 음미하며 의미 있게 살면 되지 않을까. 하루하루 범사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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