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상황 진압해 전제정치 이뤘지만
임시적 포위조치···권력 확장에는 한계
尹 당내 투쟁선 우위 그러나 탄핵소추

1799년 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오백인 회의(Conseil des Cinq-Cents)에 등장해 프랑스 정치 위기의 해결을 주장하며 새로운 정부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박물관
1799년 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오백인 회의(Conseil des Cinq-Cents)에 등장해 프랑스 정치 위기의 해결을 주장하며 새로운 정부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박물관

역사 속 계엄은 혼란의 순간에 국가를 수습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혁명 이후 계엄을 여러 차례 활용하며 권력을 장악하거나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과는 엇갈렸다. 윤석열 정부의 12·3 비상계엄 논란은 한국 현대 정치의 긴장된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나폴레옹의 성공과 실패로 엇갈렸던 계엄 경험과 대비를 이룬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헌정 질서 수호를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는 1979년 이후 45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계엄 선포 직후 군 병력이 국회에 투입돼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제한됐지만 국회는 즉각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했고 계엄군은 2시간 만에 퇴장했다. 주요 목적인 중앙선관위에 투입된 특수병력은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 요구안을 받아들인 뒤인 6시간 만에 퇴각했다.

나폴레옹은 1799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프랑스 혁명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계엄을 활용했다. 이미 1791년 프랑스 헌법엔 '임시적 포위 상태(état de siège)'로 규정한 계엄법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계엄을 통해 중앙집권적 통치 강화와 정국 안정을 도모했다. 하지만 2번의 성공과 2번의 실패를 겪었다.

먼저 성공한 계엄 사례를 보면 내부 반란 세력 진압용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1794년 로베스피에르파가 실각한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 정치적 위기를 맞아 체포됐지만 실용주의 입장을 보이면서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이어 1795년 방돔 광장에서 왕당파 반란이 일어나자 포도탄 세례(Grapeshot) 전술을 선보여 국민공회 포병 장교로서 명성을 높였다.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는 군사력을 활용해 의회를 해산하고 스스로 제1통령에 올라 전제정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됐다.

로베스피에르 몰락 후 자코뱅파의 잔재를 버리고 공화정의 안정과 정치적 입지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결과였다. 하지만 그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사례처럼 외부와의 정치적 대결 국면을 계엄령으로 해결하는 데는 실패를 거듭했다. 결과적으로 나폴레옹도 1808년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해 스페인의 국왕으로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옹립했으나 국민 반발과 게릴라 저항으로 실패했다. 1812년 러시아 원정 중 모스크바에서 계엄 통제를 시도했지만 프랑스 군대가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해 철수했다.

2024년 12월 12일, 서울의 한 버스 터미널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TV 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2월 12일, 서울의 한 버스 터미널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TV 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폴레옹은 앞선 두 차례 성공한 계엄을 통해 장기적인 권력 강화를 이뤘지만 무리한 대외 원정과 독재 체제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계엄법에서 '포위 상태'는 단순히 군사적 방어 체제가 아닌 군이 민간 행정 권한을 대신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국민의 반발이 극심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현대 정치에서도 비상계엄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질서를 회복하고 내전을 종식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권력 확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계엄 선포가 단기간에 그쳤고 국회의 즉각적인 대응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됐다. 또 내란죄 피의자가 돼 탄핵 소추를 맞았지만 당내 투쟁 노선을 견지하며 친(親)한동훈계의 도발로 시작된 보수 진영 내전(內戰)에서 오히려 승기를 잡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헌법에 따른 통치 행위로서의 계엄선포가 내란죄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진검승부는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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