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현업에서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
50년 만에 함께 보낸 제주 여행
먼저 간 친구의 명복도 빌어주고
남은 인생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50년지기  멋쟁이 친구들 /박종섭
50년지기  멋쟁이 친구들 /박종섭

가왕 나훈아의 노래 ‘사내’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큰 소리로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진 것은 없어도 비굴하진 않았다. -중략- 긴가민가 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온 이 세상을 믿었다. 나는 나를 믿었다. 추억 묻은 친구야 물론 너도 믿었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친구가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인 초등학교 친구가 있고, 사춘기 때인 중·고등 학교 친구가 있다. 지역 연고가 같은 우리 친구들은 중·고 6년을 함께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초·중·고 12년을 같이 지낸 친구들도 있다. 그중 고등학교 졸업을 같이한 동창생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임이 디딤돌이다.

50년의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이 처음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을 하였다. 고교 졸업 후 각자 뿔뿔이 흩어져 직업을 가졌고, 가정을 이뤄 며칠을 함께 하기는 어려웠다. 거의 다 은퇴 하였지만 아직도 직장에서 시간 낼 수 없는 친구들이 있어 회원 17명 중 13명이 참여했다.

어렵게 여행 일정이 정해졌고 설레임 속에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각자 제주도는 와 봤지만 친구들과는 처음이었다. 50년 전 고교 시절 수학여행은 설악산으로 갔었다. 신혼여행도 대부분 경주나 설악산으로 가던 시절이었다. 제주도로 간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새까만 머리에 곱상한 피부의 청소년에서 이제 칠순의 나이가 되어 여행하게 되었다.

제주 공항을 향하여 /박종섭
제주 공항을 향하여 /박종섭

여행 1일 차 : 연고인 충청도 일대에 있는 친구들은 청주공항에서 제주 공항으로 왔다. 나머지 서울, 경기, 강원 지역 일대의 친구들은 서울 김포공항에 모여 제주 공항에서 합세했다.

첫 행선지로 한림공원을 관람했다. 10만 평(약 33만㎡) 대지 위에 펼쳐진 환상적인 테마파크다. 아열대 식물원에서는 갖가지 아열대 식물과 크고 둥근 선인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야자수 길은 마치 외국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용암석과 제주 자생 식물들로 이루어진 산야초원은 제주를 한눈에 보는 듯했다.

산야초원의 수많은 분재원의 값비싼 분재들은 한림원에서나 즐길 수 있는 귀중한 것들이었다. 한림원을 둘러보고 우리는 산방산 유람선을 타기 위해 산방산 근처 화순항으로 이동했다.

산방산 유람선에 승선 /박종섭
산방산 유람선에 승선 /박종섭

유람선을 타고 푸른 바다를 가르는 것은 항상 즐겁다. 갑판 위로 올라 바닷바람과 부서지는 파도를 마음껏 즐겼다.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송악산, 산방산, 용머리 해안, 형제 바위 등 구석구석 다 돌아보고 가파도와 마라도를 조망하였다.

무엇보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유람선을 타고 관람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다. 특히 해설사의 유창한 입담은 승선한 모든 관람객에게 큰 웃음과 즐거움을 주었다. 유람선 관람을 마치고 송악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해안선의 절벽과 오션뷰를 감상하며 산책도 하였다.

오후 일정으로 더마파크(THE馬PARK)에서 관람한 <위대한 정복자 광개토 대왕>의 기마 쇼는 말을 타고 달리는 스피드 있는 공연으로 즐거움을 주었다. 저녁 식사는 푸짐한 회 정식으로 소주 한잔하며 50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 속에 빠졌다.

'위대한 정복자 광개토 대왕' 마상 쇼 /박종섭
'위대한 정복자 광개토 대왕' 마상 쇼 /박종섭

여행 2일 차 : 어제 늦게까지 한잔한 까닭에 아침은 해장국으로 속을 풀었다. 2일 차 일정으로 절물휴양림을 찾았다. 절물휴양림은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삼나무숲이 유명하다. 또한 절물휴양림만의 특유한 모양의 장승들이 있다. 이 장승들은 이곳 휴양림에서 생산된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한다.

장생 숲으로 들어가면 돌과 화산 송이로 이루어진 길이 있어 맨발로 걸으면 발 건강은 물론 심폐기능 증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러 코스 중 우리는 비교적 간단한 코스를 돌아 나왔다.

다음으로 간 곳은 에코랜드로 곶자왈에 위치한 철도 콘셉트의 생태관광 테마파크다. 영국에서 수제로 제작된 1800년대 증기 기관차인 볼드윈 기종 모델의 기차로 고풍스럽고 정감이 넘친다. 이 기차를 타고 약 4.5㎞ 곶자왈 숲을 둥글게 돌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각각 테마가 있는 4개의 기차역마다 내려 마음껏 머무르다 다음 역으로 가면 된다.

품위 있고 고풍스러운 기차를 타고 /박종섭
품위 있고 고풍스러운 기차를 타고 /박종섭

호수가 있는 수변 산책길은 덱이 깔려있어 물 위를 걷는 기분을 들게 한다. 에코랜드가 위치한 곳은 교래 곶자왈로 용암의 바위 위에 숲을 이룬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자연 생태공원으로 가족과 함께 오기에도 적합한 곳으로 동화의 나라처럼 환상적인 곳이다.

약 2㎞ 남짓 걸어서 곶자왈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구간이 있어 우리도 그 길을 걸으며 숲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기도 했다. 저녁에는 제주의 명물 흑돼지 고기를 먹었다. 흑돼지 고기는 역시 최고였다. 스페인 이베리코 고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맛이다.

오랜만에 동창생들과 만나 좋은 안주에 술 한잔하니 분위기는 절로 무르익었다. 가끔 그동안 살아온 생활환경이 달랐던 만큼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갑론을박 논쟁도 있고 이견도 있었지만, 오랜 친구라는 믿음 속에 모든 게 용해되고 서로가 이해되었다.

제주의 명물 흑돼지 회식도 즐기고 /박종섭
제주의 명물 흑돼지 회식도 즐기고 /박종섭

여행 3일 차 : 2박 3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전 일정으로 제주 구좌읍의 스카이워터 쇼를 관람했다. 세계대회 우승 다이버와 여러 나라 공연단이 함께 하는 대형 분수 쇼가 볼만했다. 절벽 같은 높은 데서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공중 퍼포먼스와 멋진 다이빙 쇼는 갈채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묘기에 감탄하면서도 한편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앉아서 보고 있지만 수없이 물속으로 뛰어내려야 하는 저들의 노고가 얼마나 힘들까 싶다.

점심으로 제주의 두 번째 명물 갈치조림을 빼놓을 수 없다. 무와 갈치를 조려 만든 음식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난타 공연을 감상했다. 한두 번 간단한 난타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형 공연장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만들어 전 세계 60개국 325개 도시에서 공연이 이루어진 대표적인 한류 문화 상품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코믹한 연기가 압권이다. 부엌에서 하는 요리 기구를 이용하여 춤과 노래로 신명 나는 사물놀이 한바탕이 벌어진다.

요즘 K 콘텐츠가 드라마, 영화, 음악, 게임, 웹툰 등 대중문화 전반을 포괄하며 세계로 확산하고 아울러 K푸드로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다. 이에 가장 한국적인 난타의 공연은 한국을 세계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용두암 /박종섭
제주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용두암 /박종섭

이제 2박 3일의 여행을 마치고 떠날 시간이다. 공항 가는 길에 용두암에 들러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용두암이었다. 그 추억이 있는 용두암에 들러 기념사진을 하나씩 찍었다. 이제 공항에서 다시 청주로 가는 비행기와 서울 김포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 경기 충청도 일원으로 흩어질 것이다.

50년 전 젊었던 시절 한 교실에서 미래의 꿈을 키웠던 친구들이 모처럼 제주에서 2박 3일의 귀한 시간을 가졌다. 이미 17명의 친구 중 한 명은 지난달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함께 하지 못한 친구의 명복을 빌며 이제 남은 친구들 모두가 세상 다하는 날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나훈아의 노래에 있듯 이런 추억 묻은 친구를 만들려면 50년이 걸려야 하는 일이니 소중한 친구들이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된 어린 시절의 친구들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서로 나누며 제주 공항을 날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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