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크로 의무화' 명분으로 손 턴 PG사
현금 흐름 막혀 업계 1위 하나투어 흔들
코로나19 겨우 버틴 중소여행사 벼랑 끝
정부가 지금이라도 실질적 방안 찾아야

티몬·위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여행업계가 부도 위기다. 이미지는 챗 GPT가 그린 티메프 사태로 고통받는 영세 자영업자들 /챗GPT
티몬·위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여행업계가 부도 위기다. 이미지는 챗 GPT가 그린 티메프 사태로 고통받는 영세 자영업자들 /챗GPT

티몬과 위메프(티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로 결제 규모가 가장 컸던 여행업계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다. 티메프로부터 떼인 돈을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에 전자지급결제대행 협회(PG협회)가 환불 책임을 떠넘기며 경영난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16일 증권가와 여행업계에 따르면 티메프발 정산 지연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약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전히 취소되지 않은 계약 건들도 남아 있어 피해는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여행업계를 돕기 위해 600억원 규모의 이차보전 사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행사들은 연중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3분기에 맞물려 터진 티메프 사태로 인한 영업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추가 대출을 받아 이자 갚다 보면 지원금은 금세 바닥을 드러낼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행사 관계자 A씨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여행사의 서비스 제공이나 비용 발생은 나중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행사는 고객들로부터 받은 선결제 자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티메프 사태가 현금 흐름을 완전히 꼬이게 만들어버렸다"고 토로했다.

국내 1위 업체인 하나투어의 올해 3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12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할 전망이다. 이 기간 해외 패키지 송출객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늘어난 49만5000명을 기록했지만 티메프 사태로 손실 일부를 실적에 반영하고 온라인 판매 수익이 감소한 결과 영업이익이 컨센서스(시장 평균 전망치)인 188억원보다 60억원 이상 줄었다.

모두투어도 3분기 영업이익이 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기간 예상 송출객 수는 22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늘었으나 티메프 이슈가 3분기까지 영향을 줘 45억원으로 전망했던 컨센서스에 한참 못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노랑풍선과 교원투어 등도 3분기 패키지 상품을 통한 송출객 수가 회사의 예상보다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지난 8월 전자지급결제대행 업체(PG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발표했다. 이에 따라 에스크로(결제대금 예치) 제도가 의무화되고 결제 정산 기한이 40일 이내로 제한됐는데 반발이 예상됐던 PG 협회가 정책에 부응하면서 여행업계가 나 홀로 책임을 떠안는 모양새가 됐다.

여행상품의 경우에는 '카드사→PG사→티몬·위메프→여행사' 순으로 결제 대금이 정산되는 구조다. PG사는 티메프 소비자들의 결제취소·환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행상품과 상품권에 대해선 분쟁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여행업계는 티메프로부터 결제 대금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6~7월 여행 출발 건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여행상품 판매를 한 것은 맞지만 티메프로부터 정산금을 받지 못해 환불할 금액이 없는 상황에서다. 한국소비자원에 의하면 지난 8월 기준 집단 분쟁조정 사건은 7000건에 달한다.

금융위의 에스크로 의무화 대책을 수용한 PG 협회는 지난 7일 법무법인YK 의견서를 통해 "티메프에서 PG사를 통해 여행 상품을 결제하고 이를 취소했다면 여행사가 직접 환불해야 한다"고 밝혔다. PG사 측은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자신들은 단순히 결제 대금을 중개하는 역할일 뿐 소비자에게 환불할 의무는 없다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며 여행사들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강화했다.

더욱 고립무원이 된 여행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티메프의 자금 사정 악화로 대금을 받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환불을 해주기도 어려운 실정인 데다 정부의 지원책이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B씨는 본지에 "티메프 사태 관련해 구영배 대표 등 경영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정부가 나서서 무언가 일을 해결하려고 하면 구영배부터 시작해 돈이 나올 수 있는(자금확보) 방법을 샅샅이 찾고 경영진들을 압박해서라도 피해 규모를 최소화하는 게 맞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작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여행사를 탓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한 네티즌은 "티메프 측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큐텐과 경영진부터 있는 거 없는 거 다 팔고 자금을 끌어오든지 해서라도 피해 보상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여행사가 무슨 죄인가"라며 반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법에 사각지대가 있어 발생한 일이니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에서 나서서 상황을 파악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 정산받지 못한 돈이 순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현재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렵고 특히 자영업자분들이 힘드신 상황인데 정부가 개입해서 특히 영세 자영업자분들의 피해 보상이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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