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로 막힌 반지하, 노후 소화기의 덫
소화기 방치, 반지하 주거지의 화재 위기
소화기 관리 부실, 반지하 화재 취약

"좁은 창문 너머로 불길이 점점 다가오는 모습을 두려움 속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창문으로 대피하려 했지만 빼곡히 설치된 쇠창살이 길을 막고 있었어요. 마지막 수단으로 소화기를 찾았지만 1990년에 제작된 오래된 소화기는 무용지물이었죠. 간신히 비좁은 복도를 통해 대피했어요."
7일 잠실 석촌동의 반지하 건물을 여성경제신문이 직접 취재한 결과 상당수의 주거지가 화재 안전에 취약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특히 소화기 설치 미준수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본지는 이날 잠실 석촌동에 위치한 반지하가 있는 건물 10곳을 다녀왔다. 그중 세 곳은 무려 1990년도에 제작된 소화기를 여전히 사용 중이었다. 소화기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머지 일곱 곳의 경우 복도에 소화기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현행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 제8조에 따르면 모든 주택은 최소 1대 이상의 소화기를 비치해야 한다. 매년 점검을 통해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법률상 소화기는 주택 내 복도나 거실 등 접근이 용이한 곳에 배치되어야 하지만 현장 취재 결과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1990년도에 제작된 소화기는 유효기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도 한편에 방치되어 있었다. 소화기 제조업체의 규정을 보면 소화기의 사용 권장 기간은 10년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10년 이상 사용될 경우 내부 소화제가 변질될 수 있고 실제로 화재 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소화기들이 교체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무관심뿐만 아니라 관리 주체의 책임 방기와 점검의 부재가 맞물려 발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소방시설법 제25조는 소유자나 관리자가 소화기의 설치 및 유지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시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법적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반지하 거주지의 화재 안전 문제는 단순히 소화기 미설치 문제를 넘어 전반적인 법적 관리 체계의 미비를 드러내고 있다. 소방청의 2023년 '주택 화재 안전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지하 주거지의 40%가 소화기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비치된 소화기 중 35%는 유효기간이 지난 상태였다.
법률적으로는 소화기 설치와 점검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주기적인 관리와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의 인력 부족, 형식적인 점검, 그리고 반지하 주택 소유자의 비용 부담 등이 이러한 문제를 복합적으로 야기하고 있다는 것.

화재 안전 분야에서 활동 중인 한 익명의 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소화기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화재 초기 대응의 생명줄"이라며 "반지하 주거지처럼 탈출로가 제한된 공간에서는 소화기의 유무가 거주자의 생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자체가 소방 안전 점검을 강화하고 거주자가 소화기의 유효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화재 발생 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익명의 소방관은 “소화기 교체 비용이 부담스러워 오래된 소화기를 방치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특히 반지하 주거지의 경우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구가 많아 소화기 교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