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공간 침범해 보행자 안전 위협 심각
파손 보도블록 세금으로 복구, 예산 낭비
단속 한계에 구조적 문제···근본 대책 시급

8일 경기 하남시 미사역 인근 상권에 위치한 곳, 오토바이 주행으로 인해 보도블럭이 파손되어있다. /김성하 기자
8일 경기 하남시 미사역 인근 상권에 위치한 곳, 오토바이 주행으로 인해 보도블록이 파손되어있다. /김성하 기자

"어머니가 크게 다치셨어요. 80세가 넘으신 데다 뼈도 잘 붙지 않으시니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죠. 정말 아찔했어요. 그 충격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웃음소리 뒤로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잦아지고 있거든요. 배달 오토바이들이 보도블록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해요. 보도블록은 여기저기 파손되고 울퉁불퉁해지고 위험한 보도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어요."

배달 수요가 폭증하면서 빠른 배달을 요구하는 환경이 배달 기사를 사람이 다니는 보도로 밀어내고 있다. 배달 오토바이의 보도블록 무단 침입은 보행자 안전뿐 아니라 보도블록 파손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배달 오토바이의 난폭 운전이 도심 곳곳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배달의 속도 경쟁이 심화되면서 교통체증을 피해 보도로 진입하는 오토바이가 급증하고 있다. 보도블록을 주행하는 오토바이는 일반적으로 제한된 시야와 좁은 공간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보행자와의 충돌 위험이 높다. 이러한 불법 진입은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보도블록이 차량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쉽게 파손되게 만들어 이로 인한 2차 사고를 야기한다. 

경기 하남시 미사역 주변 보도. 보도블록 들뜸 현상이 심각하다. /김성하 기자
경기 하남시 미사역 주변 보도. 보도블록 들뜸 현상이 심각하다. /김성하 기자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45)는 최근 자택 근처 보도블록이 일제히 파손된 것을 보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매일 이곳을 지날 때마다 오토바이들이 쌩쌩 지나가는 걸 봤다”며 “보도블록이 깨진 곳에 비가 내리면 미끄러워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자체에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복구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문제는 이렇게 파손된 보도블록을 수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심 지역의 보도블록 파손 복구에 한 해 20억원이 넘는 예산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비용은 모두 지자체가 부담하게 되며 예산의 한계로 인해 보수 작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도심 외곽 지역의 경우 예산이 부족해 복구가 수년째 미뤄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보도블록 파손은 단순히 ‘길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세금의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예산이 오토바이의 불법 주행을 수리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큰 아이러니다.

현재 도로교통법은 보도블록에서의 오토바이 주행을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한국 도로교통법 제13조(차마의 통행)에 따르면, 차마의 운전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차도로 통행하여야 한다. 다만 도로 외의 곳으로 출입할 때에는 보도를 횡단하여 통행할 수 있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단속은 부족한 실정이다. 경찰 단속이 이루어져도 대부분의 경우 경고 수준에 그치며 벌금 부과 역시 미비하다. 특히 보도블록 내 CCTV가 충분히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난폭 운전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현장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나 모든 지역을 커버하기는 쉽지 않다”며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추가적인 감시 장치 설치와 단속 강화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미사역 인근 식당가 보도블록 위에 배달 오토바이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김현우 기자
미사역 인근 식당가 보도블록 위에 배달 오토바이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김현우 기자

배달 오토바이의 보도 진입 문제는 단순한 단속의 문제가 아니다.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 즉 배달 시간 압박과 인센티브 구조가 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배달기사 A씨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을 못하면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름길로 다니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단속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배달 산업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차원의 자율규제 및 시간 압박을 줄이는 시스템 개편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 아울러 지자체 차원에서는 보도블록 보호를 위한 물리적 장치(예: 오토바이 진입 방지 바리케이드) 설치와 같은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보도블록을 통행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해야 하며 현재 불법 단속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도블록이 들뜨는 현상이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이륜차의 불법주행과 차로 위반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한 도로주행법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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