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마디의 유니폼]
예술이란 찾아가는 일
보여주는 일
속마음을 끌어내는 일
복지도 마찬가지다

교토
교토의 한자어는 京都(경도)로 본래 수도를 의미하는 일반명사이다. 서울처럼, 또 경주처럼···.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도쿄가 수도가 되기 전까지 약 1000년간 일본의 수도 역할을 했다. 교토에는 일본 역사의 황금기를 엿볼 수 있는 오래된 성과 사찰, 신사가 많고 인근 지역을 전통가옥 거리로 유지하고 있다.

관광객은 고성과 고찰에서 나와 꿈에서 깬 듯이 현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낮고 작은 목조 건물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거닌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깨를 비껴가며 나무 살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부지런히 들여다보며 걷는다. 차 없는 골목을 나왔다 들어갔다 마음대로. 일부러 길을 잃은 듯이. 어느새 버드나무에 가로등이 드리우고, 돌다리 아래 다카세 개울 소리가 커지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흐른지도 몰랐다는 듯이.
 
우리는 밤에 교토역에 도착해 가와라마치 호텔에 짐을 풀고서 곧바로 니조성(二条城)에 다녀왔다가, 다음날은 청수사(清水寺, 기요미즈 데라)로 출발했다. 이집트에서 온 친구들이 손꼽아 기다린 것이 바로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 입기. 낮에 기모노를 빌려 입으며 친구가 “여기서 게이코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말에 일본에 아직 게이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게이코
한국인에게는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영화 덕분에 게이샤가 더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일본의 공연 유흥 문화를 상징하는 게이샤는 '예술'을 뜻하는 芸(예-게이)와 '사람'을 뜻하는 者(자-샤), '예술의 달인'이라는 뜻으로 전통 음악 연주, 무용, 시 짓기 등 다양한 전통 예술을 훈련받은 전문 연예인이다. 교토에서는 게이코(妓 기생 기-코)라고 부르며, 게이코가 되기 위해 16~17세부터 보통 5년간의 수련 생활을 거치는 견습 게이코인 ‘마이코’ 제도가 있다. '춤'을 뜻하는 舞(무-마이) 글자 때문에 영어로 ‘댄스’라고 통역하더라는 글을 봤다. 한마디로 춤 그 자체인 사람들.
 
교토에서 지내는 3일 동안 무슬림 친구들과 술 한 잔 없이 부지런히 밤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날도 자정이 다 되어 어두워진 기온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멀리서 하얀 얼굴의 게이코 한 명이 걸어와 골목으로 쏙 들어갔다. 
“거봐 거봐! 있다고 했지!”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한국에 돌아와 게이코에 대해 알아보았다. 유명한 게이코를 초청하는 자리는 예약이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게이코가 안내해 주는 투어에 참여하면 가이세키 음식, 다도, 무도 등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게이코 모습을 찾아 그리던 중 넷플릭스에 <마이코의 행복한 밥상>이라는 드라마가 눈에 띄어 주행을 시작했다.

스미레와 키요는 어렸을 때부터 게이코가 되려는 꿈을 따라 중학교를 졸업하고서 16세에 교토의 ‘사쿠’라는 오키야로 찾아온다. 오키야는 전통 게이샤 저택으로 마이코와 게이코의 합숙소이자 손님의 요청에 따라 요정과 찻집으로 게이샤를 보내는 소속사 같은 곳이다. 하루는 스미레의 아버지가 딸을 말리러 찾아와서는 딸이 춤 연습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어엿하게 마이코가 된 스미레의 반딧불이 쫓는 춤을 보며 아버지는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춤 선생님의 대사)
하나, 둘, 셋
제대로 반딧불이를 눈으로 좇고
좋아. 손끝으로 갔다가 빠르게 보고
멈췄다가 휙, 휙
반딧불이가 도망갔구나
 
너무 힘주면 안 돼
제대로 눈으로 좇아
보이지 않는 반딧불이를 있는 것처럼 보여줘야 해 

 
손짓으로 반딧불이를, 버드나무 이파리를 데려와 관객의 두 눈에 풀어준다. 그때 마이코는 보이지 않는 것이 된다. 다만 반딧불이가 떠오르는 산기슭의 고요한 밤바람이 된다. 다카세 개울 위로 깊게 드리운 버드나무 이파리가 여행자가 다 숨어버린 시간을 알리는 춤이 된다.
 
현생에서 돈, 명예, 사랑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좇는 사람들이, 이 무대에서 내 춤을 타고 봄을 알리는 초록이 무성한 강변을 찾아가도록, 어느덧 화려함을 다 떨군 꽃 위의 공허를 비추는 반딧불이를 쫓도록 데려간다. 내 몸으로 생생한 계절을 보게 한다.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고급 요정 병풍 앞 작은 무대,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간 호수 저편 버드나무 아래에 마련한 무대에서 게이코는 춤을 춘다. 게이코란 얼핏 보면 한 송이 꽃처럼 고고하게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꼬여 들 것 같지만 <마이코의 행복한 밥상> 드라마에서 게이코 트리오가 호출을 받아 사쿠의 나무문을 드르륵 탁 닫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예술인이란 내가 찾아가야 하는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현실의 반대 아닌가? 남의 시선과 관계없는 거 아닌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의 감정을 전했을 때 관람자가 그 감정을 받아 같은 마음으로 동하는 과정 역시 예술이다. 감동은 비유에서 오고 비유의 능력은 현실을 콕 집는 데에 있다. 마음이 동하는 순간은 관객이 이 작품을 딛고 현실에서 자신만의 세계로 넘어갔을 때에 있기에, 현실을 와닿게 하기 위해선 예술은 어떤 면에서 가장 현실적이어야 한다. 
 
‘예술이야 그냥 타고나는 거 아냐? 자유롭게 하는 거 아니야?' 아니다. 부단히 찾아가는 훈련이다. 손끝과 눈꼬리로 반딧불이를 좇는 춤을 보고선 초여름 숲속의 서늘해진 밤공기가 느껴질 정도로 - 한순간 관람자 마음에 확 펼쳐질 한 장면을 위해서는 서두르지 않고 끌지도 않는 정확한 지점을 표현해야 한다. (영화 <위플래쉬> 대사)

그러기 위해서는 어슴푸레한 느낌에서 정확히 어떤 감정을 표현할 것인지, 어떤 상황으로 보여줄 것인지 정교하게 찾아가야 하고, 내 상상을 보이고 들리는 세계로 표현할 방법을 찾아 익혀야 하고, 무엇보다 무대에 나를 세워줄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날 찾아주지 않으면··· 내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된다.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일러스트레이션=윤마디

복지
집 앞에 있는 사회복지관에 무료 점심 밥퍼 봉사를 몇 번 나간 적이 있다. 어르신들이 들어오시면 얼른 드시고 나가실 수 있도록 착착 자리를 안내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다. 하루는 동료 봉사자들이 말하길, 여기 오는 사람들은 그래도 걸을 수 있고 이 식단을 싹싹 먹을 수 있으니 건강한 것이며, 정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여기 못 오는 사람들이란다. 몸이 불편하거나 사람들 만나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 그런 집에는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한다.

'복지 사각지대 집중 발굴 기간! 소외된 이웃을 찾아주세요'
겨울을 앞두고 재개발을 기다리는 이 구역 골목마다 붙은 정책 홍보 포스터를 보고는, 사회복지란 찾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회복지는 어떤 이유에선가 자기만의 시간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 사회와 연결해 주는 일이다. 한 사람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찾아가서 용기를 떠먹이는 일이다.

점심 도시락에 ‘오늘 도시락에는 무슨 반찬이 들어있을까’ 하는 설렘을 담아가서 하루를 삼시세끼로 나누는 삶을 보여준다. 쓰고 또 쓴 말로 까매진 속사정을 언젠가는 한마디씩 꺼내보기를. 그렇게 어제까지가 당신의 과거가 되고 오늘은 오늘이 되기를. 차근차근 바깥공기를 꿈꾸게 해 준다. 언젠가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오면 골목이 있을 거고,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비껴 골목을 빠져나오면 큰 길이, 개울이, 내일이 있을 거라고 알려준다.

복지 정책에는 사회보험, 의무교육 등의 보편적 복지가 있고,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 계층만을 구별하고 선택하여 복지의 혜택을 주는 선택적 복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핀셋 복지는 꼭 필요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는 복지이다. 몇 개의 복지정책을 들려드리고 싶다. 

 

1. 전남 영광군 묘량면 ‘이동점빵’ (개량 트럭 슈퍼마켓)

이동점빵은 1.5t 트럭에 식재료와 생필품을 가득 싣고 구멍가게가 없는 묘량면의 42개 마을을 매주 목·금요일마다 누비고 있다. 

“묘량에는 75살 넘는 노인 인구가 많은데, 일상생활 반경이 자기 집을 거의 못 벗어나다 보니 사회적 관계가 끊어진 어르신들이 많아요. 차 끌고 그분들 찾아가서 농담도 건네고, 밥이랑 커피도 얻어먹고. 어르신들이 되게 반가워하십니다.“

“내 돈 내고 직접 물건을 고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반 사람들은 잘 공감하지 못할 거예요. 누군가는 ‘자녀들한테 전화해서 부탁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내가 스스로 원하는 걸 골라 산다는 것이 곧 삶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거든요.”

출처  : <만물장수가 된 사회복지사 “어르신들이 되게 반가워해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43844.html
 
2. 서울시 '챌린지 2' - '최중증 성인 발달장애인 낮 활동 지원 사업' 

최중증에 해당하는 분들은 웬만한 복지관이나 지원기관에는 갈 수가 없고, 성인이라 학교도 이미 졸업했기에 1년 내내 오직 가족의 보호 속에 지낼 수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보호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몇 번, 낮만이라도 이분들께 돌봄-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곳이 있다면 장애인 당사자도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만들 수 있고,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이 현격히 높아질 수 있다.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장애인 당사자들도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고, 그 가족들도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약간의 자유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아들 때문에 단 한 번도 둘이 외출하거나 커피 한잔할 수도 없었던 어떤 부부는 처음으로 두어 시간이나마 서로의 마음을 들어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떤 가정은 '허덕이는 삶의 유지'를 넘어 처음으로 '장애인 가족을 포함한 삶의 희망'을 위한 준비와 노력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출처: <'핀셋 복지', 딱 그 사람에게 절실한 '사활적 복지'>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35107
 
사회복지가 집으로 찾아오는 시간은 반가움이 되고, 자존감이 되고, 자유가 되고, 희망이 되었다. 그렇게 다른 세상의 시간을 데려와 한 사람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게 해주었다. 움직이면 사회로 들어갈 수 있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내 마음에 탁 꽂히는 장면으로 인생을 바꿔준 예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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