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개는 항상 길들이고 돌볼 대상일까?
사람과 길거리 개가 공존하는 조지아
2년 가까이 앓던 우리 ‘단추’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개는 내 인생에 큰 행복감을 주던 존재였다. 하지만 강아지에 관한 글은 자주 쓰지 않았다. 한번 써 봤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나름대로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썼건만 험한 댓글이 많이 달렸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쪽에서는 ‘왜 강아지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냐?’고 했고, 싫어하는 쪽에서는 ‘왜 그렇게 개를 떠받드냐?’고 했다.
그때 세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화끈하고 민감한 주제일수록 욕먹는다. 둘째, 사회 곳곳의 첨예한 갈등 중에 반려동물을 사이에 두고 치르는 전쟁도 엄청나다. 끝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개와 관련하여 아주 다른 세상을 발견했다. 동유럽 조지아에는 길거리 개가 참 많았다. 유기견이라고 하기는 모호했다. ‘유기’는 버려지는 건데, 키우다 싫증 나서 버린 듯한 분위기나 흔적이 없었다.
물론 그 조상이 “힘든데 여기서 같이 좀 삽시다”라며 도시로 밀고 들어온 건 아닐 테고, 그들 또한 누군가에 의해 키워지다가 버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후손들 머릿속에 주인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그다지 주인을 필요로 하는 모습은 아니다. 이미 몇 대에 걸쳐 거리에서 번식한 듯하고, 자치적으로 자기들의 생명권을 누리는 모습이다. 사람을 반기지도 멀리하지도 않고, 그저 온순하고 평화롭게 잠만 잔다. 견종도 사람 앞에서 재롱부릴 만한 소형견보다 긴 털의 중형견, 대형견이 많다.

트빌리시 중심인 자유광장과 올드타운에서, 주택가나 시장에서, 또는 작은 마을 곳곳에서 인파와 차량과 개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면, 개 공동체와 인간 공동체가 서로 존중하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건설한 문명을 개와 인간이 공유하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노숙자나 히피 느낌도 난다.
사람과 개 사이의 이런 거리감을 느껴본 적 없는 한국인 여행객들은 개에 대한 ‘습관적인’ 애정을 표현해 보다가 “이상해요. 개들이 안 예뻐요” 하며 물러선다. 정확히 말하면 안 예쁘다기보다 안 친절한 것이다. 개는 항상 인간에게 의존하고, 애교부리고, 주인 없인 못 사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니, 신선하다면 신선한 충격이다.

약간 다르지만, 동남아에도 이런 분위기가 있다. 도대체 개를 예뻐하는지, 귀찮아하는지, 무관심한지 알 수 없다. 불교문화의 영향도 있다지만, 미워하지도 않고 예뻐하지도 않고, 하물며 잡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함께 사는 것, 우리 사회에선 느껴보기 힘든 분위기다.
우리 반려동물 문화는 좀 다르다. 개나 고양이에 대해 사랑과 미움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려동물에 대한 무심하고 차분한 감정은 그 틈새에 조금 존재할 뿐이다. 밭일 못 할 정도로 졸졸 따라다니던 개가 먼저 떠나자 평소 별다른 애정도 주지 않던 할머니가 슬퍼하며 앓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잔잔한 관계는 묻히고 반려견 문화를 둘러싼 호들갑스러운 공방만 오간다. 사랑받지 못하면 미움받고, 그러다가 버려져 유기견이 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들개가 된다. 조지아처럼 생명권을 보장받는 길거리 개는 없다.

유기견이 발생하는 원인은 생명의 가치를 망각하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입양해서 잘 꾸며 갖고 놀다가 싫증 나면 버리는, 강아지와 바비인형을 혼동하는 사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조지아처럼 ‘길거리 개 시스템’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버려지면 죽는다고 보면 된다. 그건 개고기를 먹는 것보다 더 저열한 살육 행위다.
대다수의 선량한 애견인에게도 크고 작은 문제는 있다. 정도를 넘어선 극성 때문에 비애견인과 마찰 빚는 것은 그렇다 쳐도, 강아지가 유발하는 피해(소음, 배설물, 위협 등)에 대한 무책임이나 사랑을 빙자한 동물 학대도 문제다. 산책 좋아하는 강아지에게 신발을 신기거나 유모차에 태우는 게 대표적이다.
만일 조지아에서 강아지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면? 그 자체로도 대단한 구경거리이겠지만 아마 사람들보다 거리의 개들이 유모차 탄 강아지에게 뭐라고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너 어디 아프니? 납치당하는 거니? 너희 주인 이상한 사람이니?”
조지아 개들은 먹을 걸 구하려고 고생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늘에서 그릇 가득한 사료를 여유롭게 먹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길거리 개의 숫자에 비해 개똥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주인은 없어도 누군가 관리해 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 개 모두의 ’안전 관리‘다. 귀에 태그가 있으면 중성화 수술을 받고 관리 중인 개다. 초록색 태그는 공격성 없는 놈, 노란색은 약간, 빨간색 태그는 공격적인 놈,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빨간 태그는 한 번 봤는데 아주 순했다. 태그가 없으면 등록 전이거나 주인이 있는 개다. 목줄은 거의, 입마개는 전혀 본 적 없다.
여행 중에 물렸다는 사람도 있다. 개한테 접근하는 방식 때문일 수 있다. 우리는 개는 무조건 사람에게 친화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불쑥 다가가지만, 이 녀석들은 그게 낯설어 경계하거나 위협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성격 이상한 녀석도 있을 수 있고, 기분 안 좋거나 우울한 녀석도 있을 수 있다. 시그나기에서 만난 어떤 녀석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멀찌감치 돌아서 지나갔다. 물리면 따질 곳도 없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요놈들은 자기 마음대로다. 더우면 시원한 그늘을 차지하고, 넓은 인도 한 복판에 누워있거나 명품매장 정문 앞, 심지어 공항 청사 안에도 자리 잡는다. 항공권이 없어 출국장에선 안 보인다. 그래도 기본적인 교육은 되어 있는지, 차가 다가오면 적당한 간격으로 피하고, 신호에 맞춰 건널목을 건넌다. 열흘 동안 로드킬을 한 건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꽤 믿는가 보다. 어떤 서양 여행객이 지나가다가 길에 누운 개를 보지 못해 밟을 뻔했는데, 개가 재빨리 비켜났다. 그러곤 대수롭지 않게 ‘사고’로 인식하고 구석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큰 개를 동반한 여행자를 많이 본다. 유럽 대부분이 도로로 연결되어 자기 차로 다닐 수 있고, 현실적으로 어디 맡기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개들은 한결같이 철든 아이처럼 주인에게 보조를 잘 맞추었다. 우리는 개가 인간과 함께 살려면 길들여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인간의 편의에 맞추어 길들이는 것과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길들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오늘 나는 눈에 보인 현상만 전하고 있다. 조지아에 언제부터 이런 문화가 형성되었고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려면 이곳 전문가나 공무원, 아니면 일반 시민의 의견이라도 들어보고 써야 하는데, 취재가 여행 목적은 아니었다. 그건 기자들 몫으로 남겨둔다. 그런데 이 개들은 도대체 겨울을 어떻게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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