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의장 후보군 중립성 부정
민주 강성 지지층에 어필
무기명 자유 투표 맡겨야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23일 국회의장 출마 의사를 밝히며 “기계적으로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역시 국회의장에 도전한 조정식 의원도 22일 “민주당이 배출한 의장이고 민주당이 다수당”이라며 “총선 민심을 반영하는 국회의장이 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추미애 당선인도 "국회의장이 중립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렇듯 국회의장에 출마한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의 제도화는, 박준규 국회의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 운영개선위원회는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을 제안했는데, 이 제안은 이만섭 국회의장 시절인 2002년 국회법에 명문화됐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은 국회법에 규정돼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정치적 중립이란 국회의장이 가지는 ‘의무 사항’임을 보여준다. 국회법에 이런 사항이 규정돼 있지 않다고 가정해도,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은 당연하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자 ‘의회 민주주의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즉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을 저버리면,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 아닌 ‘진영의 전당’이 돼버린다. 민주당은 허구한 날 ‘국민’, 그리고 ‘민의’를 입에 올리지만 이런 식으로 국회를 운영하면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민주당 지지자’만을 의미하게 되고, 그들이 말하는 ‘민의’는 ‘지지자들의 뜻’에 불과하게 된다. 즉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찍은 45.1%의 투표한 유권자들은 ‘국민’도 아니게 되고, 이들의 의견은‘ 민의’가 아니기 때문에 무시해도 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 가치가 소수의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제도나 협의 과정에 반영함을 의미한다고 할 때,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소수의 가치는 묵살될 수밖에 없어 국회는 ‘민주주의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민주당의 국회의장 출마자들이 ‘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부정하는 것을 보면서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이 이런 식의 언급을 하는 이유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어필하기 위함일 것이다. 즉 현재 민주당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강성 지지층의 마음을 사야만, 국회의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친명 강성 지지층들은 후보 중 가장 강성으로 알려진 추미애 당선인을 국회의장으로 적극 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국회의장 선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국회법 15조에는 “의장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되며 임기는 2년”이라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에 의하면, 국회의장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 선출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국회의 다수당에서 국회의장 ‘후보’를 정하면 본회의에서 해당 ‘후보’를 ‘추인’하는 형식으로 의장이 선출된다.
결국 ‘무기명 투표’는 하지만, ‘선거’라는 제도의 본래 의미는 실종된 상태에서 의장을 선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례상 절차’를 법 취지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즉 국회의장을 ‘진짜’ 무기명 자유 투표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국회 다수당이 자당 내에서 후보, 아니 의장을 결정하지 말고 다수당 소속 의원이든 소수당 소속 의원이든 누구든 의장 선거에 출마하도록 하고 이들 출마자를 대상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를 실시해 의장을 선출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짜’ 의장 선거를 할 경우 현재와 같이 특정 정당의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일은 사라져, 당연히 국회법에 명기된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무시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의장 선출 과정을 보면서 22대 국회의 미래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21대 국회는 정치를 실종시킨 국회라는 말을 듣는 판인데, 22대 국회는 실종된 정치를 아예 ‘퇴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에서 특정 근육을 쓰지 않으면 퇴화하듯이 정치가 사라지는 기간이 길어지면 아예 ‘퇴화’의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도무지 희망을 품기 어려운 요즘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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