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동서고금]
5분 해프닝이 불러온 평생 평판 손상
감독부터 협회장 韓 사회 이미지 훼손
경제 단계 고도화 윤리와 도덕에 기반
韓 부동산 버불 붕괴 바닥부터 변화 必

아시안컵 축구 준결승전을 앞두고 대표팀 내에 큰 불화가 있었다는 얘기로 떠들썩하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선수들이 멱살을 잡았다거나 주먹질이 오갔다거나 하는 온갖 썰이 난무하다. 사람들은 사건의 디테일에 관심을 쏟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얘기의 안줏감으로 쓴다. 여기서 분쟁에 원인의 불씨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이겠지만 그 순식간이 영원이 된 것처럼 잘못 행동한 이의 명성은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그의 가치를 상징하는 몸값도 악영향을 받는다. 명성은 바로 가치이기 때문이다. 명성은 평판(reputation)의 결과다. 좋은 평판은 명성으로 이어지고 나쁜 평판은 오명을 낳는다. 미국의 전설적 투자자인 워런 버핏만큼 평판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도 많지 않다.
그는 경영에 있어서 손실을 보고 돈을 잃는 것은 봐줄 수 있어도 평판을 떨어뜨리는 것에는 무자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평판의 저하는 기업 이미지의 하락으로 이어져 실제로 매출을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손실은 단기적일 수 있지만 평판 저하로 인한 매출 하락은 장기적이다.
그런데 문제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평판의 저하가 그 여파를 판단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버핏은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잃는 데는 단 5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아시안컵 준결승 전야의 사고에 연루된 선수들 간에 고성과 몸싸움이 오간 시간도 길어야 5분이었을 것이다. 그 5분간의 해프닝으로 어쩌면 어느 선수들은 명성에 상당 기간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인적 평판리스크(reputation risk)는 관리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술버릇 나쁜 사람의 습관을 아무리 고치려 해도 힘들듯이 욱하는 성격에 기반해 일어나는 순식간의 일탈은 방지하기가 쉽지 않다.
행동에 문제가 있는 20대의 성인을 불러다 아무리 훈계해도 그 말이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훈계를 납득할 수 있는 심리구조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다. 그런 심리구조가 지속되는 한 일탈적 행위는 반복해서 일어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평판의 실추가 한두 명 선수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수단을 책임진 감독은 말할 것도 없고 축구협회와 그 수장인 축구협회장의 평판도 순식간에 추락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와 국가 자체의 평판까지 훼손된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현대차와 삼성폰을 사려고 했다가 그 뉴스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일본 차와 애플폰으로 갈 수도 있다.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려다 그 뉴스를 접하고 마음을 접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국가대표 평판 관리의 실패는 국가와 한국 기업 평판 관리를 위협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판을 관리해야 할까? 개인의 평판 관리는 그 인품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영어의 인테그리티(integrity)의 문제다. 인테그리티는 쉽게 번역하기 어렵다.
정직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일 때 인테그리티를 갖추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우리말의 인품과 가까울 듯하다. 그러나 인품이 보다 사적인 품성에 가깝다면 인테그리티는 공적 영역까지 포함한 품성을 뜻한다. 직장에서 윤리적(ethical)이다는 의미는 사생활이 깨끗하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투명하고 사심 없고 공정할 것이 요구된다.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해야 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자세는 사회가 전체적으로 윤리적일 때 가능하다.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때 사익을 챙기는 문화가 만연하다면 자신만 윤리적이기 어렵다. 자신만 손해 본다는 인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법치 문화의 문제이고 기업과 단체로 보면 지배 구조(거버넌스, governance)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적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번영을 구가하는 사회가 민주적 통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민주적 법치주의만이 인테그리티가 보장되는 인재를 선발해 투명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조직 운영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스템이 가끔 실패하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 실패를 반성하고 되돌릴 수 있는 제도까지 포함한다.
반면, 법치를 무시한 채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의 권위에 굴종하는 인치적 시스템이 지배하는 문화에서는 인테그리티가 살아 숨쉬기 어렵다. 어둠 속에서 권력자에 비굴하게 아첨하는 것이 투명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더 실속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민주적 체제를 갖춘 듯 보이고 표면적으로는 법치적 통제가 작동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조직을 작동시키는 원리가 인치에 불과한 사회는 그래서 발전에 한계가 있다. 그 경제도 일정 수준을 넘어 창의와 혁신이 성장을 불러일으키는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다.
결국 경제의 단계가 고도화하고 선진화하려면 그 경제를 떠받치는 사회와 문화가 투명성과 윤리와 도덕에 기반해 작동되어야 한다. 무늬만 민주주의인 숱한 나라들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늘날 중국도 비슷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영화 <서울의 봄>이 시종일관 보여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 덕택에 한국의 평판과 위상도 올라가 자본과 기술이 모여들면서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다. 과거 일본이 보여준 것과같이 엄청난 경제적 업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30년을 잃어버렸다. 남들이 성장하는 동안 정체에 빠져있었다. 그 이유가 비단 부동산 버블의 붕괴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특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큰 기로에 서 있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고 인구가 줄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따라갈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가 너무나 복합적이라 일부 시술로는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 문화의 바닥부터 철저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