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경평'
공단 경평 목표 중 하나 '환수'
무리한 처분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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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이면 국정감사가 열립니다.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감사에서 '공단이 직원 친인척 운영의 장기 요양기관 36곳을 나가봤더니 34곳이 허위 청구가 적발되었다'는 점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다수 언론은 이를 보고 요양급여 부당 청구 적발을 위해 현지 조사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논란의 이면을 보면 도대체 법령 기준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우면 심지어 공단 직원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기관도 저렇게 빠짐없이 허위 청구로 적발되었겠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당국이 조사만 나가면 기준 위반이라고 적발되는 제도가 과연 현실적일까요. 조사는 과연 적정하였을까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쟁점은 없을까요. 그래서 살펴봅니다. 장기 요양기관에 대한 현지 조사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논란이 되는 환수처분에 법적인 문제는 없는지, 조사 이후의 절차는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지 등의 주제로 3회에 걸쳐 법률적인 분석과 대응 방법에 관한 기고를 연재합니다. 필자는 사법시험 합격 후 약 10여 년 공단 법무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과 규제당국 내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장기 요양기관이 처하였거나 처하게 될 어려움에 조언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

공단으로부터 환수처분을 당한 기관의 대표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가 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계도 한 번 없이 바로 환수처분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공공기관의 운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법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공공기관 운영의 최우선 순위는 '법률'이 아닌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즉 '경평'이다.
정부가 매년 공공기관에 대해 실시하는 경평은 그 해 공공기관의 성과를 결정한다. 수장부터 말단직원까지의 1년간 임금과 성과급이 바로 이 '경평'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구성원이 경평을 잘 받기 위해 경주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대부분은 공익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지만 결국 공공기관 직원들도 민간인 신분의 회사원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부사장이 오상식 과장을 승진시키면서 그랬다. 회사원에게 승진과 월급 말고 무슨 보상이 있겠느냐고.
경평은 통상 그 해 목표한 지표의 달성 여부(계량)와 각종 정책의 성과 및 적정성(비계량) 평가로 진행된다. 항목별로 계량과 비계량지표가 있고, 이를 높이 달성할수록 높은 점수가 나온다. 공단의 전 부서가 바로 이 계량과 비계량지표에 직·간접적으로 연동되어 있는데 기획재정부가 펴낸 2022년도 준정부기관 경영실적 평가보고서 '위탁집행형-국민복리증진' 400P를 펴보면 바로 '장기요양 현지조사 적발 및 부당이득금 환수 성과'라는 평가항목이 나온다. 2022년 한 해 동안 현지조사 적발기관 수와 부당이득 환수처분 액수를 계량지표로 설정해 두었고 목표를 넘겼다고 하여 가중점수를 주었다. 말이 좀 어려운가?
공단은 기재부에 2022년에 1067개 이상 부당청구 기관을 적발하고 751억 5900만원 이상을 환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한 해 동안 1083개 기관을 부당청구기관으로 적발하고 761억 1200만원을 환수하여 그 목표치를 달성하였다는 뜻이다. 공단의 현지조사와 환수처분 부서는 이와 같이 조사인력을 늘리고 조사 대상 기관을 늘리고 법을 어긴 것이 없나 샅샅이 찾아보면서 공단 조직에 기여한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계도를 하겠는가. 계도를 하면 위법사실을 적발해도 한 번은 봐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부당 청구 기관 적발 횟수도, 부당이득 환수 액수도 줄어들텐데 말이다. 참고로 공단의 경평에서 장기요양보험에 관련된 평가 항목은 3개밖에 없다. 적어도 장기요양보험에서는 공단의 3대 목표 중 하나가 바로 현지조사 적발 및 부당이득금 환수라는 뜻이다.
물론 경평 목표가 그와 같이 설정되어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청구가 위법하였다면 환수는 법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제 많은 기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참작의 여지도 없는 거짓청구를 하고 있는바, 많은 공단 직원들이 묵묵히 공보험의 재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부분은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이러한 경평이 관청을 경직시킨다는 점에 있다. 목표가 설정되어 있으면 관청은 계도하고 넘어갈 일도 처분으로 넘기게 된다. 계도야 실제 위법한 것을 봐주는 것이니 그렇다 치지만 진짜 문제는 위법한지 여부에 관하여 해석이 애매한 경우에도 일단 부당으로 적발하고 처분에 나아간다는 데 있다.
대법원은 분명 침익적 처분을 할 때는 근거법령이 명확해야 하고 해석의 여지가 있다면 상대방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처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5두48884 판결 등 참조). 그러나 행정영역에서는 일단 애매하면 처분을 해 놓고 법원이 위법하다고 하면 그때 취소하는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단은 자꾸 '무리한 처분'을 한다. '무리'가 별게 아니다.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처분이라면 그게 무리한 처분이다.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밥솥에 밥을 해서 드리거나 오물 묻은 손수건을 세탁기에 돌렸다고 수억원을 환수당하고 몇 달간 업무정지를 당하는 결과가 상식적인가? 법령에는 사무원이 뭘 하는 사람인지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는데 사무원이 자신의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처분을 당하는 것은 상식적일까?

하나씩 살펴보자.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요양원이나 주야간보호센터의 운영에 있어, 수급자가 일정 숫자를 넘으면 조리원을 배치하여야 하되 외부에 위탁하는 경우에는 배치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전체 식사 중 일부를 내부에서 조리하였다면 환수처분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대법원은 불이익한 처분의 근거는 반드시 법령에 두어야 하며(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판결 등) 불이익한 처분을 할 때는 근거법령을 유추해석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5두48884 판결 등).
그런데 법령에는 위생원과 달리 조리원은 '전량'을 위탁해야지만 배치의무가 면제된다는 내용이 없다. 전량 위탁을 요구하는 내용은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노인보건복지 사업 안내' 책자에 가서야 등장한다. 처분의 근거를 법령이 아닌 안내책자에 두었거나 위생원 규정을 조리원에 유추해서 적용하는 셈으로, 앞서 본 대법원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위생원도 마찬가지이다. 법령해석은 문언을 기준으로 하여야 하지만 문언 뿐 아니라 입법 취지와 관련 사정까지 고려하여 현실에 부합하게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다81035 판결 등 참조). 세탁물을 전량 위탁하라는 법령의 취지가 단순히 위생원 배치의무를 면제해 주는데만 있는 것일까?
노인복지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시설의 운영에 있어 보건위생과 청결을 강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위 규정은 '내부 요양보호사가 세탁업무를 하기 어려운 기관의 경우는 전문 세탁기관에 위탁을 해서라도 더 위생적이고 청결하게 수급자들의 세탁물을 관리하라'는 취지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수급자들을 위생적으로 모시기 위해 속옷 등의 오물을 제거해 두는 정도의 내부 세탁을 처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법령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사무원의 경우에는 애당초 무엇이 사무원의 업무인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 '사무'는 그 한자어 용례 표기에 따라 '자신이 맡은 직책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일'일 수도 있고 '책상에서 문서 따위를 다루는 일'일 수도 있으며 '회사의 일'일 수도 있다(표준국어 대사전 참조).
화이트칼라 회사에서야 사무원이 책상에 앉아 문서작업을 하는 사람이겠지만 공장에서는 사무원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많은 기업들이 공장 노동자에게 operator라는 호칭을 붙이곤 한다) 프로스포츠 선수단이라면 사무원이 장비를 챙기고 빨래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보통 이들을 주무라고 칭한다). 요양시설에서는 사무원이 무슨 업무를 해야 할까? 처분을 다투기 위해서 법령이 아니라 국어사전까지 찾아봐야 하는 일은 참 갑갑한 일인데 정작 조사를 나온 직원에게 도대체 사무원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봐도 답이 없는 현실은 더 갑갑할 뿐이다.
'계도 한 번 없이 바로 환수처분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요양기관의 볼멘소리에, 보통 공단은 법대로 하였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인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어요. 억울하면 이의신청하시고 소송하세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법대로 해'라는 말은 선전포고다. 우리는 원만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보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반대로 '법대로 해. 억울하면 소송하던가'라고 하는 순간 끝까지 가보자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국가가, 관청이 나를 상대로 끝까지 가보자고 한다고? 송사 한번이면 5년은 우습다. 관청은 법대로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지만, 그 맞은 편 상대방은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생업을 걸고 수 년간 강력한 국가권력에 맞서야 한다.
그러니 관청이 하는 '법대로' 라는 말은 사실 스스로에 대한 매우 엄격한 고민 끝에 나오는 말이어야 할 것이다. 처분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한 고민은 사실 법원과 민간이 아닌 처분청 내에서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제51회 사법시험 합격(연수원 제42기)
법무법인 유원 소속변호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전문연구위원
법무법인 반우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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