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정부 빚 34조 달러 채무 한도 넘어서
위기 심화 8월 국채 등급 강등한 피치
강경 보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취임
보수 진보 극단적 양분 불확실성 증대

마이크 존슨(사진 오른쪽)의 하원의장 취임으로 미국 정가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EPA=연합뉴스
마이크 존슨(사진 오른쪽)의 하원의장 취임으로 미국 정가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EPA=연합뉴스

한 집안에서도 의견이 크게 양분된 상태에서는 중립론자가 설 자리가 없다.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식에 어긋날 정도로 상반되면 상식적이고 성숙한 의견이 오히려 비난받게 된다. 심지어는 상식론자가 회색분자로 지목되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현재 보수와 진보의 극단으로 양분된 미국 정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도 이와 유사하다. 미국의 선거 사이클은 2년이다. 4년마다 11월 초에 대통령 선거가 펼쳐진다. 이때 연방상원의원의 3분의 1을 새로 뽑고 하원의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총선이 함께 진행된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나면 중간선거가 치러진다. 이 중간선거에서도 상원 의석의 3분의 1과 하원 의석 전체를 놓고 경합이 벌어진다. 따라서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이지만 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정책을 평가하는 중간선거는 대체로 집권당에 불리하다. 작년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이 크게 이길 것으로 예측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투표함을 열고 보니 피 말리는 접전이 펼쳐졌다. 낙승하리라던 공화당은 하원에서 10석을 늘리는 데 그쳤다.

결과적으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었지만, 의석수는 전체 435석 가운데 222석으로 213석인 민주당에 단 아홉 석만 앞서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강경 보수 우파 그룹인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 멤버의 숫자는 45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오바마케어와 같이 정부 지원이 많이 필요한 복지정책에 반대하고 예산 삭감을 통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최근에는 이들의 노선이 보다 대중영합적이고 국수적인 경향으로 흘러갔다. 특히 이들 가운데 20여 명은 초강경 보수의 정치 색채를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이들의 숫자는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공화당의 하원 우위가 19명에 불과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태라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의 세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금년초에 진행된 미국 헌법상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 선출 과정에서였다.

하원의장은 하원의원들 가운데에서 출석의원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선출된다. 다수당이 단합된 상태라면 그 당에서 당론으로 미는 후보가 과반수를 얻어 하원의장으로 당선되는 것이 당연하다. 1927년 이후 다수당을 대표하는 하원의장 후보가 낙마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난 1월 3일 치러진 하원의장 선거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공화당의 하원의장 후보인 케빈 매카시에 대하여 프리덤 코커스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면서 과반 득표에 실패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며칠간 표결이 반복되었지만 매카시는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결국 1월 7일이 되어서야 15번째 표결에서 그는 겨우 과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도 굴욕적인 과정을 그치고 나서였다. 프리덤 코커스와 협상을 해 하원의원 누구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매카시를 의장에서 해임하는 신청안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3개의 상임위 의장 자리도 그들에게 양보해야 했다.

매카시의 재임 과정은 험난했다. 우선 연방정부 채무 한도가 발목을 잡았다. 1917년 이래 미국 정부는 의회가 정해준 한도 안에서만 나랏빚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 2021년 12월 미 의회는 국가채무 한도를 2조5000억 달러 늘여 31조3810억 달러로 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프라스트럭처 지원 등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나랏빚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결국 올해 1월 미국 나랏빚 규모는 국가채무 한도를 넘어섰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 구상과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프라스트럭처 지원 등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나랏빚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결국 올해 1월 미국 나랏빚 규모는 국가채무 한도를 넘어섰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 구상과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프라스트럭처 지원 등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나랏빚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마침내 올해 1월 미국의 나랏빚 규모는 국가채무 한도를 넘어섰다. 재닛 옐런이 이끄는 재무부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러나 의회의 승인을 얻어 채무 한도를 늘리지 않는 한 국가부도를 면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렸다. 시간이 갈수록 재정적자가 확대되었고 이를 또 빚으로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매카시는 바이든에게 정부 지출을 확 줄이라고 요청했지만 바이든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국가부도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공화당이 결국 채무 한도 증가에 찬성하리라 본 것이다. 결국 민주∙공화 양당은 재량적인 정부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조건으로 2025년 초까지 채무 한도 적용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위기를 가까스로 봉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적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 영향으로 나랏빚 규모는 33조7000억 달러에 다가서고 있다. 국가부도 위기가 언제 재현되어도 이상할 것 없다는 위기감이 점증하고 있다. 이를 반영해 지난 8월 미국 3대 신용평가기관인 피치가 미 국채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기까지 했다.

채무 한도가 증액되면서 매카시는 한 가지 골치 아픈 사안을 해결했지만 공화당 내 강경 보수인 프리덤 코커스까지 설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프리덤 코커스의 불만이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달 매카시가 미 연방정부 예산안 통과에 동의하면서였다.

미국 연방정부의 1년 회계연도는 9월 30일에 종료한다. 이날 자정까지 새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정부가 문을 닫아야 한다. 회계연도 첫날까지 예산안 통과가 무산될 경우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는 준예산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당초 매카시는 대규모 정부 예산 삭감과 불법 체류자가 주로 넘어오는 멕시코 국경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포함한 보수적 예산안을 제출했다. 그런데도 강경 프리덤 코커스가 반대표를 던졌다. 9월의 마지막 날 저녁까지도 연방정부의 폐쇄는 불가피해 보였다.

그런데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든 정부가 폐쇄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던 매카시가 백악관과 합의해 11월 17일까지 유효한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예산안은 현재 수준의 정부 지출을 승인한 일종의 단기 준예산이었다.

문제는 이 예산안에 대규모 정부지출 삭감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매카시는 자신의 행동이 어른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프리덤 코커스는 격노했다. 행동대장으로 나선 맷 게이츠 의원이 매카시 해임안을 제출했다. 결국 10월 3일 해임안이 통과됐다.

마이크 존슨(사진)은 2016년에 연방하원의원이 된 4선 의원이다. 그의 철학은 초강경 보수적이다. 연합뉴스
마이크 존슨(사진)은 2016년에 연방하원의원이 된 4선 의원이다. 그의 철학은 초강경 보수적이다. /AFP=연합뉴스

이제 후임 하원의장을 뽑아야 했다. 매카시의 낙마를 지켜본 공화당 온건 보수 세력도 질리긴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강경 보수후보가 여럿 나섰지만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26일이 되어서야 마침내 다섯 번째 후보로 나선 마이크 존슨이 가까스로 하원의장으로 선출됐다.

마이크 존슨은 2016년에 연방하원의원이 된 4선 의원이다. 우리나라로 보면 이제 갓 3선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루이지애나 출신으로 전국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적이 없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하원의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초강경 보수적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한다. 이혼 절차도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도 반대하는 트럼프 광팬이다. 존슨의 취임으로 미국 정가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그 와중에 재정적자만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의 앞날이 위태로운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주 가드너웹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퍼먼대학교에서  재무 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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