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시험과 싸워 이기라는 일본의 돈가스
개천에서 용 나라며 먹는 중국 돼지족발
엿처럼 찰싹 붙으라고 기원하는 한국

시험을 앞두고 있는 자식의 합격을 기원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들의 공통적인 마음일 것이다. 고 3이 된 큰아들의 수능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당장 점심 도시락으로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평소에 미역국을 좋아하는데 미역국을 싸주면 안 될까? 심신 안정을 위해서는 영양학적으로는 바나나를 먹으면 좋은데 미역국이나 바나나를 먹으면 시험에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에 수능시험 당일 도시락으로 싸주기는 적합하지 않은 메뉴인 것 같고···.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들이 아들의 합격을 기원한다며 엿, 초콜릿, 찹쌀떡 등을 선물로 주었다. 이러한 문화는 단순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인 일본과 중국에서도 볼 수 있다.

시험과 싸워 이기라는 일본의 돈가스

시험과 싸워 이기라는 일본의 돈가스 / (https://www.tasteatlas.com/tonkatsu)
시험과 싸워 이기라는 일본의 돈가스 /https://www.tasteatlas.com/tonkatsu

일본은 일본식 라면, 일본식 카레, 일본식 돈가스 등으로 다른 나라 음식을 현지화하여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서양에서 커틀릿(cutlet)으로 알려진 음식을 일본식으로 ‘가스’로 발음하고 그 앞에 돼지고기를 뜻하는 돈(豚)을 합쳐 ‘돈가스’가 됐다. 돈가스의 줄임말인 ‘가츠’(カツ)가 일본어로 ‘이기다’라는 뜻의 ‘가츠’(勝つ)와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나 큰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이 시험과 싸워 이기라는 뜻으로 돈가스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또한, 합격을 기원하며 ‘적을 물리친다’라는 의미로 돈가스와 스테이크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일본어로 스테이크(Steak)를 스데키(ステキ)라고 하는데 줄임말인 데키(テキ)는 물리쳐야 할 상대인 적(敵)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끈적거리는 찹쌀떡을 대표적인 합격 기원 음식으로 손꼽는다. 일본식 찹쌀떡인 모치(もち)는 단팥이 소로 든 흰색 찹쌀떡으로 다이후쿠(だぃふく)모치라고 한다. 단팥이 배불뚝이 모양으로 가득 차 있는 모양을 다이후쿠(大腹)라고 하는데 이때 배복(腹)자를 복복(福)자로 바꾸어 부르게 되면서 일본식 찹쌀떡인 모치는 ‘대복(大福)’ 큰 복을 먹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수험생들에게 합격의 기쁨을 맛보는 합격 기원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합격’이라고 새겨진 사과를 선물하기도 하는데 태풍을 견뎌내며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은 사과를 먹으면 시험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기원하며 돼지족발을 먹는 중국

중국의 합격 기원 음식 돼지족발 /https://kr.freepik.com/premium-photo/chinese-traditional-food-sauce-pork-trotters_35421269.htm
중국의 합격 기원 음식 돼지족발 /https://kr.freepik.com/premium-photo/chinese-traditional-food-sauce-pork-trotters_35421269.htm

중국 당나라 때는 장원급제한 사람의 이름과 답안을 수도 장안의 대안탑(大雁塔)에 붉은 먹물로 써서 내걸었다고 한다. 붉은 먹물로 쓴 이 게시물을 주제(朱題)라고 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주티(zhuti)이다. 이 ‘주티’라는 말이 돼지 족발(猪蹄)과 발음이 같아서 돼지 족발인 주티가 합격을 기원하는 음식이 되었다.

과거 시험을 보는 제도는 평민들에게도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에 평민들에게는 출세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장원급제를 하는 일이었다.

평민일지라도 과거급제를 하여 고위 관직 출셋길에 오르는 모습은 마치 개천에서 용이 나는 모습으로 비유되어 가난한 선비들은 과거시험을 앞두고 돼지 족발을 먹으며 대안탑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주티(朱題)가 내걸리기를 빌며 합격을 기원하게 되면서 지금도 중국에서는 합격 기원 음식으로 돼지족발을 먹는 전통이 있다.

중국의 대학입시 제도인 가오카오를 앞두고 장원병이라는 월병을 선물하기도 하는데 중추절에 흔히 먹는 월병과 같은 모양이지만 가운데에 장원(壯元)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옛날 장원급제를 하듯 높은 점수를 받아 시험에 합격하라는 뜻을 담고 있어 합격 기원 음식으로 많이 먹고 있다.

엿처럼 찰싹 붙어 합격의 기쁨을 맛보라고 기원하는 한국

한국에서 엿은 전통적으로 합격을 기원하는 식품이었다.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엿처럼 시험에 잘 붙으라는 뜻에서 생긴 풍습이기도 하지만 엿이라는 글자 속에 합격의 기쁨을 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엿은 한자로 ‘이(飴)’라고 쓰는데 먹을 ‘식(食)’과 ‘태(台)’ 자가 합쳐진 모양이다. ‘台’자는 별 ‘태’로 읽기도 하지만 기쁠 ‘이’로 발음하기도 한다.

상형문자인 한자에서 좋아서 입(口)이 방실거리는 모습을 표현하는 글자인 ‘태(台)’자는 보통으로 즐거운 것이 아니라 너무 기뻐서 희열(喜悅)을 느낄 정도로 좋다는 뜻이다. 단맛이 귀했던 옛날, 엿은 그야말로 희열을 느낄 정도로 기쁜(台) 음식이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 전통의 엿보다도 초콜릿, 마카롱, 에너지바 등 더 달콤하고 맛이 좋은 합격 기원 음식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의 합격 기원 음식 엿 /https://blog.naver.com/knicjin/222396117418
한국의 합격 기원 음식 엿 /https://blog.naver.com/knicjin/222396117418

돈가스, 찹쌀떡, 합격 사과, 돼지족발, 장원병, 엿 등 합격을 소망하는 한·중·일 음식을 살펴보면서 음식은 각양각색이지만 합격의 의미를 담은 간절함은 공통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무상 급식이 실시된 이후로 소풍날 김밥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도시락을 싸본 기억이 없다.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따뜻한 밥과 국물을 준비해서 평소에 아들이 좋아하던 반찬을 담아 도시락을 싸줘야겠다.

“엄마가 새벽부터 만든 합격 기원 도시락 먹고 힘내서 시험 잘 보기를···”

간절한 소망을 담아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