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8월 관리처분 인가 시 10개월 사용
예산 소진용 도로·보도 공사 관행 논란
정치인 치적 쌓기·행정편의주의도 원인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용산역 1호선에서 내리면 재개발 사업지로 지정된 신용산 북측 1·2구역이 이어진다. 일평균 승하차 인원 2만5000여명의 서울의 중심지인 만큼 재개발을 앞둔 상황인데도 도로와 부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런데 골목을 들어서니 상황이 달랐다. 도로 위에 드문드문 아스팔트 포장 공사 장비와 트럭이 보였다. 또 한쪽에선 공사 인부 3~4명이 아스팔트 포장 공사를 새롭게 한 뒤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13일 여성경제신문을 만난 공사장 인부는 "지난 금요일에는 비가 왔는데도 공사를 했다"며 "인근 도로의 아스팔트를 전부 교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공사가 진행된 신용산역 북측 제2구역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2-194 일대 구역 면적 2만2119㎡를 대상으로 지하 5층∼지상 33층 규모의 아파트 340가구와 오피스텔, 업무시설, 판매시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재개발 공사 일정에 관해 신용산역 북측 제2구역 조합 관계자는 "내년 8월 관리처분 인가를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애초에 이런 사업은 일정대로 딱딱 처리하지 못한다"며 "관련 단체와의 협의가 필요한데 이 경우 협의 내용에 따라서 일정이 단축되기도 하고 늘어지기도 한다"며 일정이 명확하지 않음을 설명했다.
또 내년 8월 관리처분 인가가 나면 불과 10개월밖에 사용하지 못할 도로가 새로 깔리는 것에 대해선 "재개발과는 관련이 없는 공사"라면서 "재건축이 빨리 이뤄졌다면 아스팔트 공사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본지가 용산구청의 신용산 북측 1·2구역 일대 공사계획을 들여다 본 결과 '2023년 주민참여 도로정비공사'라는 항목이 있었다. 지난 25일부터 한강대로 121 ~ 한강대로39길 20, 한강대로 2가 2-35부터 2-37을 대상으로 11월 30일까지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한강대로39길의 서울미디어그룹 직원 전용 식당 앞의 도로와 맞은편 거리의 도로가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다. 실제로 서울문화사부터 엠비젼플러스까지의 새창로 도로와 파리바게뜨 앞의 도로도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용산구청 "아직 재개발 착공 상태 아냐"
지방자치단체 예산 위해 억지공사 논란

지역 상가에선 전형적인 예산 소진용 사업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본지가 만난 인근 지역상인 이준호 씨 또한 용산구의 현재 진행 중인 공사에 대해 "별 불편함이 없었다. 왜 굳이 연말에 하냐"며 의아함을 표현했다.
반면 용산구청 관계자는 "재개발은 아직 착공이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재개발 관련으로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공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되는 공사가 재개발과는 무관한 공사라고 실토한 것이다.
그러면서 관리처분인가가 나지 않은 상황을 탓했다. 그는 "신용산 북측 2구역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건 맞다"라면서도 "착공 시기는 불명확하다"라고 말했다. "주변 도로나 보도를 공사하는 이유는 사람이 사는 생활권이라서 하는 것이다. 당장 내년에 재개발 공사가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 시민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아직 재개발 사업의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리 차원에서 해당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이 용산구청의 입장이다. 하지만 매해 되풀이되는 도로 정비 공사는 용산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컨대 광주 5개 자치구는 민선 7기 들어 지난 2018년 7월부터 2021년까지 209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모두 189건의 보도블록 교체 공사를 진행했다. 도시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자치구들은 보도블록 공사를 위해 정부와 광주시, 지방의원들을 통해 특별교부세와 특별재정교부금을 지원받기도 한다"며 "청마다 특별교부세와 특별재정교부금을 확보해 공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특별교부세는 정부가 공공시설의 개설이나 유지·관리·보수에 긴급을 요하는 예산을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특별재정교부금은 광역시·도가 관내 시‧군‧구 간 재정 불균형을 해소하고 특정한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지원하는 개념이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들이 한 해 동안 소진하지 못한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 연말에 보도블록 공사를 실행하고 있다. 배정받은 예산을 소진하지 못할 경우 내년도 예산을 배정받을 때 삭감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관행을 막기 위해 2007년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을 개정해 민원이 제기된 보도블록을 제외하고 전면보수 준공 후 10년 이내 전면보수는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연말이 되면 지자체 입장에서는 일부러 멀쩡한 시설물을 교체하거나 공사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지역구 도로 관련 공사는 눈에 띄고 생색내기 쉬워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공사다. 멀쩡한 상태임에도 관행적으로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치적 쌓기와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에 대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용산 일대 아스팔트 공사 현장을 지나가던 김정인 씨는 "그 돈으로 불우이웃을 도왔으면 좋겠다. 실질적으로 시민의 삶에 도움이 될 사업에 투자했으면 좋겠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토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용산구가 자체적으로 결정한 일이라 중앙부처에서 의견을 내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