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후 서비스 편입 시 공백 생겨
장애인 돌봄 사각지대 대책 개선 필요

# 69세 김정섭 씨는 65세가 되던 해인 4년 전 황반변성으로 양쪽 시력을 모두 잃었다. 병을 진단받을 당시 외부 활동 도움을 받는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를 신청했지만 대상이 아니란 답이 돌아왔다. 현행법상 65세 이후 첫 장애 판정을 받은 경우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거주지 근처의 동사무소를 수없이 찾았지만 '장기 요양보험을 신청해야 한다. 65세 이후 장애 판정을 받으셨기 때문에 장애인 활동지원은 신청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김씨는 결국 65세 이상 노인 중 거동이 불편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 장기 요양 4등급만 받았다. 하루 3시간 남짓 집에서 요양보호사 도움만 받는데, 이마저도 한 달에 20만원을 내야 한다. 외출은 김씨에게 꿈만 같은 일일 뿐 끼니조차 거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 올해 65세가 된 지적장애인 송재림 씨는 지자체에서 '65세가 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장애인 활동 지원 예산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복지부로부터 392시간, 서울시로부터 185시간을 지원받아 총 577시간의 활동 지원 시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 장기 요양 서비스로 전환될 경우 한 달에 70시간밖에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사실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방법은 노인요양시설로 들어가는 것뿐이지만, 이마저도 대기 인원이 많아 어려운 상황이다.
고령자이면서 장애인인 사람을 뜻하는 '고령 장애인'에 대한 복지 제도의 한계점으로 인해 수급자의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에선 65세 이후 장애 판정을 받으면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복지 혜택인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노인에게만 주어지는 '장기 요양보험' 제도만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고령 장애인에게 장기 요양보험과 활동 지원 서비스를 동시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장애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나 65세가 넘은 경우에도 법적 한계가 존재한다. '장애인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및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르면 노인 장기 요양 서비스 대상자가 아닌 경우에만 활동 지원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65세가 넘은 장애인이 활동 지원 서비스를 계속해서 받으려면 '노인 장기 요양 서비스를 받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다'는 노인 장기 요양 '등급 외' 판정을 받아야 한다. 서비스 유형 전환은 장애인 당사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던 사람이 65세가 넘으면 노인 장기 요양 서비스로 편입돼 서비스 시간이 줄어드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조윤화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장애인도 노인과 유사한 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뇌 병변이나 와상·척수 장애인들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음식을 먹여줘야 하는 등 돌봄이 필요한 최중증 노인들과 같은 양상을 띤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최대 16시간인 반면 노인의 경우 최대 5시간이다. 앞서 언급한 장애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형태"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활동 지원 서비스에 대한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2021년 1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법 개정안을 보면 65세 이후 장기 요양 수급자 전환 후 장애인 활동 지원에 비해 줄어드는 급여를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개정안은 국회에 잠들어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장애인단체 한 관계자는 "나이 제한 없이 장애인 활동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1년 넘게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조 부연구위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가장 큰 문제는 65세 이후에 장애가 생겼거나 기존 장애가 악화한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시각장애인은 처음엔 경증이었다가 나이가 들면서 전맹이 되는 경우가 있다. 경증은 기존에 서비스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65세 이후 활동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며 "전맹은 활동 지원 서비스를 5시간 이상 받을 수 있지만 노인 장기 요양은 거동 여부가 중요하므로 시각장애인이어도 거동할 수 있다면 돌봄 지원은 3시간밖에 받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는 장애인이 이용하는 경우도 꽤 있다. 서비스 제공자들은 장애인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신장애, 발달장애, 지적장애와 같이 거동은 되지만 노인복지영역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고령 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영역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고 반대로 장애인복지영역에서도 고령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양 영역의 돌봄 대책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고령 장애인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체 장애인 중 절반 이상인 53%가 고령 장애인이지만 장애 특성에 맞는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다가 65세 이후 노인 장기 요양 수급자로 전환된 경우 장애인 활동 지원에 비해 줄어드는 급여를 지원하게 하도록 많은 개선을 했지만 사각지대가 여전해 좀 더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장애계 한 관계자는 "전체 장애인의 52.8%를 차지하는 고령 장애인이 장애인복지서비스 대상에서 노인복지 대상으로 연계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원 공백이 포괄적인 장애인 정책 개선 요구에 묻히거나 정책 중요도에서 밀리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치매·간병보험 가입한 고령자 10명 중 2명뿐
- 내년 장기요양보험료율 1.09% 인상···2018년 이후 최저 수준
- 재난 앞 속수무책 재가 장애인···안전 훈련 교육 부재
- 고령 인구 증가에 국립재활원 "돌봄 로봇 개발 집중해야"
- 방문 요양보호사도 '승급제' 적용···2024년 달라지는 처우개선 '3종 세트'
- 발 매트로 덮어버린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설치도 관리도 미흡"
-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 비율 50%대 넘겼다
- 김예지 의원, 65세 이상 고령장애인 활동 지원 사각지대 해소한다
- "나이 들면 장애 없어지나"···발달장애인 활동 서비스 연령 지침 '혼선'
- 65세 넘은 장애인도 일자리 구한다···장기요양등급 판정 참여 제한 폐지
- 절반 이상 노인인데···고령 장애인 맞춤형 정책 지지부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