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유가 충격 완화 물가 둔화
중동 사태로 한·미·유럽 물가 반등
2% 물가 달성 韓 25년 美는 26년

물가는 유가 움직임을 좇는다. 유가 급등에 물가도 급등한다. 석유는 현대 문명의 공장과 바퀴를 굴리는 원초적인 재료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중동 지역에 대한 불안감이 휩쓸자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급등했고 전 세계 물가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투자은행은 올해 9월을 미국의 첫 금리 인하 시점으로 점쳤다. 예상치 못한 유가 변수는 ‘피벗(Pivot, 통화정책 전환)’의 P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 전제조건으로 언급하는 물가 2% 목표 달성 시점이 3년 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30일 여성경제신문이 이날 한국은행이 공개한 ‘주요국 디스인플레이션 현황 및 평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과 중동 사태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더뎌졌고 물가 2% 목표 도달까지도 2~3년 늦춰졌다. 특히 전 세계 금리 정책을 좌우하는 미국은 2026년경이나 돼야 2% 물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까지 고금리 장기화는 물론 금리 인하는 멀어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물가 목표(2%) 도달 시점은 2025년 상반기다. 유로 지역은 2025년 하반기, 미국은 2026년경이다. 미국과 유로 지역은 수요와 임금 압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면서 디스인플레이션을 제약한다. 한국의 경우 서비스 물가는 미국, 유럽보다는 높지 않지만, 근원 상품 물가 오름세가 더디게 둔화하고 있다.
근원 상품 물가는 가격 변동성이 큰 석유나 농산물 가격을 제외하고 집계한 물가를 가리킨다. 근원 물가가 더디게 둔화한다는 말은 석유가 전체적인 물가를 띄운 이후 석유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기존 물가 수준으로의 회복이 쉽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행 물가동향 팀은 “한국의 경우 최근 반등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수요압력 약화 등으로 둔화 흐름을 재개할 것으로 보이나 둔화 속도는 중동 사태 등으로 당초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과 같이 유가 및 농산물가격이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경우 소비자물가상승률의 둔화 재개 시점도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아울러 고물가를 경험하면서 경제주체의 가격·임금 설정 행태가 변했을 가능성도 디스인플레이션을 더디게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피벗 기대한 시장 ‘6연속 인하’
예상 밖 경제 호황 미국 고금리 장기화

올 상반기까지 미국 물가는 완연한 둔화 추세를 보였다.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밑까지 하락하고 노동 수요도 본격적으로 둔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9.1%까지 올랐던 물가는 올해 6월 3%까지 내렸다. 그러자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증권가는 9월 금리 인하를 기대했다. 실제 지난 4월 5일(현지 시각)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 국채 2년물 수익률은 3%대에 안착했고 10년물 수익률은 3.2980%를 기록했다. 6연속 금리 인하 기대는 이런 지표를 근거로 나왔다.
당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페드워치는 “경기둔화 가능성이 반영되면서 현행 연방기금금리(4.75~5.00%)가 7월까지 유지된 후 9월, 11월, 12월, 내년 1월, 3월, 5월까지 6회 연속 0.25%포인트의 금리인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美 경기 위축에 구인 광고 줄었다‧‧‧‘6연속 금리인하’ 꿈꾸는 시장)

그러나 6월 물가 저점(3%)을 찍은 직후 7월부터 상승 전환했고 9월 물가는 3.7%까지 올라섰다. 국제유가 상승뿐 아니라 예상보다 견조한 미국 경제와 강건한 고용 상황 영향이다. 이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고 ‘한 번 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도 열었다. 2024년과 2025년의 정책금리(중간값)가 각각 4.6→5.1%, 3.4→3.9%로 50bp(1bp=0.01%)씩 상향 조정됐는데 이는 고금리가 더 오래 머문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안 떨어질 거라는 말이다. (관련 기사 : [포커스] ‘한 번 더 인상’ 무게 실은 파월···킹달러에 치인 코스피·코스닥 개미)
파월 의장은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해 답할 때 시점에 대한 신호를 보낼 의도가 없다”라면서 “내년이 되면 정책 시차, 경제 상황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할 것이며, 언젠가는 금리인하가 적절해지는 시점이 올 것”이라며 피벗 시점이 아직 멀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주요국의 금리 정책에 영향을 미치며 환율 요동이 향후 2~3년간 지속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한국 기준금리는 지난 19일 6연속 금리 동결로 연 3.5%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는 5.5%로 한미 기준금리 역전 차는 2%포인트로 역대 최대치다.
이날 오전 3시 10분(현지 시각) 미 국채 10년물은 4.8670%를 기록했다. 2년물은 5.0250%로 여전히 5%대로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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