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물가 0.4%↑석 달 상승세
산유국 감산 중동 사태 유가 상승
하계 누진 완화 종료 전기료 급등
시간차 둔 소비자물가 상승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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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슈는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반복해서 등장한다. 범람하는 뉴스 중에도 우선순위는 있다. [경제 0면]은 동시대 전체 경제 윤곽을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졌다. 1면보다 더 중요한 0면이다. 다달이 집계되는 물가, 금리, 원자재 가격과 같은 거시 경제의 근간부터 원자력 발전, 반도체, 이차 전지 등 미래 지향적인 산업 이슈로 친근하게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

석유와 전기료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인프라 구축에 핵심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석유와 전기가격 상승은 9월 생산자물가에 온전히 반영됐다. 금융당국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사로잡혔다.
생산자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전이된다. 특히 정부 및 가계 부채 규모와 증가 속도가 전 세계 최상위권에 드는 한국은 물가 잡겠다고 금리 인상하기에도 리스크가 크다. 장기간 고금리 상황에서 기업의 자금조달 상황도 녹록지 않다. 한국은행의 6연속 금리 동결 이유가 여기에 있다.
24일 한국은행은 9월 생산자물가지수가 121.67(2015년=100)로 8월(121.17)보다 0.4% 상승했다고 밝혔다. 생산자물가는 지난 7월부터 석 달 연속 올랐다. 다만 9월 상승 폭은 1년 4개월 만에 최대 수준이었던 8월(0.9%)보다는 축소됐다.
생산자물가는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1.3% 상승했다. 전년 동월 대비 2개월 연속 상승했다.
지난달까지 물가 상승 요인의 주범이었던 농림수산품이 전월 대비 0.2% 상승했다. 농산물(-1.5%)과 수산물(-0.9%)이 내렸지만 축산물(3.5%) 가격이 올랐다. 청탁금지법 선물 가액 상향, 개학으로 인한 단체급식 재개 등 영향이다.
석탄·석유제품의 상승은 지난달에 이어 지속했다. 석탄·석유제품(6.6%), 화학제품(1.5%) 등이 올랐다.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의 감산 영향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에 직격탄을 맞았다. 석유 제품이 포함된 전체 공산품은 0.8% 상승했다.
눈에 띄는 것은 전력·가스·수도·폐기물 항목의 큰 폭 상승이다. 전월 대비 0.8% 상승했는데 이는 여름철 누진 구간 완화 종료에 따른 주택용 전력(14.6%) 상승이 주효했다.
수입품까지 포함한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전월보다 0.8% 상승했다. 원재료, 중간재, 최종재 물가가 각각 3.7%, 0.7%, 0.3%씩 올랐다.

9월 생산자물가 상승에 이달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생산자 판매가격을 측정한 생산자물가는 시차를 두고 전반적인 소비자물가를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7%를 기록하며 단숨에 다섯 달 전 물가 수준으로 되돌렸다. (관련 기사 : ‘잊을 만하면 빈살만···’ 韓 물가 다섯 달 전으로 되돌린 사우디 왕자)
올해 물가 3.5% 전망 철회 '더 높아질 것'
금융안정과 물가 사이에 둔 정책 딜레마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도 유가 변동성에 따른 물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8월 내년과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대해 각각 3.5%와 2.4%로 예측했다. 그런데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있던 지난 19일 내년과 올해 물가 수준이 8월 전망치를 웃돌 것이라며 기존 전망을 전면 철회했다.
그러나 한은은 물가가 지난 7월 이후 상승 전환했고 향후 물가 수준이 예측보다 더 높아질 것이란 것을 인지함에도 올해 6연속 금리 동결을 단행했다. 경기 둔화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글로벌 경기는 성장세 둔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라면서 “중국 경제는 부동산 경기 부진과 수출 둔화로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국 경기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7월 전망치(2.9%) 이후 총 5회 연속 하향 조정됐다. 상향 조정되는 주변국과 다른 양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로 1.4%를 전망했다. 직전 7월 전망치를 유지했다.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은 기존 전망치인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가계부채 증가는 한은이 정책 딜레마에 빠져있는 이유 중 하나다. 9월 은행권 가계부채는 108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고 비은행권의 부동산 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상반기 기준 121조원에 육박한다. 침체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자니 가계 빚이 급등할 우려가 있고, 물가를 낮추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부동산 거래 절벽에 따른 자산 가격 하락과 연체율 증가로 금융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딜레마에 대해 토로했다. 이 총재는 “저희(한은)가 금리를 더 올릴 경우 물론 가계대출을 잡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이에 따른 금융시장 안정 문제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하고, 물가(소비자물가상승률)도 한때 2.3%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는 금리 인상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 총재는 “완화했던 부동산 규제 정책을 다시 타이트하게 하고(조이고), 그래도 가계부채 늘어나는 속도가 잡히지 않으면 그때는 심각하게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