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발의안 법사위 계류 중
한국 제외한 선진국 도입
여성단체 "구성요건 개정하라"

25일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등 여성단체가 비동의강간죄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25일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등 여성단체가 비동의강간죄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윤석열 정부의 양성평등정책 세부 과제에서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비동의 강간죄’ 신설안이 제외되면서 법제화에 제동이 걸렸다.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5일 여성가족부(여가부)에 따르면 여가부는 최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2023년도 시행계획’을 확정했다. 지난해 나온 제2차 계획안의 시행 계획에는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를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의 죄’로 개정 검토"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계획안엔 빠졌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지난 2월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에 대해 “철회한 게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국회에 설명했지만, 결국 이를 추진하지 않는 방향으로 확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법상 ‘강간죄’는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인정된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부간의 비동의 성관계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 5년간 한국에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꿀 것을 5번 권고했지만 우리 정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유보적 입장을 유지했다. 이는 영국, 독일, 스웨덴 등이 운용 중인 국제적 추세와 어긋난다.

일본도 최근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확정했다. 지난 5월 일본 중의원, 6월 참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개정안은 기존의 ‘강제성교죄’와 ‘준강제성교죄’를 통합해 ‘부동의성교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 정책 시행 계획이 2022년(왼쪽)에서 2023년(오른쪽)으로 바뀌었다. /여성경제신문 DB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 정책 시행 계획이 2022년(왼쪽)에서 2023년(오른쪽)으로 바뀌었다. /여성경제신문 DB

한국은 20대 국회에서 비동의 강간죄를 담은 형법 개정안이 2018년 미투 운동의 여파에 힘입어 10건이 발의됐으나 모두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폭행 ·협박으로'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로 개정하고, 사람의 저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사처벌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성범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율하는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장 제목을 '성적 침해의 죄'로 바꾸고 강간의 구성요건을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경우',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인 경우'로 유형화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각각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국민의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론으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여야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셈이다.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와 여성시민사회 243개 단체는 이날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제 성폭력으로 신고된 사례 중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던 경우는 10% 미만”이라며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가장 보통의 준강간 사건’ 피해자(대독)는 “거듭된 거절을 가해자는 철저히 묵살했고, 반항 행위는 허무할 정도로 가볍게 제압됐다”며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기에 강간죄로는 기소가 되지 않았다. 더 거세게 저항해서 한 대라도 맞을 걸, 그랬으면 혹시 결과가 달라졌을까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도입을 꺼리(여가부)는 이유는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 우려 때문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이 법을 도입하면 동의가 있었다는 입증 책임이 검사가 아니라 해당 피고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며 “억울한 사람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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