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고객은 금융회사의 봉인가
금융사기 안 당하는 방법은
은퇴 후에는 돈을 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잘 지키는 요령도 필요하다. 자칫하면 일생을 통해 모은 돈을 한 번에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금리가 낮아 자금을 운용하기가 쉽지 않을 때는 고금리를 미끼로 접근하는 집단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라임 사태라든지, 옵티머스 사건이 그 본보기다.
은퇴한 사람은 사회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할 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비슷할 거라고 간주한다. 대개 직장인의 인간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흔히 퇴역 군인의 돈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도 있다. 이들의 사고가 단순하여 돈을 노리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꼽히는 골드만삭스의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며 한 매체에 보낸 기고문에 월가는 물론 전 세계 금융가가 술렁거린 적이 있다.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고객 이익보다는 회사 돈벌이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골드만삭스 임원들 고객관이 부도덕하다고 꼬집으며 "지난 12개월 동안 고객을 봉(muppets)이라고 지칭하는 임원을 다섯 명이나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금융회사 직원이 직접 고객의 돈을 횡령하기도 한다. 오래전 금융회사에 재직 중일 때다. 창구직원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었다. 대개 직원이 퇴직하면 동료들과 송별식을 하는데 그는 그것도 마다하고 회사를 떠났다. 몇 달 후 그에게 회사 앞으로 편지가 왔다. 자신이 재직 중 고객의 돈을 횡령했는데 앞으로 얼마 후 예금의 만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고객의 돈을 이용하여 주식투자를 하다가 손실을 보자 회사를 그만두고 잠적한 것이다.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회사의 공신력이 떨어지고 감독기관의 문책을 받을 것 같아 쉬쉬하며 대책반을 조직했다. 직원 몇 명이 그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우선 집으로 갔는데 가족들은 그가 집을 나간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검거되었지만 횡령한 돈은 이미 탕진하여 없어진 뒤였다.
나중에 밝혀졌는데 그는 고객과 거래할 때 예금인출청구서에 도장을 하나 더 받아 놓고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가 돈을 빼돌리곤 했다. 처음에는 고객의 돈을 이용하여 잠깐 주식투자를 한 후 채워놓으려고 했는데 투자에 실패하며 그 돈이 점점 커갔던 것이다.
금융회사에서는 내부통제 기능이 있지만 사실 직원이 흑심을 품으면 그걸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이 어렵다. 최근 어느 증권회사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영업 담당 창구직원이 고객의 증권카드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현금을 인출하고 이 돈을 타 계좌에 이체해 위험상품에 투자하다 돈을 날려 버린 것이다.

금융회사 창구에 가면 돈을 찾을 때 흔히 고객의 도장을 달라고 요구한다. 직원의 의도는 고객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겠다는 것인데 잘못하다가는 위의 사례처럼 사고를 당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인출청구서 등에 도장을 찍을 때는 자신이 양식에 직접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해야 한다.
이런 사례도 있다. 일전에 친구가 신문광고 하나를 들고 와서 한번 가보자고 권유한다. 내용을 읽어보니 그들이 추천하는 회사에 투자하면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그가 재차 권하여 같이 가기로 했다.
회사는 강남 도로변 새로 건축한 빌딩의 2개 층을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넓은 사무실에는 책상이 꽤 많았는데 이상한 것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모두 외근을 나갔단다. 직원의 안내로 응접실로 가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이 추천한 수십 개 회사의 명단을 보여주며 한 개 회사만 적자를 보았고 나머지 회사는 모두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이름이 생소하여 재무제표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것은 회원으로 가입해야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투자자를 모집하냐고 물으니 과거 금융회사에 근무했던 퇴직 직원을 사원으로 채용하여 영업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보험회사의 모집인 같은 구조였다. 이들은 투자를 유치하면 일정률의 사례비를 받는다. 대표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과거 창업투자회사에서 근무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제야 짐작이 갔다.

창업투자회사에서는 벤처기업을 발굴하여 투자조합을 결성한 후 자신이 먼저 일정 부분을 투자하고 여러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한다. 투자가 실패하면 자신도 손해를 보는 구조다. 사실 벤처투자라는 것이 성공하기 쉽지 않다. 실패하는 투자가 더 많다고 보면 된다. 그야말로 벤처투자다.
우리가 방문한 회사는 투자에 참여하지 않고 개인투자자에게만 투자를 권유했다. 그리고 성공하면 그들 회사와 고객이 수익을 나누는 구조라고 한다. 실패해도 회사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런 불평등한 계약이 어디 있냐고 하며 차라리 당신네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하니 그 제안에는 직원이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흥미를 잃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금융회사의 많은 상품이 고객의 손실과는 무관하게 회사는 이익을 보는 구조다.
몇 달 후 신문에 금융사기단을 검거했다고 제법 큰 기사가 났다. 바로 우리가 방문했던 회사였다. 저금리에 지친 투자자들에게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유사 수신행위를 하는 단체의 한 가지 사례다. 유사 수신업체들은 저금리 상황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금융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들고 있다. 비상장회사 투자를 권유하며 상장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고전적 수법도 여전하다.

유사 수신업체는 아니어도 경제 관련 쇼 프로그램도 경계하여야 한다. 흔히 방송이나 신문을 타면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신뢰하는데 그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어떤 사람은 생소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 소개하면 좋은 상품인줄 알고 무작정 따라 하기도 한다. TV 경제 프로그램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할당된 시간이 짧아 투자위험이 있는 상품의 장점만 들어놓고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단점들은 간단히 언급하거나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젊었을 때라면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가 있지만 나이 들어서 실수하면 그 손해를 만회하기가 어렵다. 금융사기를 당하지 않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스스로 금융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만약 공부가 하기 싫다면 유사 수신업체 근방에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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