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걱정
남의 눈 의식 말고 소신껏 살되
내 인생 부모 탓으로 돌리지 말라
나이 들면 좋은 점도 있다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다가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아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아이의 생각이 순진하고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어서 실소가 나왔다. 왜 어린이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할까. 아마 아이가 볼 때 어른은 키가 크고 힘도 세며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에 그러한 답을 하지 않았을까.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랬다. 어른이 되면 미성년자 출입 금지가 붙은 영화관도 드나들 수 있고 여행도 혼자 떠날 수 있는 등 행동의 반경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담배를 배우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 어린이는 나이가 드는 것을 기다린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또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이에게 소원을 물었다. 그랬더니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랬다. /게티이미지뱅크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이에게 소원을 물었다. 그랬더니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랬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른이 되어보니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질병이 몸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나이 드는 것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늙는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기도 하다.

어느 날 도서관에 갔다가 매력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유쾌하게 나이가 들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솔깃한 일인가. 책은 미국 작가이자 대학교수로 40년 넘게 강단에서 글쓰기를 가르친 남자가 쓴 ‘Rules for Aging’이란 책을 번역한 것이다. 원제에는 유쾌하다는 내용이 없는데 출판사에서 나와 같은 독자들의 관심을 얻기 위하여 붙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거야 어떠하랴. 우리가 그저 책을 유쾌하게 읽으면 되지 않겠는가.

책의 내용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방법을 제시했다기보다 나이 들어가며 갖추어야 할 행동 지침 등을 열거했다.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터득한 경험이라 공감이 가는 사항이 많다. 우선 제1조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규칙이다. 사람들이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상황이나 일을 갖고 지나치게 고민을 많이 하는데 지나고 보면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다.

왜 ‘이 또한 지나가리’란 말이 있지 않은가.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며 나머지 4%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니 걱정해도 소용없다는 얘기다. 돌이켜보면 나도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갖고 고민했던 일이 많았다. 그러니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도 지나치게 하지 말 일이다.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2조 ‘당신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규칙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자신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듯이 남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소신껏 살라는 얘기다. 우리가 남을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훨씬 더 편안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

제7조는 ‘서른이 넘었으면 자기 인생을 부모 탓으로 돌리지 말라’ 요즘 금수저 흙수저 하는 수저계급론으로 자신의 처지를 부모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팽배한 시기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세 가지 기회를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첫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둘째 약하게 태어나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여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부의 세습이 만연한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은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적지 않다. 저자는 기준을 스물다섯으로 낮추라고 한다. 20대들이 생각해 봐야 할 문구다.

이밖에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파고들지 말라’, ‘친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차라리 외로움이 낫다’, ‘모두가 뜯어말리는 일은 하지 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무슨 일이든지 돈 때문에 하지 말라’ 등 여러 가지 규칙들이 나열되어 있다.

나이 들어 좋은 점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 들어 좋은 점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어른들에게 반가운 일은 아니다. 머리도 빠지고 기억력도 가물가물해지며 눈도 어두워진다. 주름이 늘어가고 행동이 더디어지며 또 여기저기 아프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루어 놓은 것도 없으며 누구도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소외감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현실인 것을. 알랭이 행복론에서 얘기했듯이 그렇게 생각해 보았자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고 더욱더 자기 마음만 아프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도 있다. 중년이 되면 평소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도 소중하게 생각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야생화, 내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음에도 나에게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 자연들, 맑은 공기, 따스한 햇볕, 아름다운 음악,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생각해 보면 너무나 많다.

나 역시 기운이 쇠하고 시력도 많이 약해졌다. 이제는 남의 결점을 보는 시력은 거의 떨어졌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남의 좋은 점을 보는 눈은 아직 가물가물 남아 있다. 귀도 어두워 나쁜 이야기는 잘 듣지 못한다. 희미하게 들리더라도 듣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을 듣고 마음을 어지럽힐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을 칭찬하는 말은 잘 들린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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