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차관 노동개혁 방안 발표문 보니
법치 실현에 우선순위 둔 제도 개혁
공익위원 중심 재구성 필요성 강조

이성희 고용노동부 신임 차관이 노동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수술을 암시한 보고서를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수주의 성향의 대표적인 노동 이론가인 이 차관의 뜻이 법치주의 실현과 경노사위 개혁에 방점이 맞춰진 것이 드러나며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 방향성이 한층 선명해졌다.
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 차관은 올해 3월 중순 일자리연대가 주최한 '노동개혁,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경사노위 중심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고 진단하면서 "새로운 노사정 사회적 대화 틀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노사정 위원회를 전신으로 하는 경사노위의 사회적 협의 구조는 노사정 직접 협상 구조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민 정부 때에도 '노사개혁위원회'가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국민적 합의'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노사정위원회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노정(勞政)위원회도 사정(使政)위원회도 아닌 무용지물이 된 현행 경사노위 체제를 과감히 버리고 노사정이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대화 틀의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이 차관이 새롭게 합류한 노동부가 제도 개혁의 밑그림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익위원이 중심이 되고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이 차관의 복안이다. 공익 전문가들이 사회적 협의를 주도하고, 노사정 합의가 안 되더라도 공익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권고안을 제시하는 시스템이다. 이 차관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 의제 제안권을 갖도록 하고 논의 의제 채택은 노사정이 합의하도록 해서 원활한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난해 9월 김문수 위원장 취임 이후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 기능은 거의 멈춘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26일 정부의 주 52시간제 탄력 적용을 주제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김 위원장 등 4자 대표가 첫 간담회를 개최할 계획이었지만 가까스로 마련된 자리는 이정식 장관이 돌연 약속을 취소하며 무산됐다.
곧이어 발생한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은 경사노위 파행에 불을 붙였다. 6월 7일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하고 김동명 위원장이 대정부 투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의힘이 노동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회계장부 공개 요구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제화하는 근로기준법 등을 발의하며 호흡을 맞춰왔으나 한국노총에만 집중된 힘이 대통령 직속위원회까지 파국으로 몰고 가는 장면이 연출됐다.

한노총에 집중된 힘으로 노동 개혁 파국
상설 체제 개선해 새 대화틀 구축 주장도
국민의힘이 궁여지책으로 꺼내 든 것이 MZ 노조 참여 확대론이다. 하태경 의원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형태가 다양화하는 상황에서 대표성을 반영해서 새롭게 구성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자 김 위원장도 한국노총이 불참을 선언한 날 관변 노조 성격의 MZ 노조 단체 등을 언급하며 사회적 대화를 이어 나가겠다고 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 경사노위 근로자 대표 요건을 '전국적 규모의 총연합단체'에서 '청년·여성·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각각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는 경사노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성 노조를 대체할 참신한 청년 노조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양대 노총(주로 타깃은 민주노총)에 맞서 여론전을 펼친다는 것이 한국노총 출신의 국회의원이 3명이나 있는 정부·여당의 주요 전략이었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의원과 함께 한국노총 출신인 박대수 의원이 부위원장, 김형동 의원이 간사로 활동해 왔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변심으로 모든 개혁이 무산될 상황에 처했다.
반면 노조로부터 자유로운 이 차관의 입장은 원론에 충실해 보인다. 그는 전일 발표한 취임사에서 법치주의 확립에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것을 밝혔다. 법치를 바탕으로 국민들이 체감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먼저 도출해야 노동 개혁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경사노위 재구성은 제도 개혁의 한 측면으로 풀이된다. 경사노위는 현재 근로자위원 4명 중 2명은 한국노총 소속이고 나머지 2명도 한국노총이 추천한 인사다. 이 차관은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의제별 소위 구성에도 불참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 개혁 과제 공론화를 사실상 저지하는 역할을 펼쳐왔다"고 비판해 온 인사다.
노동계 안팎에서도 현행 경사노위의 체제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김 위원장 홀로 자문단과 연구회를 운영해 노동 개혁 쟁점 공론화를 추진하려고 해도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가는 데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동학계 한 전문가는 "노사 불참 시 공익위원이 의제를 강제로 조율하는 것과 동시에 공무원들이 놀면서 월급만 받아 가는 지금의 상설 체제를 비상설로 전환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