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부모'만 신생아 출생 신고 가능
의료계 '행정 부담·사고 책임 넘기지 말라'
출생신고 안 하면 사실상 '무적자' 취급돼

산부인과 병동 신생아실. 위 사진은 본문 기사와 무관함 /연합뉴스
산부인과 병동 신생아실. 위 사진은 본문 기사와 무관함 /연합뉴스

현행법상 신생아는 부모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 점을 악용해 영아를 살해·유기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영아 관리 체계의 '구멍'을 시급히 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아이가 태어나면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을 지자체에 알리도록 바꾸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 반대로 도입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은 전날 영아살해 혐의로 30대 여성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A씨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아기를 출산하고 곧바로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날 경기 화성시에서도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영아 사례가 확인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라진 아이의 친모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생후 한 달이 되지 않은 자녀를 넘겼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경찰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보고 경위를 파악 중이다.

해당 두 사례의 공통점은 범죄 사실이 초반에 드러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태어난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는 현행 출생신고 체계 때문이다. 신생아의 부모는 주민등록법상 출생 1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하지만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을 뿐이다.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은 행정 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지 않는다. 

수원 감사원 조사를 보면 지난 2015년부터 작년까지 8년간 출산 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는 2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성경제신문이 지난달 16일 보도한 ''병원이 출생 신고하라고?'···행정편의에 퇴행하는 출생신고제'를 보면 출생신고제가 도입되면 의료계에선 출생 통보를 의무로 지게 될 경우 의료기관에서 이를 위한 인력 보충과 행정적 부담을 지는 것은 물론 신고 과정에서 실수로 오류가 발생할 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반대 이유 중 하나다. 출산을 숨기고 싶어 하는 산모들이 병원에서의 분만을 기피하게 될 수도 있는데, 산모 및 신생아 건강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출생신고제에 대한 국민적 여론은 찬성 입장으로 쏠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월 27일부터 3월 13일까지 출생통보제 도입과 관련해 국민 4184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응답자의 87.4%인 3626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이유로는 △아동의 출생등록권리 보장(42.6%) △보건·의료·교육 등 아동 권리 보호(34.5%) △아동학대 예방(22.5%) 등이었다. 반면 △낙태 우려(32.5%) △비인가 시설 출산 증가(30%) △민간의료기관 신고 의무 부과 부당(29%) 등의 반대 의견도 있었다.

아동이 출생 등록될 권리는 유엔아동권리협약도 명시하고 있다. 이 협약 7조는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할 때부터 이름을 갖고 국적을 취득하며 가능한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행정부담과 시스템상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 등을 들며 반대하고 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4월 17일 성명을 통해 "아동보호를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의료기관에 떠넘기는 것이 기막히고 국가의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정부는 의료계와 출생통보제 도입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출생 통보에 대해 수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 등록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라며 "의료계를 계속 설득하면서 의료계가 행정적으로 최대한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역 당국이 아동의 필수 예방접종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유령 아동' 발굴이나 아동학대 예방에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정보가 지자체에 통보돼 활용으로 이어지는 체계는 미진하다. 정부는 지난 4월 발표한 대책에서 필수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거나 최근 1년간 의료기관 진료를 하지 않은 만 2세 이하 아동 약 1만1000 명에 대해 석 달간 집중 전수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늦은 감이 없지 않은 데다 상시 조사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감사원은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주민등록번호 없이도 반드시 맞아야 하는 B형간염 백신 접종 정보와 의료기관의 정산 청구 정보를 통해 출산 후 미신고 영아 2000여 명을 파악했는데, 담당 부처인 질병관리청이 이를 알아내 조치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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