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시설 아닌 요양기관에 간호법 적용
지방 요양시설 간호사 구인난 문 닫아야
시설 운영자, 간호사 보조로 전락할 수도

간호법 제정을 두고 간호계와 의료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로 이송된 간호법은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안을 두고 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간호사협회는 법안 취지가 보건의료체계 재정비라고 주장한다. 의사 및 간호조무사협회는 타 직역의 영역 침범이라 맞섰다. 직역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면서 정작 의료계의 본질적인 문제인 낮은 의료수가는 뒷전으로 밀렸다. 여성경제신문은 깐깐한 팩트 체크 코너를 통해 간호법의 본질적인 쟁점을 살펴보고 법 제정안 방향성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① 간호법에 문 닫는 요양원 속출···'지역사회'가 불러온 나비효과
② 400만 보건의료계 한 목소리···"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 침해"
③ 의사 의료행위 침범···병상의 질 낮아지고 환자만 손해
④ 낮은 의료수가의 악순환···"법 제정보단 현장부터 봐야"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싸고 직역 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도 거부권 행사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 4일 정부로 이송된 간호법을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 53조에 따라 15일 이내에 국무회의를 열어 공포하거나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간호법 제정으로 유탄을 맞게 된 건 요양시설이다. 요양시설 측에선 간호법이 발효되면 전국의 요양시설 상당수가 간호사 구인난으로 문을 닫거나 경영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1일 여성경제신문이 간호계와 보건계 등 주장을 검토한 결과 요양시설 업계의 주장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걸로 분석됐다.

'지역사회' 문구···장기노인요양원 겨냥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수정된 간호법 제정안 제1조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법안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즉 '지역사회' 문구가 포함되면서 노인요양 시설과 같은 장기요양기관에 간호계의 입김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역사회 문구가 장기요양기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또 제정안은 동시에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시하고 있다. 제12조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하여 업무를 수행"하며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정해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지도하에 환자 요양을 위한 간호 및 진료 보조를 수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간호법안에는 지역사회에서 간호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결과 비의료기관인 장기요양기관도 간호계의 입김이 작용할 전망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갈무리
간호법안에는 지역사회에서 간호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결과 비의료기관인 장기요양기관도 간호계의 입김이 작용할 전망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갈무리

결과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을 제외한 요양시설 등에선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해야 하며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지역사회까지 해당 내용이 적용된다. 윤석찬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법상 의료인만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며 "비의료인인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인 간호사의 보조를 통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의 요양시설이 간호조무사를 고용하자면 간호사를 별도로 채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장기요양원은 의료기관이 아니다. 장기요양기관 중 의료법 적용을 받아 자체적으로 직원을 고용할 수 있는 요양병원과는 다르다. 아울러 요양원은 노인복지법에 따라 고용해야 하는 직원의 수가 정해졌다. 현재 30명 미만 10명 이상인 요양원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를 1명 배치해야 하는데 간호사 없는 요양원이 대략 60%에 달한다.

간호사 없는 요양원 60%···의무 고용?
30인 이하 요양원 '상왕' 모시기 부담

보건복지부의 2021년 장기요양기관 시설 종사자 현황을 살펴보면 간호인력 대부분이 간호조무사다. 간호사가 없는 요양원이 대략 60%에 달할 것으로 파악된다. /보건복지부,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보건복지부의 2021년 장기요양기관 시설 종사자 현황을 살펴보면 간호인력 대부분이 간호조무사다. 간호사가 없는 요양원이 대략 60%에 달할 것으로 파악된다. /보건복지부,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정부 통계에선 요양원 전체 입소자 정원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본지가 충청북도 공식 홈페이지를 점검한 결과 지난해 말 입소자가 30명 이하인 요양원은 127개 기관이었다. 이는 전체의 절반 이상인 56.4%에 달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국내 요양원의 상당수가 간호사 없이 간호조무사만 고용해도 되는 입소 정원 30명 미만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요양원 10개소 중 4개소만이 간호사 1명을 고용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2021년 요양원에서 근무한 간호사는 1594명이었으며 당시 요양원은 총 4057개소였다. 반면 2021년 요양원에서 근무한 간호조무사는 9295명으로 간호사 인력의 6배에 달했다.

법 적용례에 따라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상위에 해당하는 간호법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30명 미만의 입소자를 지닌 요양원의 경우 기존 간호조무사를 고용하기 위해선 간호사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장기요양기관 관계자는 "요양원의 경우 업무 강도는 높은데 처우는 좋지 않으니 간호사가 기피한다"며 "실질적으로 간호사의 업무를 대체하는 게 간호조무사"라고 밝혔다.

나아가 장기요양기관시설의 시설장도 간호사 보조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라 5년 이상 근무하고 일정 교육을 이수한 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 등은 장기요양기관시설을 운영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간호법이 발효되면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 출신 시설장도 법상 간호사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경영 혼란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얘기다.

경기도 A 요양원 원장은 "간호사 측에선 요양원에서도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 대신 전문교육을 받은 간호사의 돌봄을 받도록 하는 게 시설 이용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돌봄 수가를 그대로 두고 고임금 간호사를 어떻게 채용하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그나마 수도권은 좀 낫지만 지방에선 간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간호사를 모셔 오자면 대우를 높여줘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소장은 "궁극적인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선 간호법보다는 낮은 의료수가 개선이 필요하다"며 "간호법이 입법되기 전 의료수가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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