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핵잠수함 정기 기항 큰 선물이지만
나토식 핵 공유, 독자 핵 개발론이 족쇄
비확산 원칙···미국의 역린 건들면 낭패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6일 워싱턴 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국가를 경청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6일 워싱턴 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국가를 경청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대한 공조가 미국 전략 핵무기의 한국 영내 기항(寄港)을 불렀다. 말로만 앞선 핵무장론보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노선에 충실한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는 진단이다.

28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 양국 외교·안보 라인 사이 '핵 공유'를 둘러싼 공방이 오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언급하자, 에드가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사실상의 핵 공유로 보지 않는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나토식 핵 공유'는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배치해 유사시 각각의 회원국이 운용하도록 한 전략이다. 냉전 시대 소련으로부터 미국 본토가 핵 공격을 받을 위협으로 인해 핵우산이 작동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미국은 1966년 핵 기획그룹(NPG: Nuclear Planning Group)을 결성했다. 이에 따라 △미국 핵무기의 나토 회원국 역내 배치 △나토 국가 항공기를 이용한 미 핵무기 투사 △NPG를 통한 핵전략과 운용 등을 명문화한 것이다.

반면 이번 한미 정상 간 워싱턴 선언에는 이 같은 핵 공유 개념이 포함되지 않았다. 다른 이름의 핵 협의그룹(NCG: Nuclear Consultative Group)은 정보 공유 확대를 통한 확장 억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한다는 확장억제 개념에 핵(nuclear)을 새롭게 포함하는 것은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 논의됐던 것이다.

다만 한미 정상 간의 합의로 공식화하면서 핵무기의 전진 배치가 이뤄진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공동 선언문에서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이 한국의 영토에 정례적으로 기항하는 것이 '핵무기' 개념으로 확장된 억제력의 가시성을 한층 증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폭격기나 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로 발사하는 킬로t급의 전술핵을 줄이는 추세다. 반면 ICBM이나 SLBM에 장착하는 메가t급 전략핵 중심으로 핵무기를 실전배치하고 있다. 독일·이탈리아·벨기에·터키 등 나토 회원국과 공유하는 미국의 전술핵은 500여 발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워싱턴 선언에 맞춰 미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공개한 괌 해군기지에 입항한 전략핵잠수함 'SSBN 741'호 /미 태평양함대사령부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워싱턴 선언에 맞춰 미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공개한 괌 해군기지에 입항한 전략핵잠수함 'SSBN 741'호 /미 태평양함대사령부

대통령 참모들 나토식에 집착한 흔적 
전략잠수함 기항 사실상 核배치 효과
핵 포함 한미상호방위조약 Upgrade

대통령실에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이러한 나토식 핵 공유 주장을 펼쳐온 인사다. 한국 공군 F-35 전폭기에 전술핵 탑재가 가능하도록 개조하자는 옛날 교과서에 머물러 있다. 이 같은 방식의 핵 공유는 나토 특수 케이스일 뿐 아니라 북한의(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원칙에 배치된다. 과거 한국도 1950년대부터 주한미군 소속으로 다양한 형태의 전술핵이 배치됐고 가장 많을 때는 1970년대에 약 700발이나 되기도 했다.

NPT 원칙을 고수한 한국은 이번 정상 회담에도 미국의 전략핵잠수함(SSBN)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기항시키는 선물을 얻어냈다. 미군의 최종병기로 알려진 SSBN은 길이 약 170m, 폭 13m, 무게 약 1만 8000t으로 20여 개의 트라이던트-Ⅱ 미사일 발사 장치가 있다. 트라이던트 미사일은 전략 핵탄두, 소형전술핵, 수소폭탄 등 다양한 형태의 핵 투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단 한 척만으로도 핵폭탄 160발까지 발사해 북한 전역을 초토화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정상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전술핵보다 강한 전략핵무기의 영내 배치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스스로도 "핵을 포함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업그레이드"라고 강조했다. 자체 핵 개발에 나섰다면 NPT를 탈퇴해야 하는데, 이는 김정은이 바라는 대로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는 것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미국 원자력법 123조는 미국의 원자력 기술을 사용하는 나라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하려면 미 정부와 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1974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과 1975년 가입한 NPT에 따라 미국 동의 없이는 재처리와 농축을 할 수 없는 국가로 분류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산 원자로 수출을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을 승인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자력협정을 뒤집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같은 비핵화의 상징적인 나라가 NPT를 탈퇴하면 빈 산말의 사우디아라비아, 에르도안의 터키 등 반미 독재 정권의 연쇄 핵무장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였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전체 무게의 약 1%에 달하는 플루토늄을 회수해 핵연료로 만들고 남은 5% 부피의 고준위폐기물은 영구처분장에 보관할 수 있다. 재처리를 통해 얻은 플루토늄은 순도가 높아 원자탄으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이론적으로 플루토늄 8㎏, 우라늄 25㎏ 정도가 있으면 누구든 TNT 20㏏ 위력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 모습. 가로 8분의 1 세로 12분의 1로 축약한 모형이다. /이상헌 기자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 모습. 가로 8분의 1 세로 12분의 1로 축약한 모형이다. /이상헌 기자

공동성명에 담긴 이집트 수주 경고문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위기 증폭
탈원전 함께 핵확산도 반미노선 간주

결국 재처리를 통한 핵무기 독자 개발은 비핵화의 모든 옵션이 고갈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NPT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체결국은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대한 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을 경우에는 탈퇴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보 공유를 확대하는 것만으로 한국엔 큰 선물이 될 수 있어 보인다"며 "양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NCG를 핵 공유 개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국제 핵 비확산 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은 워싱턴 선언에만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 채택된 한미 공동성명에는 "양 정상이 각국의 수출 통제 규정과 지식재산권을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세계적 민간 원자력 협력에 참여하기로 약속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본지는 앞서 [소형원자로 전쟁] ⑥ 한수원 이집트 원전 수주···美 역린 건드렸나 편을 통해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의 위기를 다룬 바 있다. 올해 초 미국 에너지부(DOE)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입찰 관련 정보 신고를 반려 조치한 것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해 8월 러시아 로사톰(Rosatom)의 자회사 ASE JSC가 참가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공사를 수주한 것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IAEA 추가의정서는 한국과 미국이 IAEA로부터 핵물질 감시를 받지 않는 나라, 즉 핵무기 전용 우려가 있는 국가엔 원전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내용이다. 현재 가입국은 140여 개국으로 이집트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가입국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부터의 탈출에만 급급한 현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원자력을 에너지 안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보는 동시에 탈원전과 함께 핵무장도 반미 노선으로 간주한다. 에너지전환포럼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우라늄 농축 권한을 공공연히 주창해 온 사우디는 추가의정서 가입을 거부해 왔고, 미국은 핵확산 위험 때문에 사우디와의 원자력협정 체결을 불허해 왔다"며 "이번 성명으로 인해 한국이 지난 15년간 추진해 온 사우디 원전 수출은 사실상 금지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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