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이집트 IAEA 추가의정 미가입 확인
이집트·사우디 핵무기 개발 우려국 분류
폴란드 40조원 공사 단독 수주 발표 이어
체코 수출 승인 반려 조치 통한 간접 경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전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나 석탄·천연가스 발전만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건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좇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원자력 발전은 청정 에너지이지만 '후쿠시마'라는 트라우마가 늘 따라다닌다. 청정 에너지와 안전이란 평행선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인류에 새 가능성이 열렸다. 바로 '소형 원자로(SMR)'다. SMR은 작은 용기 안에 원자로와 냉각기를 일체형으로 넣은 발전 시스템이다. 일체형이어서 폭발 위험성이 제로에 가깝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도 소형이어서 피해는 제한적이다. 원전 선진국인 한국은 일찌감치 SMR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탈원전' 도그마에 빠져 수년을 허송했다. 그 사이 미국·중국·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앞다퉈 SMR 개발과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늦었지만 한국에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원전 건설이나 운영 경험을 많이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이 본격화되는 소형 원자로 전쟁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한국의 가능성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①탄소중립 시대, 소형원자로가 답이다 
②한국형원자로 vs 소형원자로 뭐가 다르길래? 
③"SMR 정쟁 대상 아냐" 국회도 한목소리
④韓·美 공동수출 약속하고···폴란드·체코 충돌
⑤파이로프로세싱 논쟁 본격화···尹 선택은?
⑥한수원 이집트 원전 수주···美 역린 건드렸나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에서 제66차 총회가 열렸다. /IAEA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에서 제66차 총회가 열렸다. /IAEA

한국이 3세대 원자로 수출 전선에서 미국이란 최대 복병을 만났다. 탈원전 후유증 탈출이 다급했던 나머지 핵무기 개발 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이집트 알다바 원자력 발전소 건설공사를 따낸 것이 미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실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국내 원자력 업계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40조원대 원전 시장을 웨스팅하우스가 집어삼킨 데 이어 한수원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입찰 관련 정보 신고를 미국 에너지부(DOE)가 반려 조치하면서 한국 정부가 장기간 공을 들여온 체코 수출마저 위협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월 19일 한국수력원자력에 "수출 신고서는 미국기업(US persons)이 제출해야 한다"고 답신을 보냈다.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의 원천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IP)을 주장하는 웨스팅하우스와 합의를 먼저 요구한 것이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원자로를 수출할 때 미국 승인을 받을 필요는 없다. 또 공동 수출의 경우 웨스팅하우스 쪽에서 신고하면 이번 같은 분란이 일어날 소지도 없다. 하지만 체코 원전사업의 발주처 체코전력공사(CEZ)가 복수 형태가 아닌 한 곳의 사업자를 택하겠다는 원칙을 발표하면서 갈등이 예고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수면 위로 떠오른 이번 갈등은 웨스팅하우스가 지난해 10월 21일 한수원과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미국 컬럼비아특별구 연방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본격화됐다. 이에 한수원과 한전이 25일 대한상사중재원(KCAB)에 중재를 신청해 소송과 중재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선 미국 내 소송보다 중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크 원전 수출 당시 한국전력과 웨스팅하우스가 맺은 원전 기술 라이선스 계약엔 두 회사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KCAB 중재로 해결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는 것.

물론 중재로만 가면 한국이 유리하다. 그러나 이런 법적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상호 보완성을 해치면서 수주가 지연되고 입찰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단지 수출리스크 만으로 해석되기 어려운 경제안보 문제와 맞물린 것이 이번 사태의 특징이다.

러 로사톰과 손잡은 2달 만에 소송장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최대 위기
한수원 "DOE 신고 대상 아니라 판단"

한국형 원자로 APR1400(또는 APR1000)은 국내 기술 주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델이다. 기술 자립이 100% 완료됐기 때문에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당시 한국형 원자로라는 수식이 붙었다. APR1400과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은 설비용량이 1400MW과 1000MW라는 점 정도가 차이다. 둘 다 자연재해 등으로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겨도 핵연료나 방사능 유출을 막을 수 있는 3세대 원자로다.

프랑스와 중국 역시 미국의 노형을 활용했지만, 특허나 지식재산권 문제 없이 독자적인 수출을 하고 있다. 한국전력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수출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2017년 한국이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수출을 추진할 때도 지식재산권 논란이 일었지만 말 그대로 논란일 뿐이었다.

얼핏 보면 미국 정부가 사전 절차부터 딴지를 건 것은 강력한 경쟁자인 한국의 기를 꺾기 위한 시도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이 SMR 선두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에너지안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떠오른 점을 따져보지 않으면 미국의 갑작스런 제재 조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한수원은 지난해 8월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Rosatom)의 자회사 ASE JSC가 참가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공사를 수주했다. 탈원전 후유증에서 벗어나고자 UAE 바라카 원전 사막 공사 경험을 앞세워 부랴부랴 체결된 건설 공사에 불과하지만 미국 정부 입장에선 승인할 수 없는 수출을 감행한 것이다. 

반면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핀란드 등 서방진영 국가들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며 기존의 원전 도입 계약을 파기하는 추세다. 특히 한국은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국가를 제외한 해외에서 핵 관련 사업을 수행하거나 미국 기술이 적용된 기술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미국 에너지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여기 더해 2021년 5월 21일 문재인-바이든 대통령 간 한미 정상 합의에 따라 '원전 수출 조건으로서 수입국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 참가국으로만 원전을 수출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나 본지 확인 결과 2022년 기준 이집트는 추가의정서 참가국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IAEA 추가의정서는 한국과 미국이 IAEA로부터 핵물질 감시를 받지 않는 나라, 즉 핵무기 전용 우려가 있는 국가엔 원전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내용이다. 현재 IAEA 추가의정서 가입국은 140여 개국이며 이집트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가입국이다.

다시 말해 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는 핵무기 개발 우려가 있는 이집트의 '핵 관련 사업'에 입찰하기 전 미국 에너지부에 신고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담당 부서에서 2차측 터빈 아일랜드(Turbine Island)는 승인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신고 없이 수출이 진행됐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주단소재 보관장을 시찰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주단소재 보관장을 시찰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 고위급위원회 통한 조율 카드 남아
경쟁보다 공동수주 우선순위 둘 필요

지난해 5월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원전 협력 의지를 다졌다. 또 보름 뒤엔 웨스팅하우스 사장단이 한국을 깜짝 방문해 한수원 등 국내 원전 업계와 회동하고 해외 시장 공동 진출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으나 8월 이집트 원전 수주 이후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는 폴란드 정부는 웨스팅하우스가 소송을 제기한 당일인 10월 21일 원전 프로젝트 사업자로 미국 업체를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뒤 10월 28일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단독 입찰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미연방법원에 한수원이 APR1400의 기술 정보를 타국과 공유하는 것을 금지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미국의 동의 없는 한국의 수출을 제한해 달라"는 것이 소송의 골자다. 폴란드와 체코를 본보기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우라늄 농축 규정 완화 뒷거래 의혹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로의 기술 수출에도 제동을 건 것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폴란드 원전을 단독 수주하고 소송을 걸어온 것도 이집트 원전을 수주한 두 달 뒤다. 원자력계 한 인사는 "주기기가 아닌 건설공사를 따낸 것일지라도 로사톰과 손잡은 것이 미국의 역린을 건드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더 큰 문제는 한국형 원자로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장기 에너지수급 전망에 따르면 향후 10여 년간 글로벌 신규 원전 건설은 최대 5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비중이 확대될 재생에너지 보완을 위해 원전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2040년까지 209GW~364GW 규모의 원전 증설이 필요할 전망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원전 건설에 약 10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2040년 설비용량 목표 충족을 위해서는 2033년까지 매년 19~33GW의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이는 원전 건설의 전성기였던 70년대(연간 26.5GW)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당장 IAEA 추가의정서 가입국인 폴란드와 체코에서 한미 공동수출이 실패한 것은 뼈아픈 부분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도 취임 이후 줄곧 한미 공동 수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국내 원자력계가 수출 후보로 공을 들여온 나라는 의정서 미가입국이 많다. 

한편에선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1978년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 사고 이후 40여 년간 원전 건설이 전무하다시피 해 세계 최고의 시공력을 가진 한국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특허 괴물'이란 국수주의 논리로 맞서다가는 APR1400이란 이름이 붙은 한국형 원자로 수출은 점점 더 멀어질 전망이다.

탈원전에 발목이 묶여 4년간 방치된 한미원자력고위급위원회(HLBC) 전체회의는 새로운 양국 간 갈등에 휘말려 또 다시 멈춰선 상황이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한미 기업이 정부의 도움을 얻어 각각 수출을 집중할 국가군을 나누고, 비주력 국가에 대해서는 서로 상대를 지원한다면 윈윈하는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며 "HLBC 한 분과인 '원자력 수출 진흥 및 수출통제 협력 기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