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과잉공급 초래해 대선에서 낙선
인플레 방어 위해 2억 배럴 방출한 바이든
지금보다 유가 낮을수록 유리하다는 판단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알래스카 유전개발 사업을 재개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 유가는 7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자칫 코로나19 직후와 유사한 저유가 시대가 올 수도 있지만 바이든은 자신의 대선 공약을 깨고 증산의 길로 들어섰다.
17일 미국 행정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알래스카주 테섹푸크 호수 인근 국립석유보호구역(NPR)에 대한 대규모 유전 개발 사업인 '윌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알래스카 NPR는 '환경 민감지역'(ESA)에 속하는 지역인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6월 전체의 약 82%에 달하는 1086만에이커(약 7만5600㎢)에서 원유 시추를 허용하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해당 지역에선 20년간 하루 최대 50만 배럴의 원유를 추가 생산할 수 있다. 셰일 혁명에 편승해 미국 내 화석연료 생산량을 늘리려 중동 의존을 낮추려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초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수요 급감이 우려되는 시기에도 과잉공급을 초래하는 정책을 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가 데이터를 보면,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20년 3~4월 당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10~20달러에 거래됐다. WTI가 배럴당 10~20달러의 저유가에 머물면 손익분기점이 40~50달러(남부 지역은 35달러)인 미국 셰일산업은 직격타를 입는 구조다. 경제적 타격은 표심으로 이어진다. 그해 대선에서 북부와 해안가 도시 지역 중심으로 민주당 우세 현상이 심화된 반면 공화당 우세 지역인 텍사스마저 흔들리면서 트럼프는 낙선했다.
당선된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초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정반대로 셰일의 공급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바이든도 유전 탐사기업 코노코필립스사가 NPR 내에서 80억 달러(약 10조4696억원)를 들여 30년간 6억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 하루 원유 생산량 중 약 1.6%인 18만 배럴이 알래스카에서 추가로 생산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고유가가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작용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지난해 동안 2억 배럴에 가까운 전략비축유(SPR)를 방출해 왔다. 미국 SPR 재고는 2021년 말 5억 4900만 배럴에서 지난해 말 3억 7200만 배럴로 1년여 만에 37% 감소했다.
미국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 해안선에 위치한 거대한 지하 소금 동굴에 저장되는 SPR 최대 비축량은 7억 1400만 배럴인데 현재 절반만 남은 셈이다. 알래스카 개발로 추가될 일산(日産) 2000만 배럴은 전쟁과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그동안 쏟아부은 것에 비해선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미국 정부가 그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아니겠느냐는 진단이 나온다.
미국 WTI 손익분기는 배럴당 40달러
더 낮아지면 셰일 에너지 산업 타격
2억 배럴 싸게 채우려면 증산 더 필요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코로나 때 움츠러들었던 수요가 살아나면서 2021년 말까지 60달러 중반을 형성하던 WTI 가격은 지난해 120달러 대까지 치솟았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지난해 방출 규모의 3분의 1 수준인 6000만 배럴을 올해 2월부터 순차적으로 재비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계획에 맞추려면 현재의 60~70달러 대보다 장기적으로 유가가 더 낮은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에 적대적인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올해 말까지 감산 합의를 고수할 것이란 전망도 알래스카 개발 계획 승인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증산의 저주'를 경험한 미국 셰일업계가 생산량 늘리기를 주저하는 것도 바이든이 알래스카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으로 보인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미국 셰일업계는 2010~2019년 약 1조1000억 달러(약 1418조원)를 투자했지만, 결과적으로 3000억 달러(약 387조원) 손실을 봤다. 이에 더해 코로나19로 수요가 급격히 침체하며 줄줄이 파산을 경험했다.
결국 살아남은 업체들은 생산과 투자 증대를 통한 성장에 집중했던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안정적 현금 흐름과 고배당, 건전한 재무 구조를 유지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결과 바이든 집권기 미국 셰일 회사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지난 20년간의 총액보다 더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이러한 여유자금과 국내외적 요건을 고려해 유전을 개발하려 해도 반대는 여전히 거세다. 알래스카 일대는 삼림순록과 회색곰, 늑대, 아비새 등의 서식지이자 철새인 기러기의 번식지이기도 하다. 개발 대상에 포함된 테섹푸크 호수는 철새와 카리부(북미산 순록)가 많기로 유명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하자마자 환경단체들은 화석연료 시대로 회귀하는 '탄소폭탄 프로젝트'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땅에서 더 이상 석유를 시추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파기하면서 2억 8000만t의 탄소가 추가로 배출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환경단체들은 환경 재앙이 될 것이라며 ‘윌로 중단’(#stopwillow) 등의 해시태그를 소셜미디어에 확산시키며 법적 투쟁을 예고했다. ‘어스저스티스’의 애비게일 딜런은 “바이든 행정부를 법정에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내무부는 이런 비판을 의식해 NPR 내 1300만 에이커(5만 2609㎢)를 야생동물보호 등을 위한 특별구역으로 지정해 석유 시추를 금지하고 인근 북극해의 280만 에이커에 대해서는 석유·가스 개발을 위한 부지 임대도 무기한 금지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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