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보상받았던 포스코가 제3자 입장?
尹 일본기업 참가 바라지만 분위기 냉랭
한국이 전부 배상하겠단 말 기다리는 듯

일본 동경에 위치한 경제단체연합회 빌딩(왼쪽)과 한국의 FKI 타워. /각 단체
일본 동경에 위치한 경제단체연합회 빌딩(왼쪽)과 한국의 FKI 타워. /각 단체

한국 정부가 일제강점기 전범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금과 관련해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양보안'을 내면서 한일 관계가 급진전하는 모습이지만, 실질적인 사업 추진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미래청년기금(가칭) 마련을 둘러싼 한일 정부 간 메시지부터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전범 기업이 아니라도 일반 기업이 참여하면 '제3자 변제의 명분'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정작 일본 정부 분위기는 냉랭하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역대 내각의 인식을 계승하겠다"고 화답하면서도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국 지정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취하를 실무적인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반면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는 "분쟁 해결 절차 처리가 아니라 협상을 위한 잠정 중지"라고 맞서면서 첫 단추부터 채우지 못하는 모양새다.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한 기금 마련의 핵심 연결고리 역할을 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의 핫(Hot)라인도 끊어져 있는 상황이다. 통상 전경련과 경단련은 직원 1명씩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이어왔는데 현재 한국 측에 파견된 요원이 부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자리가 비어 있어 경단련이 파견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안다"며 "일본에는 우리 측 직원이 가 있다"고 말했다.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정부 입장 발표를 보면 행정안전부 산하 지원재단으로 하여금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 원고에게 '손해배상 및 피해구제' 차원에서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국내기업이 '대위변제'한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제3자라기보단 피해자 입장에서 보상을 받은 기업이 민간인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론 포스코를 비롯해 한국도로공사, 코레일, 하나금융그룹(외환은행), 한국전력공사, KT, KT&G, 한국수자원공사 등 16곳 기업의 자발적 출연을 통해 300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한·일 간 외교가 장기간 멈춘 상황에서 시간을 끄느니 매듭을 짓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빠른 결단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진행하기엔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배상금 지급 대상 15인서 더 늘어날 전망
非 전범 기업 미래재단 출연할 명분 부족
전경련-경단련 메시지도 '경제협력' 한정

전경련과 경단련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일단 긍정적이다.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은 "일·한 관계의 건전화를 위한 큰 진전"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의 전경련도 환영 성명을 통해 "경제계도 이번 합의정신에 따라 한·일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두 단체는 "경제교류 강화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기금 마련 계획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떤 기업이 어떤 형태로 참여할지가 미지수인 데다 양국 정부에서 나오는 메시지도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윤석열 정부가 가장 기대를 거는 기업이다.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 정부가 한국에 지급한 3억 달러 중 3000만 달러가 포항제철을 설립하는 비용으로 투입된 만큼 변상금 지급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경련 입장에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4대그룹과 함께 전경련 회원사에서 탈퇴한 기업이다. 반면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은 경단련에 소속돼 민간차원의 BSR(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교류를 펼쳐온 주요 회원사다.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안을 공식 발표한 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안을 공식 발표한 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참여가 어려운 것을 전제로 이번 해법을 마련했다. 그러면서도 경단련 회원사인 일반 기업의 참여를 내심 바라는 눈치다. 결국 "일본의 완승"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호응엔 미온적인 일본 정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기업이 모든 배상을 책임지는 구조다.

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의 확고한 입장이다. 또 현재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피해자는 총 15명이지만 다수의 소송이 대법원에 확정판결을 앞둔 터라 그 수가 얼마나 늘어날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일반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1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인에 대한 강제징용도 문제지만, 약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인에 대한 법적 배상 문제로 확전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가장 큰 부담"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이란 해법의 물꼬를 텄지만, 앞으로도 고려해야 할 외교적 변수가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