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D, CPR 병행하면 생존률 3배↑
관광지에도 AED 의무 설치 필요

이태원1동 주민센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소화기가 외부 벽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동심장충격기는 건물 1층 민원실 안쪽에 구비돼 있었다. /오지운 인턴기자
이태원1동 주민센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소화기가 외부 벽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동심장충격기는 건물 1층 민원실 안쪽에 구비돼 있었다. /오지운 인턴기자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심정지 환자가 속출했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요원과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이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했지만 회생에 실패한 환자가 많았다. CPR과 함께 자동심장충격기(AED)가 함께 사용됐어야 했는데 현장에 AED가 없어 희생자가 많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규정상 이태원과 같은 관광지는 AED 의무 설치 장소가 아니다. 게다가 그나마 설치된 AED도 주변 건물 내부에 있어 운영시간 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전문가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는 상시로 AED를 배치해 누구라도 지체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31일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이태원 압사, 턱없이 부족했던 자동심장충격기 AED 빠른 보급 체계 및 의무 설치 범위 확대에 관한 청원' 글이 공개됐다. 작성자 윤모씨는 참사 당시 이태원 현장에서 숨을 쉬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했지만, 구조대가 30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고 당시 상황을 글에 묘사했다.

윤씨는 이 청원에서 "골든 타임 4분 이내에 CPR과 AED를 동시에 수행하면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약 3배가량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소생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 AED가 마련되어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윤씨는 설치 지침상 가장 가까운 AED 보관 장소였던 이태원역과 파출소는 참사 현장에서 접근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CPR을 돕던 사람들은 근처 어디에서도 AED를 보급받을 수 없었다.

윤씨는 청원글을 통해 관광지와 같이 일정 인구밀도가 넘는 곳에도 AED가 설치될 수 있도록 설치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대규모 응급상황 시 보다 빠르게 AED가 현장에 보급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47조의2(심폐소생을 위한 응급장비의 구비 등의 의무)에 따르면 관광지는 AED 등 응급장비 의무 설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태원은 서울시에서 최초로 지정된 관광특구지만 AED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참사 현장 100m 반경에 AED 없어
"건물 안에 있지만 문 잠기면 못써"

서울보광초등학교는 본관 1층 벽에 AED를 설치해놓았다. 하지만 주말에는 학교 정문과 건물이 모두 잠겨 출입할 수 없다. /오지운 인턴기자
서울보광초등학교는 본관 1층 벽에 AED를 설치해놓았다. 하지만 주말에는 학교 정문과 건물이 모두 잠겨 출입할 수 없다. /오지운 인턴기자

미국 심장 협회 신문에 따르면, 심정지 환자의 100m 이내에서 AED가 보급돼야 제세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참사 현장에는 AED의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AED가 반경 100m 밖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뿐더러 AED가 구비돼있는 건물 문이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 취재 결과 가장 가까운 AED는 약 150m 거리에 위치한 이태원역과 파출소에 있었다. 두 곳을 제외하고 500m 이내에 AED가 설치된 장소는 총 네 곳으로 이태원1동 주민센터(370m), 보광초등학교(430m), 그리고 용산구청과 용산구보건소(480m)가 있다. 하지만 네 곳 모두 주말에는 건물 문이 닫혀 이번 현장에서는 한 대도 활용되지 못했다.

대부분 AED가 실내에 설치돼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발생한 사고에 즉각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이효철 호남대학교 사회융합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거리에 AED가 설치되지 못하는 이유는 고가 장비의 관리 차원에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AED는 온도에 취약하기 때문에 외부 보관에 주의가 필요하다. AED 및 심장 관리 제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카디오 파트너스에 따르면 AED는 0~50℃ 사이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 온도를 벗어나는 곳에 보관하는 것을 지양하라고 권고한다.

이 교수는 "하지만 다중이용시설과 공공기관에 AED가 설치돼있어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면 문제"라며 "공휴일이나 공공행정기관의 운영 시간 외에도 정부, 학교, 민간 차원의 '3박자 거버넌스'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박자 거버넌스'는 학교에서 CPR과 AED 사용법을 교육하고, 정부는 공공기관을 관리, 민간에서는 안전관리 모니터링 봉사단 등과 협약을 맺어 의료 장비를 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정보제공' 앱을 통해 근거리에 있는 자동심장충격기를 안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까운 응급실과 응급처치요령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긴급 환자에 대한 신속한 조치를 위해 이 앱에 대한 대국민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