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2시간 전 같은 상황 예고
한 여성 지휘에 병목현상 해결
이태원 골목 인원 통제 없어

29일 오후 10시 15분께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에서 인파가 몰려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오지운 인턴기자
29일 오후 10시 15분께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에서 인파가 몰려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오지운 인턴기자

15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 사전 대처가 미흡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건 몇 시간 전부터 불길한 조짐이 있었으며, 사실상 한두 명의 통솔로도 혼잡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1일 서울시청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여성경제신문 취재진은 현장에서 사람 구조를 도왔던 30대 남성을 만났다.

제주도 이호에 사는 전직 군인 김정도 씨는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다. 사고 전에 이미 골목에서 병목현상을 겪었던 김 씨는 우려스러운 마음에 "오늘 아무 사고 없기를"이라는 문구를 오후 9시 6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하지만 사고를 예견했던 것일까. 그날 저녁 많은 젊은이가 유명을 달리했다.

김씨는 "이미 전조현상이 있었다. 인파가 몰려 사고가 나겠다 싶어서 밀지 말라고 소리치는 한 여성의 목덜미를 잡아 올려 구했다. 무릎이 전부 까져있던 그 여성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사고가 나기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김씨는 "경찰이 각자 포지션이 있었을 테니 탓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골목 앞에서 경찰 2명씩만 골목에 유입되는 사람들을 막았더라면 어땠을까"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참사 당일 같은 장소에서 저녁 7시 30분께 병목현상이 발생했지만 한 시민의 통솔로 정체가 해소됐다. /틱톡 영상
참사 당일 같은 장소에서 저녁 7시 30분께 병목현상이 발생했지만 한 시민의 통솔로 정체가 해소됐다. /틱톡 영상

실제로 김정도 씨의 발언대로 당일 사고가 나기 두 시간 전, 한 시민의 통솔로 꽉 막혀있던 골목의 정체가 해결된 것을 SNS '틱톡'(TikTok)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여성분 덕분에 집 갔어요. 감사해요'라는 제목의 영상은 29일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에 촬영됐으며 장소는 참사가 일어난 골목과 동일했다. 

영상에서 한 여성이 큰 목소리로 "올라오실 분 대기하시고 내려가실 분 먼저 이동하세요. 뒤에 꽉 막혀있으니까 못 올라온다고 앞으로 전달해주세요"라고 소리치며 인파를 통솔했다. 손짓하는 여성의 지휘를 본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골목 아래쪽 인파가 정리되며 정체가 풀렸다.

시민 한 명의 지휘로도 골목 정체가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일 이태원 일대에 투입된 137명의 경찰 인력은 통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올해 코로나19 이후 첫 노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경찰은 이태원 일대에 1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수사 50명, 교통 26명, 지역 경찰 32명 등 총 137명의 경찰 인력이 이태원 일대에 투입됐다고 알려졌다. 이는 3년 전 '한 방향 통행'으로 골목을 통제한 경찰 인력 39명보다 3배 이상 많은 인력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민의 증언에 따르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면피성 발언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31일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가 설치돼 많은 시민들이 방문해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오지운 인턴기자
31일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가 설치돼 많은 시민들이 방문해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오지운 인턴기자

참사 추모를 위해 시청 광장을 찾은 22살 변모 씨는 "당일 이태원에 방문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쪽으로는 안 들어갔다. 예전에 갔을 때는 일방통행이었던 게 기억나는데 이번에는 많이 엉켜 있어서 아예 못 들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분향소에서 헌화를 하고 나온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당시 참사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 소방청, 경찰청 등에서 미리 충분히 준비했었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용 의원은 "현장 질서 유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이런 참사까지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하며 "아무리 대처가 부족했다고 해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담당 장관으로서 너무 부적절한 말이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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