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계획 발표에 부도 처리 강행 BNK
사업성 무관하게 말라가는 기업 돈줄
시중 돈 빨아들이는 한전도 불안 요인

레고랜드 발 시스템 리스크가 채권시장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특히 디폴트 선언은 아니라면서도 모라토리엄(Moratorium, 대외채무에 대한 지불유예)을 강행하는 정부·여당의 오락가락 화법이 공공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고 있다.
24일 한국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순발행액이 3조원 이상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내 회사채에 대한 투자 심리가 쪼그라들면서 우량기업 회사채에 대한 투자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부터 채권안정화펀드의 가용재원인 1조6000억원을 투입해, 레고랜드 사태의 원인이 된 시공사 보증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투자자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내 유일의 전업 재보험사로 투자 매력이 높았던 코리안리재보험도 이날 투자자 모집에 고배를 마셨다. 6%대 금리와 월별로 이자를 지급하는 신종자본증권은 수요예측에 실패해 목표금액 1000억원의 4분의 1 수준인 250억원이 모이는 데 그쳤다.
금융당국의 유동성 공급 조치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돈줄은 사업성과 무관하게 말라가고 있다. 이미 채권시장에서는 최고 신용등급인 AAA급 공사채마저 발행에 실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7일 한국전력공사가 연 5%대 고금리로 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으나 1200억원어치가 유찰됐다. 한국도로공사(AAA)도 10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전액 유찰됐다.
더 큰 문제는 가뜩이나 부족한 시중 유동성이 한쪽으로만 기형적으로 빨려들어간다는 점이다. 대규모 적자로 자금난에 처한 한전이 올해만 23조원 규모가 넘는 한전채를 발행하면서 일반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가 외면받는 '구축효과'를 심화시켰다. 레고랜드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모라토리엄은 맞지만 디폴트는 아니라면서 금융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강원도의 태도도 금융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강원도는 앞서 "회생계획 발표가 있었음에도 기한이익 상실로 판단해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한 BNK투자증권 측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경율 회계사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강원도가 채권을 발행해서 갚는 방법 등 여러 사건을 종합해야 하겠지만, 금융회사들이 부실을 좀 안아야 하지 않을까" 반문하며 강원도의 모라토리엄을 지지하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지방정부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지급을 유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은 공공 부문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지급 보증하는 PF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원 가능성이 신용의 핵심이다. 또 이를 근거로 국가신용등급에 준한 신용등급이 부여되고 있다.
앞서 레고랜드 개발사업 조달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목적법인(SPC) 아이원제일차는 강원도에 지급 의무의 이행을 요청했으나, 지급 의무는 9월 29일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BNK투자증권 입장에선 강원도가 기업회생 절차를 추진하더라도 SPC를 통해서 진행되는 대출채권 회수 여부는 불확실한 영역으로 판단됐다. 그래서 PF ABCP를 최종 부도 처리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 BNK투자증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BNK투자증권은 2050억원 상당의 채권 발행자이자 자산관리회사일 뿐 돈을 빌려준 회사가 아니다"며 "김진태 지사가 먼저 회생신청 계획을 발표했으니 채권자 자산 보호를 위해 기한이익상실 사유로 판단해 부도처리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