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안심센터 이용수기 공모전 장려작]

건망증! 겪어보지 않은 사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망각하기 때문에 살 수 있는 존재이며 모든 걸 기억하고 사는 것보다 적당히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은혜이고 복이라 생각하며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이 쇠퇴해져 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치부해 버렸는데, 5~6년 전부터 조금씩 더 심해져 갔습니다. 호주머니에 넣어 둔 소지품이나 방금 놔둔 물건을 찾아 헤맬 때, 차 문을 잠그고 왔는지 의심쩍어 몇 번을 확인하러 가보곤 할 때가 빈번해질 때까지만 해도 내 나이 정도면 다들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황당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정기모임에 참석하려고 출발했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내가 왜 차를 타고 나왔을까?’, ‘지금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생각하다 보니 녹동으로 가는 4차선도로 위를 한참 달리고 있었고 약속 장소와는 아주 멀리 엉뚱한 곳으로 와버린 것을 뒤늦게 알아차려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때는 그래도 조금 지나서 기억이 났으니까, 괜찮다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여동생이 고급 안경을 맞춰 줬는데 몇 달 못 사용하고 잃어버려 속상해하는 제게 자녀들이 값비싼 안경을 다시 맞춰 줬지만 이마저도 얼마 못 가서 어디에 벗어놨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 찾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는 저렴한 안경만을 고집합니다. 잃어버려도 크게 부담되지 않아 마음이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농협 앞, 잠시 차를 세워놓고 일을 보고 나와 시동이 걸려 있는 차에 올라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젊은 여성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쫓아와 앞을 가로막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놀란 마음에 왜 그러느냐고 역정을 내며 나와 보니 자신의 차라고 하는 그 분 뒤로 저의 애마가 시동이 켜진 채 당신이 실수한 거라며 어서 오라고 깜빡이고 있지 않겠습니까?
백배 사과했고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아직도 당시를 회상하면 식은땀이 납니다. 그 외에도 제 애마에 휘발유 대신 경유를 주입한 후부터는 주유소 진입부터 ‘휘발유, 휘발유’를 되뇌이며 들어가고 꼭 노란색 노즐을 확인하여 주유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2017년 9월 16일 30년 봉직했던 교회 시무장로직을 조기은퇴하고 원로장로로 추대됐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은퇴하고 나니 우울증도 오고 설상가상 청각이 극도로 무뎌져 갔으며 딸아이에게 닥친 어려운 일 등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인지 건망증은 날로 더 심해져 갔습니다.
심각함을 느낀 나머지 아내와 함께 관내보건소 치매안심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검사를 했는데 나는 합격! 아내는 불합격! 불합격인데도 기분 좋아 보이는 아내를 보며 다행이다 웃음을 보냈지만 나의 마음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만 했습니다.
여러 검사도 하고 상담을 받은 후 2차로 지정된 병원에서 CT촬영 및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받고 신경과 의사선생님과 상담이 이뤄졌습니다. 치료비와 약값을 지원받게 해 주셨고 치매안심센터에서도 집으로 오셔서 혈압체크, 물품지원, 말동무도 해주시며 불편한 점 등 상담도 성심성의껏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약 처방과 함께 꼭 당부하시길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어라, 꾸준히 운동을 해라”였습니다. 그 후로 약을 복용하며 매일 일기를 쓰고 걷기 운동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글 한 줄 써보지 않은 문장력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 바로 나! 컴퓨터 타자는 쳐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바로 나! 그런 내가 막내아들이 준 노트북 자판을 한 손가락으로 콕콕 눌러 글자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흔히 사용했던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쩔쩔 맬 때도 많지만 꾸준히 치매 예방으로 시작한 일기가 작문으로 이어지고 백여 편의 글이 완성됐습니다. 내가 봐도 조금 유치한 면이 있지만 나에게는 치매를 극복하게 만들어준 귀한 보약 같은 존재입니다.
내년 76주년 생일에 기념책을 출간해 보고 싶은 작은 계획이 있습니다. 또한 척추 협착증으로 30m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어야 했는데 매일 아침 걷기운동으로 일상생활은 물론 등산, 낚시 등 다시 건강을 되찾게 해주었기에 이 치매가 그렇게 나쁜 병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매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했을 그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이 좋아진 것을 스스로 느낍니다. 물론 100% 나았다가 아닌 지금도 깜박깜박 할 때가 있어서 긴장을 늦추진 않습니다만, 병도 고치고 건강도 찾고 글쓰기라는 취미생활도 갖게 되어 일석이조? 아니 나에게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주었기에 치매는 나에게 행운이고 평생 함께 할 친구 같은 동반자입니다.
치매로 고생하시는 여러분 힘을 내시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치매를 숨기고 부정하다 보면 시기를 놓치게 될 것이고 그때는 내가 내 몸을 돌보는 게 아닌 타인이 날 위해 헌신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상 증상이 자주 발생한다면 먼저 치매안심센터를 찾아가 상담해 보셨으면 합니다. 치매가 무섭고 싫은 부정적 생각이 많이 드시겠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다. 더디게 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치매를 받아들이고 치매안심센터의 도움을 받아 저처럼 노년을 조금 더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나에게 말을 겁니다. 그러면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치매를 극복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노력하여 노인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치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나아가 영원히 함께 할 나의 동반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