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 골프 레시피 55회]
패자에게 따뜻한 격려 보낸 페인 스튜어트
골프는 경기보다 자신과 싸워 이겨야 의미

인간애와 사회적 관용(Social Tolerance)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전보다 더 심각한 무차별적 상호비방, 모욕, 고소, 고발에 시달렸다.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위정자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바라보며 피로가 극도로 누적된 국민들은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서로를 존중하며 잘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주위를 돌아보면 상대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동의할 수 없더라도 비방하고 공격하지 않는 사회적 관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릴 적부터 무한경쟁에 던져져 살아온 우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망상에 빠져 살고 있진 않은가? 경쟁 상대를 적으로 여기고 그가 비참하게 무너지는 걸 즐거워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하다 할 수 있을까? 이런 사회적 풍토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내야 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조차 싫을 때도 있다.
경쟁을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적으로 여기지 않고 소중한 동료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말보다 실천이 어려운 이런 생각을 골프에서 보여준 이가 있어 그의 삶을 조명해보려 한다.
영원한 승자 페인 스튜어트
지난주 매사추세츠 주의 더 컨트리 클럽에서 열렸던 US오픈. 이맘 때만 되면 어김없이 역사상 최고의 US오픈 우승 세리머니를 했던 선수로 기억되는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윌리엄 페인 스튜어트이다.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스윙과 함께 남들은 감히 흉내 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화려한 의상으로 유명했던 그를 내가 만난 건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파인허스트 리조트에서였다.
무릎 아래를 살짝 덮은 니커보커 반바지와 니 삭스를 신은 그가 주먹 쥔 오른팔을 하늘을 향해 뻗고 오른다리를 들어올려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공중으로 날아갈 것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만난 페인 스튜어트는 사람이 아닌 실물 크기의 동상이었다.
1999년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동상과 마주친 것이다. 사고가 일어나기 4개월 전 그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의 격전지 파인허스트 2번 코스의 18번 홀 그린 뒤에는 우승을 확정지은 마지막 퍼트가 홀 컵으로 떨어질 때 그가 보여준 화려한 세리머니가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있다.
대체 페인 스튜어트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미국의 골프 팬들은 지금까지도 그를 그토록 그리워하는가?
페인 스튜어트는 1957년 1월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스포츠에 재능을 보인 그는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프로골퍼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도전한 PGA투어 진출에 실패한 후 아시아로 건너가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1승씩을 올린 그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휴가 차 호주에서 온 여성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그해 결혼식을 올린 커플은 미국으로 건너가 함께 투어 생활을 했다. 그의 아내 트레이시는 남편을 위해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대회장으로 차를 몰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의 힘을 북돋아주는 응원단장이자 매니저 역할도 함께 했다.
이렇게 든든한 아내와 가족의 응원을 등에 업고 페인 스튜어트는 PGA투어에서 메이저 대회 3승을 포함해 총 11승을 거두게 된다. 그는 1982년 미 PGA투어 대회에서 첫 우승을 한 후, 친구 피터 제이콥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좀 봐. 모두 똑 같은 카키 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있잖아? 난 좀 달라 보이고 싶어.’ 그리고 그는 달라졌다. 갤러리들은 그를 수백 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대회장에 핑크색 바지와 보라색 셔츠, 노란색 모자를 쓰고 다닌 사람은 역사상 페인 스튜어트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외모속에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정직함도 있었다. 절친 프로골퍼 폴 에이징거가 암 투병으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폴의 친구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의 곁을 지키며 웃음을 선사한 친구는 페인 스튜어트였다. 이런 그의 본질을 동료들과 골프 팬들이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끊임없는 응원과 사랑이 시작됐다.
패자에게 보낸 가장 고귀한 격려
‘필, 너는 멋진 아빠가 될 거야. 세상에 아빠가 되는 것 같이 특별한 건 없어.’
파인허스트 2번 코스의 마지막 홀, 페인 스튜어트가 우승을 결정 지은 5미터 퍼트를 성공시킨 후 우승을 축하하는 패자 필 미켈슨의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 안고 한 말이다. 이 장면은 아직까지도 골프 역사상 승자가 패자에게 전한 가장 고귀한 위로와 격려의 순간으로 꼽힌다.
한 타 차로 페인 스튜어트에게 우승을 빼앗긴 필 미켈슨은 사실 대회 내내 삐삐를 가지고 다녔다. 그의 아내 에이미가 첫째딸의 출산을 앞두고 있어, 만에 하나 대회가 끝나기 전에 분만이 시작되면 경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딸과 아들 한 명씩을 키우던 아버지였던 페인 스튜어트는 그런 미켈슨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메이저 대회 우승의 순간에도 아쉽게 패한 미켈슨에게 그가 곧 태어날 딸을 만나게 될 특별한 순간을 상기시키며 격려한 것이다.
스포츠나 인생이나 승패가 갈리는 처절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승부는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와 속임수와 음모가 없는 공정한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페인 스튜어트는 그의 짧은 생에서 누구보다 더 많은 드라마를 남겼고 진정한 승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대결을 보면 상대의 실수를 바라지 않고 내 실력으로 경쟁에서 이기려는 노력을 목격할 수 있다. 상대가 환상적인 샷을 했을 때 진심 어린 칭찬을 해 주고 나도 그에 못지 않게 멋진 샷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골프장 밖에서도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어른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줬을 때 우리의 아이들은 좀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